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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Aug 23. 2022

글라라, 부끄럽지 않다.

고해성사와 침묵 피정에서의 은총에도 불구하고 수치심과의 결투는 끝나지 않았다. 내 존재를 수용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아직도 가야 할 길, 멀기만 하다. 끝이 없는 길이다. 살다 보면 커다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아주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돌부리가 크든 작든 넘어지는 것은 아프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것에도 내 존재의 비참함과 초라함을 느끼며 시시때때로 수치심의 방문을 받는다.


"글라라가 옳다"는 말씀으로 나를 지지해 주셨던 회장님과는 새로운 인연이 맺어졌다. 데레사 자매님은 회장님을 따라 시골에 들어와서는 반평생을 성당 봉사로 살아오신 분이셨다. 이사해야 하는 나에게 회장님 부부는 당신네 동네로 이사오도록 집을 구해주셨다. 가끔 당신 집으로 초대하여 풍성한 식탁을 베풀어주시고, 김치며 맛깔스러운 반찬들을 나누어 주시고, 젊은 사람이 오니 좋다고 하시며 나의 가족을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했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분들께 신뢰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곳에서 5년의 시간 동안 아름답고 행복했던 일상의 추억들이 참 많다. 그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 성탄제에서 구역분들과 함께 했던 성극 <넷째 왕의 전설> 연극 공연을 잊지 못한다.

연극이 끝나고 늘 비판적이기만 하셨던 신부님조차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말 잘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잘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 가슴에는 감동의 비가 내렸다. 얼마나 듣고 싶던 말이었는지, 내 안에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갖은 애를 쓰던 내면 아이도 같이 활짝 웃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영원한 것은 없다 했던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5년간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배신. 나는 데레사 자매님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그분에게 오해받았고 의심받았다. 졸지에 나는 가정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 어처구니없었지만 공손히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과거와 작별했다. 그곳은 나에게 신앙의 고향으로 남아 영원히 잊지 못할 그리운 곳이지만, 내 마음은 이제 더 이상 그리로 가지 못한다.


어느 일요일 저녁, 데레사 자매님이 전화를 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묻는 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은 글라라에게 할 말이 있어. 처음 글라라가 왔을 때는 성당에 일꾼이 왔다 싶어 참 좋았거든. 언젠가부터 글라라는 참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야. 세대차이인지, 성격차이인지 몰라도 이것은 가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이제 더 이상 (회장님께) 전화하지 않았으면 해....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해. 어떻게 이혼했다는 말을 당당하게 말하고 (남자) 어른들 앞에서 그런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지..."

가정에 대한 예의? 무엇을 말함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기도 하다. 세대차이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곳을 떠나 도시로 이사 오면서 그와 나는 결혼을 졸업하고 서류상으로는 합의 이혼을 하게 되었다. 두 분께 그와 나의 사정을 숨기지 않았고 이혼한 사실도 비밀로 하지 않았다. 두 분을 믿고 신뢰하였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도 두 분에게는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로 이사 온 후에도 종종 안부전화를 드렸다. 데레사 자매님에게가 아니라 회장님께 안부 전화를 한 것이 오해의 빌미가 되었다. 이혼녀라는 시선으로 보았을 때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진 것이었으리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겪으며 이혼녀를 대하는 시선에서 또 다른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신앙의 고향을 잃어버렸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아름다운 추억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 마음속에 영원히 신앙의 고향으로 남아있지만 작별할 수밖에 없었다.


데레사 자매님께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마지막 인사드려요. 아침 기도 묵상 중에 곰곰 생각해봅니다. 제게는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 같으신 분들이라 예를 갖춘다고 안부인사를 드린 건데 제가 예의 없이 굴었다는 것은 조금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친절과 배려 진심 감사드립니다. 두 분이 계셔서 그곳은 내 마음의 고향, 친정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움 내려놓고 그만 잊어야겠네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충격과 아픈 상처가 떠올라 마음 아프다. 이별은 늘 슬프다. 잊어야 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럼에도 다시 생각한다. 하느님께 기도한다. "이혼, 부끄럽지 않아요.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요. 저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곳을 떠났지만 그곳에서 받은 사랑과 은총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당신 사랑과는 작별하지 않겠습니다."  

 "이혼 부끄럽지 않습니다"라고 좀 더 당당하게 말할 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치심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강한지를 다시금 느낀다. 부끄러운 나, 작고 초라해지는 나에게 괜찮다고, 천만번 괜찮다고, 부끄럽지 않다고 도닥이고 안아주어도 아직도 나는 괜찮지 않다. 아직도 못다 한 사랑. 언제쯤이면, 얼마나 더 살아야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결혼을 졸업하고 그와는 이혼하고 작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가족의 해체, 부모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진다. 한순간이나마 이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나 돌아본다. 이혼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정집 발걸음을 할 수 없었던 언니가 떠오른다. 이혼이 작별은 아니다. 제도로부터 벗어날 뿐 사랑마저 떠나보내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영원하다. 그와의 사랑을 기억하는 내가 있는 한, 나와의 사랑을 기억하는 그가 있는 한, 그와 나를 기억하는 내 아이들이 있는 한, 그와 나를 알고 울고 웃고 즐기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했던 벗들이 있는 한, 그와 나의 사랑은 then & there 영원하다.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here & now 이혼, 부끄럽지 않다. 사랑은 떠나지 않는다. 한때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랑과 모든 기억들,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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