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데이트

엄마랑 딸이랑 백화점

by swimmming


늦잠을 사랑하는 내가 토요일 아침에 비몽사몽 한 상태면,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러 나가는 엄마가 점심때 어디에서 보자~ 하고 나가곤 하셨다. 나는 한참 뒤 일어나 대충 씻고 옷 입고 그래도 항상 늦어져 문자로 '엄마 조금만 기다려봐' 해놓고 후다닥 약속 장소로 나갔다. 대게 도시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이 만남의 장소였다.

우리 집은 오래도록 가난하고 알뜰했다. 때문에 백화점에서 무언가를 사 입는 건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그마저 메이저 브랜드 백화점이 아니고 아울렛 분위기가 나는 지역의 소규모 백화점이었음에도 엄마는 그곳에서 물건을 사면 꼭 '백화점 물건이니 좋다'라고 했었다.

점심 즈음에 만난 엄마랑은 주로 옷을 보러 다녔다. 엄마가 일할 때 입을만한 정장류나 블라우스, 아빠 옷, 둘째 동생 옷을 고르곤 했고 예쁜 옷을 보면 나한테 입어보라며 권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내가 맘에 들어하는 눈치면 살래? 사! 라며 지갑을 열었다. 그렇게 엄마 찬스로 사둔 옷 덕분에 계절마다 옷 걱정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나랑 엄마는 의외로 잘 어울리는 쇼핑메이트였다. 엄마나 나나 둘러보는 걸 좋아해서 많이 걸었고 나는 물건을 사면 당연하게 짐꾼이 되어 엄마의 팔이 자유롭게 쇼핑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했다. 엄마옷을 고를 때면 냉정하게 피드백을 해줬고 그래서 엄마는 나랑 옷을 사면 어울리는걸 잘 고르게 된다고 좋아했었다.

엄마는 돌던 층을 돌고 또 돌면서 맘에 드는 옷과 그에 적당한 가격을 찾았다. 그래도 오만 원이 넘어가는 옷은 한참 망설이고 또 고민하고 입어보곤 했다. 백화점에서 오만 원 정도의 돈은 사실 적은 편인데, 엄마는 습관처럼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이 없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이젠 이런 옷도 막 사도 되는데... 라며 결국엔 꼭 비싼 옷을 스르르 내려놨다.


한참 돌고 어느 정도 살걸 다 사면 그제야 허기가 올라와 백화점 아래층 푸드코트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하게 먹었다. 엄마는 잔치국수나 비빔밥을 좋아했고 나는 갈 때마다 다른 걸 시켰는데 조금이라도 몸에 안 좋아 보이는 튀긴 종류는 엄마가 걱정하며 약간의 잔소리를 해대곤 했다(그래도 꿋꿋이 먹었다지) 엄마는 바깥에서 먹는 음식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딜 데려가도 딱히 맛있게 먹는 건 손에 꼽을 정도고 많이 먹지도 않았다. 음식에서의 비중이 맛보단 건강이 우선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이라도 몸에 썩 좋아 보이지 않으면 딱히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주위의 수많은 맛집도 제쳐두고 맛도 가격도 그럭저럭인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고 일어났다. 혹 여유가 되면 지하상가를 돌기도 했고 중심가를 한번 스윽 훑기도 하고 나서 아빠의 전화를 받고 나면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하고 버스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엄마와 나의 4~5시간 데이트 코스였다.

집에 오면 엄마는 본인 옷을 사도 꼭 나한테 한번 입어보라고 했다. 엄마랑 키는 같으나 사이즈가 달랐던 나는 귀찮아서 안 입는다 해도 꼭꼭 권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면 너도 가끔 입고다녀~ 라고 했다. 엄마가 입는 스타일에는 관심 없었던 나는 심드렁하게 그래 하고 말았다. 사온 옷들을 하나하나 풀어놓으며 다른 가족들 옷도 보여주고 차곡차곡 정리하던 엄마는 기뻐 보였다. 그렇게 유명한 브랜드도 아니지만 어쨌든 '백화점'에서 산 옷은 엄마가 즐겁게 소비하는 몇 안 되는 사치품이었다.


일만 하고 집에 오기 바빴던 엄마는 특별한 취미가 없었고 친구를 만들 시간도 없었다. 그나마 한 번씩 딸이랑 팔짱 끼고 백화점을 돌면서 옷도 사주고 본인 옷을 딸이 봐주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종종 엄마한테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 물어보면 다녀오지도 않은 백화점이라고 할 때가 있다. 그때 알았다. 그게 엄마의 크나큰 낙이었구나. 나는 엄마의 딸이기도 하지만 같이 수다를 떨며 쇼핑을 하는 친구이기도 했구나. 시간이 지나고 엄마랑 자주 가던 백화점을 오랜만에 다시 들렀을 때 항상 같이 가던 사람과 같이 가지 않은 그 공간이 퍽이나 낯설었다. 곳곳에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 집은 엄마 단골이었고 저 집에선 항상 아빠 옷을 샀었고 엄마가 사줘서 내가 아끼는 그 옷은 여기서 샀었는데... 라며


엄마랑 한 번만 더 백화점을 둘러볼 수만 있다면, 그때는 엄마가 가지고 싶다는 거라면 무엇이든 내가 가진 모든 걸 털어서라도 다 사줄 텐데. 이젠 몇 걸음 딛지도 못해 그저 나의 소원으로 남았네.

내일이 토요일이라 더더욱 생각나는 엄마와의 데이트. 그 오후의 소소한 시간들이 몹시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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