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전의 일기.
자물쇠 달린 비밀 일기장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그 일기장에 맞춤법 틀린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 놓았었다.
그 안에 뭐가 있을 줄 대충은 알고 있기에 사실 그동안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으니까 뭐 괜찮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 참담한 상황을 참 자세히도 써놓았던 어린 나를 생생히 마주하고 전혀 괜찮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너무 자세히 기재된 어린 권순영의 상처에 대해서는 공개를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 아직 고민중이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 다 연관되어 있는 일이니...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힘들지만,
음....
나는 집안에서의 일로 참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모님은 내가 24살때 이혼하셨다.
(뭐 이정도만 밝히기로 하자)
나는 7살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교회에서 들은 이런 저런 말로 자살은 곧 살인이고, 살인이라는 죄를 지은 후 그 죄를 회개할 기회가 없는 자살은 곧 지옥 이라는 주장을 찰떡같이 믿고 살았었다.
그래서 다행이었을까?
20살의 나는 죽어버리고 싶은데 죽은 후에 갈 지옥에서 지금보다 더 힘든 생을 살까 무서워서 못 죽었단다.
내가 죽는다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과 지옥은 지금보다 더 지옥일거라는 철저한 믿음. 이 두 가지 이유로 나는 결국 죽지 못하고 아직까지 살아 있게 되었다.
오랫만에 펼친 일기장에서,
모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는 그때의 나,
앞으로의 모든 것이 다 두렵고 불안했던 그때의 어린 나를 만나 방금 전까지 한 시간을 울었다.
어린 나를 만난 지금의 나는 (아주 다행히도) 구석에서 쪼그려 훌쩍이는 그때의 나를 안아 줄 수 있었다.
"너무 무섭구나. 괜찮아. 다 지나갈거야. 지금의 고통이 앞으로 영원한 건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불안할 것 없어. 나중에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하면서 그동안 정말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너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게 될거야."
어린 시절의 일로 남들 보다 모든 면에서 불안한 마음을 가진 채 살고 있긴 하지만, 그 불안한 내 마음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 덕분에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계속 공부하게 됐어. 그래서 내가 왜 불안한지, 불안함에서 뻗어나간 가지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게 됐어. 그 것 뿐만이 아니야.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마음도 깊이 보고 함께 느끼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됐잖아. 나는 아팠지만 그 아픔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
괜찮아.
다 지나갈거야.
이만하면 정말 열심히 잘 살아왔어.
잘했어. 정말 잘했어.
어린 나를 안고 함께 울며 토닥토닥 쓰다듬어주던 지금의 내가 어느 새 또 울고 있는 지금의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