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가이드 Jul 04. 2023

이야기를 좋아하는 여행가이드

나의 여행가이드는 ‘이곳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을까’에서 시작한다.


제주는 삼다도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섬이라 붙여진 별명인데, 이를 뒤집어 보면 그동안의 제주 생활상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화산 폭발로 생겨난 제주 섬은 밟고 서 있는 모든 곳이 다 용암 지대이다. 그만큼 돌이 많고, 척박한 환경이어서 농사를 짓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는 건 자연재해에 노출됐다는 뜻이고, 여자가 많다는 건 여러 사건으로 남자의 희생이 많아 남자를 대신해 섬에 남아 있던 여성의 활동상이 눈에 띈 것이다. 지금은 세계자연유산 제주, 관광의 섬 제주로 이곳을 이해하지만, 행복한 섬의 모습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왕래가 쉽지 않았던 섬이라는 특성은 제주만의 독립적인 문화를 발달시킨다. 지금은 제주의 독특한 문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부분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제주의 음식 문화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몸국, 제주 육개장, 고기국수는 제주 여행에서 한 번쯤 먹어봐야 하는 유명한 토속 음식인데, 이 음식들은 부족한 식재료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제주 사람의 문화가 녹아 있는 음식이다.


옛 제주에서는 잔치나 초상처럼 많은 손님을 치르는 대소사가 있을 때 몸국과 제주 육개장을 만들어 먹었다. 집 안에 큰일을 치를 때면 어김 없이 사용했던 재료는 돼지였다.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은 제주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재료가 바로 돼지였는데, 이 귀한 재료는 허투루 쓰는 일 없이 모든 부위를 알뜰하게 사용했다. 내장 등 부산물을 제외한 돼지의 모든 부위를 삶다가 먼저 익는 살코기를 건져내 자연 바람에 식힌 뒤 일을 치르는 기간 동안 손님들께 내놓을 수육으로 사용한다. 등뼈, 머리 고기 등은 충분히 삶아 건져 살을 발라내고 다른 잡뼈에 붙은 살코기도 모두 발라낸 뒤 뼈는 다시 육수를 우려내기 위해 가마솥에 집어넣고 계속 끓여 육수를 만들어 낸다. 이 육수에는 제주의 전통 수애(순대)도 넣고 삶아 낸다. 이렇게 수애까지 삶아내고 나면 비로소 국을 끓일 수 있는 고깃국물이 된다.


하루 종일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삶아 내고, 내장, 순대까지 모두 삶아낸 뒤 저녁이 되었을 때 본격적인 몸국이 시작된다. 이 국물에, 겨울에 채취해 말려 놓은 모자반을 물에 불려 토막토막 썰어 넣고, 뼈에서 발랐던 살코기와 고기 부스러기를 넣어 푹 끓여내면서, 묽은 메밀 반죽을 넣어주면 몸국이 된다. 모자반 대신 불린 고사리를 넣어 고사리가 물러질 때까지 푹 삶아내고 메밀가루를 풀어 끓여주면 제주 육개장이 되는 것이다. 이 음식들은 국물 한 방울도 버리는 일 없이 온 동네 사람이 모두 귀한 고기 맛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식문화였다.


제주의 음식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고기국수 또한 단순히 맛있게 먹기 위해 만들었던 음식이 아니다. 고기국수는 몸국의 대체품으로 시작됐다. 원래 제주에는 밀국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이를 때까지 제주에서 국수를 제조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제주에 침입해 온 일본인들에 의해 고운 밀가루와 그 밀가루로 만든 건면이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일본은 일본의 수산물과 유사한 품질의 제주 수산물에 대한 착취가 시작되었는데, 특히 모자반의 착취는 더 이상 제주에서 몸국을 쉽게 끓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일본은 제주의 돼지는 탐하지 않았는데, 제주 사람들은 돼지를 도축하고 큰일을 준비하는 전통은 이어갈 수 있었다. 잔치 음식으로 몸국을 만들 수 없었던 제주 사람들은 돼지고기 육수에 마침 도입된 건면을 삶아 수육을 국수에 얹어 먹는 고기국수 형태의 음식으로 손님에게 대접하기 시작했다.


제주는 두 얼굴의 섬이다. 잠깐 왔다 가는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얼굴과 오래 남아 이곳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얼굴이 있다. 그리고 이면의 제주를 경험하면 제주를 더 입체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헤르만 헤세는 이야기했다. 햇살이 따사로운 초원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산과 시냇물, 오리나무 숲과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과 더불어 이 초원에 친숙하고 그 땅을 잘 아는 자만이 그러한 풍경을 충분히, 백배는 더 깊고 더 고상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한 한 조각의 조그만 땅에서 땅의 법칙을 알고, 형성과 식생의 필연성을 꿰뚫어 보고, 그 필연성을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역사, 기질, 건축 양식, 말투, 복장과 관련해서 느끼려면 사랑과 헌신,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도 그렇게 노력하면 보람이 있다. 그대가 열성과 사랑으로 친숙해져서 그대의 것으로 만든 땅에서 그대가 휴식을 취하는 모든 초원과 암석은 그대에게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여하지 않는 힘으로 그대를 키워준다.


나의 여행가이드는 제주의 모든 비밀을 여행자에게 알려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동쪽 대표 오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