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잔인한 학습과 새로워짐의 과정이다. 일터에서 위기 가정의 아동 청소년들을 만나며 폭력에 대한 타오르는 분노, 무책임하고 가부장적인 어른들에 대한 실망과 좌절만으로도 내게 삶은 잔인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겪는 것들은 가혹하고 비참했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관으로 생활 현장은 감당하기에 참으로 버거웠다. 잔인한 학습의 길 위에서 상처 입은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성당에서의 고요와 평화, 따뜻한 위로와 용서가 있는 고해성사였다.
고해성사는 있는 그대로 나의 존재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이었다. 세례 받고 첫 고해는 얼떨결에 어떻게 했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오랜 냉담으로 성당을 떠나 있다가 어머니 49제 연미사를 위해 찾아간 성당에서였다. 그때의 고해성사가 나에게는 처음과도 같았다. 그가 있던 사업장 근처의 성당이었다. 그는 성당 사무장님과 잘 아는 사이였고, 어머니 연미사 신청을 하면서 그가 "냉담도 풀어야 하는데..."라는 말 한마디를 흘렸는데, 마침 그때 사무장 옆에 옆집 아저씨처럼 앉아 계시던 분이 "아, 그래요? 그럼 지금 고해 보실래요?"라고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둘을 고해실로 안내했다. 얼떨결에 들어간 고해실에서 나는 그분이 사제임을 알았다. 단 한마디의 질책이나 훈계 없이 거저 용서받았다. 보속으로 받은 주모경 3번으로 오랜 기간 신자의 의무를 저버리고 미사참례도 하지 않았던 나태함까지 용서받았다. 성당으로 들어가지 못해 안절부절 주저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웃으며 말했었다. "떨지 마.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 용서하시는 분이시니까." 그의 말처럼 주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셨다. 고해성사에서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만났다.
시댁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견딜 수 없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의 기도를 바꾸어 "차라리 유혹에 빠지고 말테야."라고 반항할 때였다. 하느님 나라를 꿈꾸기보다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싶었다. 시동생은 그의 사업자금을 빌려가서 도박으로 다 날려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란 작자가 그와 내가 어떻게 사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성당에서 권유하여 마지못해 갔던 MA 피정에서 사랑과 용서의 강론 말씀을 듣고 있으며 견딜 수가 없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망치고 싶었다. "미워 죽겠는데 어떻게 용서하냐고요?" 울부짖고 싶었다. 그날 밤, 고해성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시집살이하며 겪고 있는 시련들과 심신의 피로함을 하소연했다. 신부님은 내게 사랑과 용서를 권유하지 않으셨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강론과는 달리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옳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분노와 증오는 당연하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분노하는 당신이 옳다. 다만 그 미움과 증오의 화살로 당신을 무너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미움으로 당신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당신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세요." 신부님은 나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기도해주셨다. 고해성사에서 나의 실수와 부족함을 용서받으며 나도 타인의 실수와 부족함을 용서할 수 있었다.
2015년 겨울, 2016년 봄, 2017년 뜨거운 여름, 세 번의 침묵 피정을 잊지 못한다. 옥천 메리워드 영신 수련원에서였다. 먹고 기도하고, 시골길을 걷고 기도하고, 동반 수녀님과 면담하고 기도하고, 자고 일어나서 기도하고. 경당에서 기도하고, 식사 전후 기도하고, 걸으면서 기도하고. 동반 수녀와의 30분 면담 시간 이외 모든 것이 침묵이었다. 움직임에도 소리가 있으니 몸짓조차 소리 없는 침묵으로 걸어야 했다. 침묵으로 기도하는 8박 9일의 여정에서 내가 용서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 품은 사랑으로 충만했다. 하느님의 자녀로 선택받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사랑받으며, 존재 그 자체가 수용받는 경험을 하면서 나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의 존재를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있었는지를 처절하게 느꼈다. 버림받을까 두려움에 떨며 잘하려 무던 애쓰고 몸부림치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났다. "잘했다"라는 인정과 칭찬의 말에 목말라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새벽에 경당에서 "글라라, 참 잘했다"라는 침묵의 목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 내가 버림받은 게 아니었구나.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었구나. 끊임없이 인정과 사랑을 구걸하고 있던 불쌍한 어린 나, 신부님께 빰을 맞은 그 아이와 동일시하면서 내가 그 아이의 모욕감과 수치심을 그대로 받아 안고 있었음을 알았다. 폭력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괴로운 것은 나의 수치심 때문이었다. 아이가 맞았다는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 뺨을 맞은 것처럼 창피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부끄러웠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내 안에 묻혀있던 수치심을 보고 또 보았다. 폭력의 피해자로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내 존재의 수치심이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수치스러워하지 마라. 네가 창피함을 당하지 않으리라
부끄러움을 잊고 치욕을 다시는 회상하지 않으리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너에게 분노를 터뜨리지도 너를 꾸짖지도 않겠다고 내가 맹세한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 이사야 54장 4-10절
이 말씀을 수도 없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되새기면서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였다. 나는 용서받고 사랑받고 수용받았다. 세 번의 침묵 피정에서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수치심과 직면하고 나서 주님께서 내게 말했다.
"글라라, 부끄럽지 않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