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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가이드 Dec 29. 2023

섬에서 섬을 보다

눈앞에 섬이 보인다. 저기에는 누가 살고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저곳이 참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 제주에는 8개의 유인도와 55개의 무인도를 포함해 63개의 부속 섬이 둘러싸고 있다. 행복하게도 어디에서든 쉽게 섬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자연유산 제주에서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많지만, 섬에서 섬을 바라보는 풍경이야말로 우리를 설레게 할 요소로 가득 찼다.


비취색 바다에 떠 있는 섬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신비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장면의 매력 포인트는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섬이 주는 물리적인 단절은 현실 세계와 단절을 선물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이 생겨난다. 그런데 섬에서 또 섬이라면 단절은 더욱 명확해진다. 섬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속삭이며, 자신에게 오라고 유혹한다. 저곳으로 가면 나는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저 안에 모습이 자꾸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풍경과 재미있는 생각이 뒤섞여 섬을 바라보는 내내 설렌다.


섬은 다양한 감정을 선사한다. 풍경 그 자체에 푹 빠져 감동하기도 하고, 당장이라도 그 섬에 뛰어 들어가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동화 속 그림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연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느끼기도 한다. 제주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장소에서 바라보는 섬, 길을 걷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섬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선물할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협재해변은 제주에서 가장 활발한 곳이다. 하얀 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주는 감동에 많은 사람으로 항상 북적인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바다에 발을 담그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의 배경엔 항상 비양도가 있다. 섬의 실루엣이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닮아서인지 동화책 속 그림 같아 보인다.



해수욕장이 끼고 있는 마을 협재리는 전통 관광지와 젊음의 공간이 골고루 뒤섞인 마을이다. 여전히 제주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에는 한림공원과 같은 대표적인 관광지가 있고, 골목골목 핫플레이스가 넘친다. 천천히 걸으며 제주의 모습을 담고 여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 마을 여행의 마지막은 협재해수욕장이 될 것이다.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을 바다에 던져 놓은 듯 편안하다. 그리고 저기 비양도는 그 마음을 아는 듯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나를 바라봐 준다.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나는 이 시간을 만끽한다.



형제라는 든든한 이름


제주의 자연은 소박한데 바다 역시 그렇다. 제주의 해안가에 앉아 있으면 그 소박함에 절로 힐링이 된다. 그런데 송악산과 사계 해변을 잇는 형제해안로는 이런 모습과는 달리 넓은 바다의 장쾌함을 느낄 수 있어, 또 다른 의미의 힐링이 된다. 이 길의 매력에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해안 길 끝으로 웅장한 산방산이 보이고, 바다 위의 섬이 함께 보이는 풍경은 제주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이 길을 걸으면 제주 바다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냄새, 소리, 그리고 환상적인 풍경이 제주의 바다는 이런 곳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곳을 걸으면 시야에 계속 따라오는 섬이 있다. 바다 한 가운데 홀로 떨어져 왠지 쓸쓸하게 보이는 섬은 사계 포구에서 1.5km 떨어진 형제섬이다. 두 개의 섬이 형제처럼 마주 보고 있다 하여 형제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누군가에게도 이 섬은 외롭게 보였나 보다. 이름이라도 외롭지 않게 형제로 지어준 걸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어 형제해안로를 걷는 내내 자꾸 눈길을 주게 된다. 형제섬은 무인도로 누구나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특별히 이곳의 출입이 허락돼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 호핑투어가 진행되기도 한다. 저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쉽다면 여름에 도전해 보자.

*호핑투어 - 섬과 섬 사이를 거닐면서 바다와 섬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는 여행



풍류,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


제주의 남쪽 바다에는 해안 경치를 돋구어 주는 장면이 있다. 섬과 폭포가 바로 그것인데, 제주가 화산섬이기에 가능한 장면이다. 화산이 폭발하고, 흘러내린 용암은 제주섬을 생동감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냈다. 섬과 폭포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고, 수백 년 전 이곳에 살았던 누군가는 이 풍경을 찬양하며 글과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서귀포시 정방폭포는 많은 이들이 영감을 얻었던 극적인 풍경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앞으로는 깎여진 절벽을 따라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뒤로는 두 개의 무인도가 감싸고 있다. 한라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이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형태의 정방폭포는 폭포수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 더욱 웅장하게 느껴진다. 바다로 떨어진 폭포수가 흘러가는 곳을 따라가 보면 섶섬과 문섬이 보인다. 섬의 식생과 섬 주변 바닷속 자연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는데, 이 섬들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는 곳이다. 바위에 앉아 풍경을 오롯이 즐기다 보면, 그 옛날 이곳에 배를 띄워놓고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던 조상들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유네스코는 제주를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하며 전 세계적으로 소중한 자연유산임을 인정하고 있다.



섬에서 섬을 보다


가끔 제주도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싼 섬이란 걸 잊어버릴 때가 있다. 1,849km2의 면적의 워낙 큰 섬(서울시 면적의 약 3배의 크기이다.)이라 태풍이 몰려와 본토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이 끊기기 전까지 이곳이 섬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여느 도시와 다를 것 없이 생활한다. 제주의 부속 섬 중 가장 큰 섬인 우도 역시 배를 타고 섬에 들어오고 나면 시원한 풍경과 카페, 식당, 로컬 편집숍이 줄지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어 바다 위 섬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도를 여행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루 종일 섬 둘레를 트레킹할 수도 있고, 마을 안 길을 걸으며 섬의 모습을 천천히 구경할 수도 있다. 아니면 핫플레이스 카페에 앉아 사람들이 이곳을 즐기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이 섬을 여행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우리는 우도를 사람들이 북적이고, 활기찬 모습으로 기억하지만, 이 기분 좋은 시끄러움은 본섬으로 가는 마지막 배가 떠나기 전까지만이다. 그 많던 사람이 다시 본섬으로 돌아간 후 우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차츰 석양이 내리기 시작하면 바다 건너 한라산과 오름, 반짝이는 불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주도 본섬의 모습이다. 비로소 내가 섬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이 시간은 주황빛 일몰이 칠해 준 제주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우도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내일, 또 다른 섬의 주인공이 들어오기 전까지 완벽히 나를 위한 시간이 시작된다.



제주에서 가장 환상적인 트레킹


제주에서 가장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한라산 영실 탐방로를 선택할 것이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수려한 풍경, 한라산 화산 활동의 비밀을 간직한 신비한 지질, 그리고 비교적 힘들지 않은 등반길이 그 이유이다.



영실 탐방로의 시작은 소나무 숲과 계곡이다. 신들의 계곡, 영실이라는 이름값에 맞게 신령스러운 모습을 한 이 숲을 지나면 압도적인 풍광의 병풍바위가 나온다. 100미터가 넘는 주상절리 절벽이 병풍을 두른 모습이라 병풍바위로 불리는, 영실 탐방로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이 가파른 절벽을 오르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유종인 구상나무가 전 세계에 유일하게 대규모 군락지를 이룬 모습을 만날 수 있고, 이어서 고산에서 보기 드문 평원, 선작지왓이 나온다. 미처 한라산을 오르지 못한 구름을 밟으며 발길을 재촉하다 보면 백록담 봉우리 절벽이 드라마틱하게 보이면서 전망대가 하나 나온다. ‘윗세족은오름’이라고 불리는 오름에 만들어진 이 전망대에 오르면 제주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을 모두 보는,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해안선이 파노라마처럼 보이며 제주가 바다에 떠 있는 섬이라는 것을 완벽히 깨닫는 장소이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지친 몸을 추스르며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리다 보면 제주도의 부속 섬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범섬까지 익히 들어본 섬들이 마치 그림 그리다 한 방울씩 흘린 물감이 번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저 섬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세상이 된 것 같다. 이것으로 나는 이 섬, 제주도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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