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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라라 Aug 23. 2022

내 인생의 잊지 못할 말 한마디

"글라라가 옳다."

신부님에게 빰을 맞은 아이는 이후에 성당에 나오지 않았다. 두 명의 아이가 영성체 교리 중이었는데, 영성체 교리 또한 중단되었다. 신부님은 당혹스럽고 난감했던지 나에게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편지와 함께 책 선물을 건네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 집으로 갔을 때 할머니는 서러움의 눈물만 흘렸다. 할머니가 키운 아이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 무던 애쓰며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엄마 없는 아이여서 그렇다는 신부님의 폭언은 할머니 가슴을 찌르는 칼날이 되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들었다고, 당신이 겪은 그 수모와 멸시를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신부님이 무섭다고 밤마다 악몽을 꾼다고 했다. 주교님이라도 찾아가고 싶지만 시골 동네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지라 혼자서 어디로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몰라 못 간다고 하소연했다. 할아버지는 성당 사람들이 집에 오는 것도 가로막았다. 성당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당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상처라고 했다. 나도 공감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참혹하게 부끄러웠다. 아동학대이고, 신고를 해야 하고, 그냥 지나가서는 안된다고, 신부도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사소한 것들로 지나쳤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주일학교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겪었던 것들을 하소연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제 남은 일은 아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아이를 이대로 두면 더 큰 상처가 될 것이니 아이 치유에 전념하자고 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고 했다.

나는 주일학교 교사이자 학부모였다. 내 아이들도 이 모든 것을 다 겪고 있었다. 눈치껏 혼나지 않으면서 위기를 잘 넘기기는 했지만, 운이 좋아서 불화살을 피하고 있었을 뿐, 앞으로 언제 어떻게 분노의 폭탄 세례를 맞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부모들도 교사들도 신자들도 모두가 침묵하는 분위기가 답답했다. 나 또한 침묵하면서 누군가 용기 있게 나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신부이지 않은가, 사제이지 않은가, 성당에서 신부에게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만으로도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는 현실에서 신부의 잘못을 지적할 용기 있는 자는 없었다. 나 또한 너무나 두려웠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침묵이 아닌 무엇으로 이 사태를 지혜롭게 풀어갈 것인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책임이자 어른의 몫이지 않은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의 지시를 믿고 따른 아이들을 바다에서 잃고 나서 가슴을 치고 한탄하며 어른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웠던 사건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세월호로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이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무언가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교사로서 이 사실을 알고서도 가만히 있는다는 것, 그것은 내게 무책임이었다. 무언가 해야만 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던 수녀님은 당신 또한 충격적이고 무서워서 벌렁벌렁한 가슴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의 상처로 고해성사하고 매일 밤 기도하며 상처 치유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울면서 성토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더니 수녀님이 내게 말했다. "글라라, 고민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그때는 그 말이 원망스러웠다. 그 말의 의미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민하지 말고 기도하라니. 어떻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있지. 어떻게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있지. 무언가 행동으로 대처하고 반응해야 하지 않은가. 행동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무슨 소용이지. 혼란스러웠다. 원로 신부님께 고해하였을 때도 신부님은 침묵하셨다. 교구에서 신부님의 행실에 대해서 모르지 않고 있었다. 이건 아동학대이다, 어떤 조치와 대응을 해야 하는지를 여쭈었을 때 신부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기도하라 하셨다. 기도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성당 총회장님을 찾아갔다. 나의 고민과 갈등을 다 듣고 나서 회장님이 말씀하셨다. "글라라가 옳다. 글라라와 함께 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 글라라가 상처 입을까 그것이 염려된다. 나서려면 상처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일들이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할 바를 하겠다. 내일 신부님께 가서 아이 상처 치유는 신부님이 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것이다. 그 아이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평생 신부님이 책임져야 할 거라고 말씀드리겠다. 글라라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글라라의 몫이다. 글라라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해라. 그것이 글라라에게 상처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회장님은 나의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신부는 신부 편이다'라고 하셨다. 교구청에 신고를 하더라도 주교님도 신부이니 신부 편에 있을 거라는 예측이었다. 오히려 내가 다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셨다. 가톨릭의 거대 성벽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까.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 혼란스러우면서도 회장님의 "글라라가 옳다"는 그 말 한마디로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내 생각이 옳다고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당신이 옳다. 틀리지 않았다. 그 생각과 마음과 하고자 하는 것이, 뜻하는 바가 틀리지 않았다.'는 그 말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 수용,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경험이었다.

내 생각이 옳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어서 든든했다. "글라라가 옳다"는 이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글라라가 옳다"라는 말 한마디는 가슴에 들끓던 분노의 불길을 가라앉히는 빗줄기 같았다. 꽁꽁 얼어붙은 불안, 두려움도 봄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이후에 신부님은 정신분석 상담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폭력적으로 드러날 때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상담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사제들에게도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했다.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신부님께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 상상해볼 수 있었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폭력의 피해자로 생각하고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있던 내가 내 안에 숨겨진 폭력성을 느끼고, 가해자의 자리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알아차린 순간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정신분석 상담을 찾아갔다. 신부님은 금요일 오전이면 서울로 상담받으러 갔다. 5년 전 월요일 아침마다 누리호 열차에 몸을 싣고 정신분석 상담을 받으러 서울을 오가던 그때가 떠올랐다.

신부님은 미사 때마다 신자들에게 첫 영성체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당부했다. 5월 성모의 달 한 달 동안은 성모상 앞에서 신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고 아이를 성당에 보내주기를 간청했다고 했다. 아이가 간절히 영성체를 받고 싶어 하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의 소원대로 해주었다. 아이는 영성체 교리에 나오기 시작했고, 교리를 마친 후 첫 영성체를 할 수 있었다. 기도의 힘이었을까.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주님께 간구하는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매달리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나는 어린 시절 폭력의 피해자였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는 가해자의 자리에 있던 적도 있다. 비겁한 방관자의 자리에서 침묵과 기도 안으로 숨어들기도 하고, 때론 용기 내어 행동하는 어른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해자의 인격도 있으며 분노를 터뜨리며 폭력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의 인격도 있었으며, 비겁한 방관자, 용기 있게 실천하는 행위자의 인격도 있다.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의 인격이 작아지기를. 실천하는 용기, 행위자의 인격이 더 크게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신앙의 품에서 배운 세 가지, 사랑하고 기도하고 용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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