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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ree Baik 애리백 Apr 05. 2020

<랩 걸> 불안해도 괜찮아, 날이 밝으면 다시 시작하는

계절이 지나며 더욱 힘을 내는 이파리 [2부]

<느슨한 북클럽>의 첫 번째 모임이 있는 날 우리는 이 책의 절반, 그러니까 200 페이지까지 읽고 만나자고 약속을 했었다. 2주 후 수요일이었다. 그날을 손꼽으며 나는 회사의 도서관에서 점심시간마다, 퇴근 후에는 제네바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나갔다. 밑줄을 그으며 가슴에 와 닿는 문구들을 표시해갔고 E와 함께 감상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메모를 적었다. 어느덧 노트와 책의 여백에 연필로 열심히 적은 흔적들이 가득했다. 벌써 많은 숫자의 느낌표가 그려져 있었다.

모임 당일, 나는 출발 직전까지도 책을 읽다가 결국 시계를 늦게 확인했고, 읽던 책을 황급히 다시 내려다보니 둘이 약속했던 분량인 200페이지보다 훌쩍 넘겨버린 페이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스카프를 두르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머릿속에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많은 소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아예 펼쳐놓고 낭독을 하고 싶은 페이지도 몇 군데나 골라놔서 책 장을 크게 접어 놓기까지 했다.

서둘러 E를 만나러 도착한 장소는 내가 E에게 제안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조용한 레스토랑이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정말이지 조심스럽고 고요하다. 여기는 소음 지수가 낮아서 우리가 수많은 대화를 나누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와 자리에 앉아 있던 E를 보자마자 나는 의자를 빼고 겉옷을 벗어 걸쳐 놓으며 말했다.


“호프 자런, 왜 이렇게 표현력이 좋아요? 과학자 맞아요?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죠? 사람 어떻게 이만큼이나 에너지가 넘칠까요.”


노트에 필기가 가득하다. 얼마나 근면한 독서인가!


나는 그가 과학적 기표들을 인문학에 연결해 풀어놓는 문학적인 면모에 감탄했고 벌써 책 수다를 시작하느라 차도 주문하지 않은 채 말을 쏟아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E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 E는 말했다. 이름까지도 ‘HOPE’라고.

맞다. 움트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자신의 시간을 기다리는 씨앗과 계절이 지나며 더욱 힘을 내는 이파리와 어떠한 종류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은채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바람, 천둥, 혹은 중력 때문에 나무가 비틀어져 말라버리더라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그 모든 시절을 Hope가 아니면 어찌 견디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실험실을 잃어버릴까 봐 공포에 떠는 한 연구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미래를 염려하는 나의 작은 자아를 투영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요즘 농부를 가장 존경해요. 횡재 없이 정직하게 일하는 그 가치가 귀하다고 생각해요. 모두 박사들이에요.” 공허한 단어만을 뿌려대는 수많은 사람들에 지쳐있었던 내게 이 말은 작은 놀라움이었다. 나는 E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알맹이 없는 발언들이 가득한 회사 문화에 젖어가던 나에게 꼭 필요했던 환기였다.

“이 책을 좋아하니 다행이에요. 내 친구라고 했잖아요.”
E는 우리가 같이 읽을만한 첫 작품으로 <랩 걸>을 추천할 때 내게 ‘친구를 소개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말이 그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호프 자런을 진심으로 친구 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책 이야기를 하며 ‘아니, 호프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가 있어요? 빌과의 관계는 왜 이렇게 기이하면서도 특별한가요? 장 주네를 함께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이라니. 매번 호프가 원했던 길인 건 알지만 너무 무모하지 않아요?.’ 하며 무려 캘리포니아 버클리와 버지니아 공대, 존스 홉킨스 대학을 거치며 풀브라이트 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호프 자런 박사’를 이제는 대화 속에서 스스럼없이 ‘호프’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을 보면 호프 자런이란 존재를 정말 가까이 받아들인 것이 분명하다. 그건 분명히 호프가 우리에게 나누어준 에너지였다.


여행 중 앉아서 책을 읽다보니 날이 저물고 있다.


연구 결과가 수포로 돌아가도 ‘날이 밝으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외쳐주는 강하고 섬세한 스태미나 덩어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진한 위안을 전해주고 있었다. 불안해도 괜찮다고, 두려워도 괜찮다고, 우울해도 괜찮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아도 마치 미쳐버린 영혼처럼 무모하게 지속한 그녀의 모습에 울컥하며 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클럽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까 낭독하고 싶었던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 그 씨앗만이 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씨앗은 살아있다.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이로 자란 큰 나무들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러나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드물다. 발자국 하나마다 수백 개의 씨앗이 살아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모두 그다지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인간의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이 작은 씨앗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틴 것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나 또한 기회를 포기하기 않기로 했다. 나도 지금껏 죽지 않고 열심히 살아서 기다렸으니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더라도 날이 밝으면 나는 그날을 새롭게 시작할 셈이다. 마치 체리 씨앗이 버텨온 100년 중의 하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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