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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May 07. 2021

죽음이 불청객이라면


4살짜리 아이와 죽게 된 엄마 아빠, 은퇴 후 그동안 미뤄뒀던 둘만의 시간을 즐겼을 노부부의 죽음, 사랑을 더욱 돈독히 하고 소중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떠난 여행길, 그곳에서 그들은 죽었다. 바라지도 상상하지도 않았을 그들의 죽음 그러므로 죽음의 공포 따위는 도무지 감지될 턱이 없었을 죽음. 빠른 비트의 아이돌 음악을 들었을까. 요새 유행하는 트롯 음악을 들었을까. 모질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화해와 미래의 행복을 위한 대화를 나눴을까.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떠났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처럼 가벼운 일상의 연장이었을까. 목적지로 향하는 그들에게는 지금밖에 없다.


여행을 준비하며, 떠나며,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며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문득 올려다본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느낀다. 그곳에서,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죽음이란 단어는 없고, 어쩌면 영원한 행복에 대한 느낌들을 온몸이 받아들여 각각의 감정이 세밀하게 나열하며 분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 바로 뒤에서 쌕쌕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취된 삶, 망각한 죽음,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이 언저리에 붙었지만 알 수 없다. 고독하지 않았고 불안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삶의 쾌락만 있었을 순간에는 존재를 느낄 겨를이 없다. 그들이 죽기 직전에 느꼈을 것이라곤 내일 아침에 무엇을 먹을까. 혹은 어디로 바람을 쐬러 갈까. 혹은 월요병을 떠올릴 정도의 불편감 정도였을 것이다. 그마저도 서툰 걸음으로 아장아장 뛰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경쾌하게 텐트를 치고, 패기 넘치게 장작불을 피우며 석쇠에 고기를 두르며, 잘 익은 부위를 골라 상추에 한 입 크게 싸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그들의 손길과 숨소리에서 간단하게 씻어버린다. 하지만 죽음은 과감히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들은 그 무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따뜻한 봄날의 차가운 밤공기, 예년 같았으면 굳이 숯불을 안으로 들일 생각을 안 했겠지만 쌀쌀한 바로 지금, 춥지 말라고 서로의 마음을 살뜰히 챙기며 홍시처럼 달아있는 숯덩이를 정위치 하고는 이 밤도 그리고 서로를 위한 마음도 평생 따뜻하리라 생각하며 젊은 부부와 아이는 침낭 안으로 몸을 넣는다. 아이는 분명 엄마 아빠 가운데 누웠다. 팔을 괸 아빠는 왼쪽을 바라보고 같은 모양새로 엄마는 오른쪽을 바라본다. 고개를 좌우로 요리조리 돌리며 엄마 아빠 사이에서 아이는 포위된 행복을 즐긴다. 그런 모습에 아빠 엄마는 아이의 볼이며 이마며 입을 맞춘다.


노부부는 다정하지만 스킨십은 익숙하지 않다. 내일을 위해 조금 일찍 눈을 붙이기로 하고, 얼어 죽을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며 역시 회칠된 홍시 몇 덩이를 화로에 담는다. 순식간에 훈훈해지는 텐트, 이 순간이 비현실처럼 느껴진다. 밖은 쌀쌀한데 안은 아파트 거실 같다. 침낭 안에 몸을 넣었다. 평소답지 않게 아내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음날 펼쳐질 일정을 나이 든 남자는 브리핑한다. 여자는 거둔다. 퇴임하고 꿈꿨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꽉 차 버려서 무엇도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가슴은 벅차다. 전등을 끄자 숯불의 향과 온기가 부드럽게 살갗과 코 끝을 덮는다. 절로 웃음이 난다. 그 순간을 기다렸던 불청객은 빤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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