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를 족치던 일제 경찰은 한국전쟁에서 박정희군부를 거치며 ‘구국경찰救國警察’과 믹싱 된다. 이렇게 1세대 하이브리드 폴은 전두환 군부에 이르러 ‘민주경찰民主警察’을 수혈받게 되면서 성능과 연비에서 급격한 향상을 보인다. '시스'1)를 택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아이언맨 슈트와 토르 망치를 거머쥐었을 때를 상상해보라. 정의의 가면과 망치는 악의 씨앗이 아주 깊고 넓게 뿌리내릴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되어줄 것이며, 마침내 그의 품에 아름답고 달콤한 열매를 한 아름 안겨줄 것이다.
이 땅의 경찰은 제국주의의 통치를 위해, 즉 빼앗긴 땅을 찾으려는 의인들을 잡아 돌리는 것으로 출생 신고를 한다. 일제가 물러나자 이데올로기의 침탈이 밀려왔고 국민을 향해 또 총을 쏘아댔다. 그것이 분리되자, 국민의 군대는 경찰과 국민을 총검으로 찔렀다. 이후 한차례 업그레이드된 군대는 경찰을 앞세워 국민의 숨구멍을 틀어막았다.말하자면 경찰은 교과서에 나온 경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온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경찰은 ‘정의로운’이라는 형용어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이때 경찰대학은 나타난다. 그때까지 경찰 사정이 그러했으므로 정치권에서는 결단이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학비 무료와 권력 보장과 같은 뇌쇄적인 미끼를 쓰면서까지 암기에 능한 젊은이들을 모집하려고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군부가 그들의 담장을 더욱 높고 두껍게 쌓기 위해 경제성을 계산했던 것이다. 부와 권력을 항구적으로 지켜내려면 이익을 공유하는 소수의 정예화된 집단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학습을 마친 상태였다. 경찰대학 설립 근거는 곧 그들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경찰대학의 앳된 이들은 당대 포스트모던한 체제에 상당히 물들어 있었다. 냉전으로 지구촌이 양분된 상태에서 사상과 문화 통제가 엄혹했다. 그런 사정 아래에서도 일부 젊은이들은 어벤저스 가면을 쓰고 있는 정부의 눈이 벌겋다는 것을 알고 치기 어린 정의감에 가슴 태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군부의 ‘Ddong Ggu Nyeok’을 핥고 싶었던 이, 집안의 생계를 어깨에 이고 교문을 들어선 이, 성적에 맞춰 온 이는 왜 없었겠는가. 어찌 되었든 군부의 눈에 그들은 미래가 밝은 ‘모범견’들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모범견’, 허연 이를 드러내다... 그리고 30년
28일 충주경찰서 수사계장 이병무 경위(27·경찰대1기)와 서울시경 기동대 소속 연성흠 일경(24·감신대3 휴학)의「양심선언」에 이은 29일 경찰대 졸업 초급간부와 경찰대 재학생들의 국립경찰 사상 처음인 집단 의사표시는 경찰 조직의 특수성에 비추어 일파만파의 충격과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이들 경찰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경찰 전면 개혁 쇄신 주장의 초점은 경찰의「정치적 중립화」에 모아진다. 이 문제는 사실 경찰 민주화의 핵일 뿐 아니라 권위주의 통치 지배 구조 해체라는 대명제와 안팎의 관계를 이루는 성격이어서「민주화」 논의의 주요 과제임에 틀림없다. (…)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경찰 내부에서까지 잠복했던 요구가 공개 분출 함으로써 문제의 논의를 미루기는 어렵게 됐다. (…) (중앙일보, 1988. 1.30)
포스트모던한 젊은이들과 그동안 구경꾼에 머물러있던 시민들이 가세하여 거대한 인적 쓰나미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치고 억눌리지 않은 이들은 없었을 것이므로 삽시간에 폭풍우가 되어버린 것은 극성맞고 변덕스러운 한여름의 소나기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영원하기를 바랐을 군부는 막을 내린다. 무인시대는 시대의 저편이 되었지만 그것이 남긴 잔상이 여전했던 88년, 초유의 경찰 집단행동이 일어난다. 엄밀히 따지면 일부 ‘경찰대학생’이 주도한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그들은 군부 아래 경찰이 어떻게 조련되고 쓰이고 버려졌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았다. 통치자의 입맛에 경찰이 길들여질 때 경찰의 눈과 귀가, 발과 주먹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았고, 그럴 때마다 가슴은 죄책감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국민을 탄압하는 경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 이 끊을 수 없는 모순의 고리는 그들의 머리통을 조였다. 현실에 분노했지만 미래를 위해 냉정해야 했을 그들은 욕망을 누르고 이성을 택했다. 심장도 경찰이 되어야 한다면서. 그들이 드러낸 이는 무척 하얬다.
경찰이 외청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반성적 힘이 거셌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대하드라마의 힘, 세력은 미미했을지라도 의기투합했던 초기 경대생들은 그 위대한 조류에 속해 있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민주화되었고, 일본을 위협하는 경제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 그 사이 군부의 찌꺼기도 의식되지 않을 만큼 정리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비운 자리에 검찰이 둥지를 틀었고, 이 합법적 권력을 정리하기 위해 대한민국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30년 전 초기 경찰대학생들은 이제 상당수 자연인이 되었거나 자연인 엔트리에 명단을 올려놓고 있다. 무거워진 어깨만큼이나 무거워진 발걸음, 형식 어구와 판에 박힌 행위들, 정치적 사고만 남은 그들은 오늘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목에 핏대를 세우고 침을 튀겨가며 군부의 반민주성과 폭력을 고발하던 이들, 동기들의 행동 뒤에 숨어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면서도 숙연해하던 이들, 격동의 시대에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보려던 그때의 젊은 경찰들은 무엇을 위해 ‘중립화 선언’을 외쳤는지, 지금. 생각할까?
-대한민국 파출소 경관-
주 1) 시스 기사단(Sith Order)이라고도 부르며 생물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인 포스를 제다이처럼 선의 목적이 아닌 지배욕과 같은 자시들의 사리사욕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은하계의 악과 공포의 신봉자를 가리킨다.(스타워즈, 위키백과)
주 2) 이 점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다. 참여 범위와 규모에 대하여 아는 내용이 없으므로 관련 내용은 전적으로 신문 기사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극소수의 경찰대학생과 전경이다. 이때 현장 경찰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면상으로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