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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Aug 16. 2024

오늘도 동네를 여행합니다

여행지에 가면 그곳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날씨, 냄새, 말투, 속도, 교통질서, 간판 디자인 같은 것들에 먼저 익숙해져야 하고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럴 땐 어디에서나 똑같이 눈웃음 지어주는 맥도날드가 반갑다. 쓸데없이 프렌차이즈의 힘을 느끼며 조금씩 적응하다 보면 비로소 주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형편없는 내 적응 수준으로는 낯선 곳에서 어색함을 덜어내는데 2일에서 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짧은 여행에선 돌아올 때가 돼서야 완벽히 적응하게 되는데, 짧은 여행이 아쉬운 건 일정이 짧아서가 아니라 여행이 끝나가는 순간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돌아오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다 아쉽다. 결국 목적지가 이곳인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만약 긴 호흡으로 여행을 떠났다면 나는 숙소 주변 마을을 꼭 여행한다. 이런 취향이 생긴 후부터는 일부러 화려한 관광지 속 숙소보다 조용한 마을에 있는 숙소를 선호한다. 이곳에 완벽히 적응하고 나서 걸어보는 골목은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 결코 알 수 없는 바이브가 전해진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지, 가게가 모여 있는지, 아이들이 많이 보이는지, 어르신이 많이 보이는지, 자동차가 보이는지, 자전거가 보이는지, 바다가 보이는지, 산이 보이는지,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 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말해준다.


익숙해지고, 주위가 보이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전해지고 나면 여행은 더 재밌어진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마치 생명을 얻은 것처럼 내 주위를 맴돌며 많은 것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이곳은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여행은 풍부해진다. 이렇게 끝난 여행은 잔상이 오래 남는다.


가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단지 목적지로 향하는 길일 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매일 걷던 길은 제주의 독특한 문화가 남아 있는 골목길이었다. 그냥 어릴 때부터 밥상에 올라와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음식은 제주의 생활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음식이었다. 제주에 점점 더 흥미가 생긴다.


관심을 두기 시작하니 제주 역시 조금씩 나에게 비밀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비밀은 제주를 재밌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 재미를 느끼고 나서 내가 추천하는 여행은 항상 제주의 어느 동네가 됐다. SNS를 통해 찾아본 정보로 자신의 서치 능력을 검증받고 싶던 여행자들이 점점 나를 멀리하는 것을 느끼며 ‘니들은 여행을 몰라’를 속으로 외치기도 했지만, 좁디좁은 나의 ‘제주여행추천’에 반성하며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하지만, 여전히 제주 여행을 추천하라면 제주의 어느 동네가 될 예정이다.


만약 어딘가에 나와 같은 여행 취향을 갖고 있다면 제주에서 이 방법으로 여행해 보길 추천한다. 제주의 모든 것이 여러분 주변을 맴돌며 비밀을 알려주는 여행 방법을. 그리고 언젠간 나와 같은 취향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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