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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Dec 05. 2023

오름에 제주의 모습이 담긴 이유

"가장 제주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많은 사람이 오름에 가는 첫 번째 이유이다. 평소 나 역시 제주의 모습을 가장 잘 담아낸 자연은 당연 오름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스스로도 그곳에서 오는 힐링 포인트에 기분 좋은 활력을 얻고 있다.





제주 오름의 시작은 180 만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상당히 오랜 기간, 바닷속에서 분출한 용암은 바다 위로 섬의 형태를 만들어냈고, 그 후 섬 위 곳곳에서 폭발한 화산은 각기 다른 오름을 만들어냈다. 이름도, 나이도, 모양도, 크기도 서로 다른 오름들은 저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도 다 다르다.





오름을 정의하자면 주변 지형에 비해 뚜렷이 솟아올라 봉긋한 지형을 가리키는 제주의 고유 말이다. 이 언덕 모양의 지형에는 지질용어로 분석 Scoria 이라는 화산쇄설물이 쌓여 있는데, 분석은 유리질의 현무암질 부석으로 크기는 6cm 이하이며, 수 mm 크기의 기공이 70~85%를 차지하는 부석을 의미한다. 제주에서는 분석을 화산 송이라 부른다. 오름의 지질학적 명칭은 분석이 쌓여 있다고 하여 분석구 Scoria cone 라 한다.





사실 분석구 형태의 오름 말고도 성산일출봉과 같은 응회구, 송악산과 같은 응회환, 산방산과 같은 용암돔 형태의 지형도 제주에선 모두 오름이라 부르긴 하지만, 제주 오름의 90%는 분석구에 해당한다. 제주에서 차를 타고 지나다 길 옆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던 오름은 분석구에 해당한다.





초등학교(정확히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아버지 따라 아침 일찍 벌초에 나선 기억이 있다. 지금보다 훨씬 교통의 접근성이 떨어지던 -아버지가 전하는 옛날이야기에 비하면 훨씬 나았지만- 그때에는 멀리 차를 세우고, 천천히 산소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새벽부터 나선 길에 신경은 진작에 곤두섰고, 말똥과 소똥을 피해 오르막을 계속 올라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을 내며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오히려 내가 짊어져야 할 짐만 더 늘어났다) 오름과 처음 만난 순간의 기억이다.





초등학교(정.확.히.는.국.민.학.교.) 6년 내내 오등봉이라는 산도 아닌, 들판도 아닌 곳에 소풍을 갔다. 한 학년에 10반이 넘고, 한 반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재밌는 일을 벌이기엔 애매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매한 곳이라도 자기 놀거리를 찾아 신나게 놀 수 있는 건 초등학생이라면 가능하다. 정확히 8살부터 13살까지 일 년에 두 번씩 오름에서 꼬박꼬박 오르고, 내렸고, 뛰고, 굴렀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제주는 오름 열풍이 시작됐다. 오름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소똥, 말똥을 피하는 곳이 아니었고, 초등학생이 놀기 애매한 공간이 아니었다. 새로운 매력이 발견되고,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됐다. 너도나도 오름 동호회에 가입하고, 제주 섬에 솟은 모든 오름을 정복하는 정복자가 됐다.





나보다 더 일찍 오름을 알았던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섬 어디를 가나 오름이 없는 곳이 없다. 오름이 없는 이 섬의 지형, 바람만 스산한 죽음의 황야 같은 섬의 땅을 섬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오름 자락에 살을 붙이고 살아왔으며 뼈가 묻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촌락 형성의 모태가 되기도 했고, 신앙 의식의 터로서 성소시되어 와 지금도 그 품에 제 터를 간직한 곳이 많다. 숱한 신화도 피워 냈다. 올림포스가 그리스 신화의 신의 거처라면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들은 제주신화의 신들의 고향이다. 때로는 항쟁의 거점이 되었고, 외침 때의 통신망 구실도 했다. 그 기승으로 하여 시객들의 영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주요 생활 수단의 하나인 목축의 근거지임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섬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오름마다에 진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 김종철, 오름 나그네 중





제주에서 오름은 일상이다.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말과 소를 방목하는 곳이고, 누군가는 답답한 일이 있을 땐 소원을 빌러 가는 곳이고, 누군가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이고, 누군가는 죽어서 묻히는 곳이다. 제주의 많은 이야기가 오름에 있다. 그래서 제주의 모습을 가장 잘 담은 곳이 바로 오름이다. 오름에서 보이는 건 단지 풍경이 아니고, 제주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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