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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Jun 11. 2023

현장 경찰과 경찰청 모두의 명예를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명예’를 생각하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명예를 사랑했습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명예롭게 죽을 수 있을까만 고민했던 그들은 조국 앞에 모든 것을 걸어버립니다. 즉 나라를 위해서 죽었을 때 그들은 가장 높은 의미의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대대손손 기억되고 있습니다. 엄격한 국가교육 시스템 ‘아고게(Άγωγή)’를 통해, 극기 훈련, 사냥, 춤과 노래 등을 익히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길렀던 스파르타 영웅들에게 명예는 뿌리와 가지와 열매가 하나의 몸체에 연결되었을 때의 나무처럼 국가와 하나의 유기체로서 기능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파르타가 고대 그리스를 대표한 적이 있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며, 게다가 그들의 체제가 늘 칭송받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들과 사이에 2,500년이라는 공간이 있으니 말해서 뭐 하겠습니까마는 그럼에도 명예에 관한 그들의 세계관은 여전히 ‘Chat GPT’와 ‘A.I’의 도발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21세기에도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시대 조류에 따라 변하는 가치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사멸하지 않는 것들, 불의 앞에서 우리를 타오르게 하는 것들,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의 유산으로서 새로운 '유사 인류'에게도 어김없이 해야 하는, 바로 불멸의 가치로서 떠받들고 있는 ‘명예’라는 것이겠습니다.


스파르타의 경우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명예의 의미는 시간과 국경을 초월합니다. 이순신이 여전히 광화문 앞에 우뚝 서있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벼슬을 바라고 왜적과 싸워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왕에게 모진 핍박을 받고도 백의종군했던 인물이지요.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명예’는 국가적 대의 또는 형언하기 어려운 희생과 한 몸으로 연결됩니다. 다시 말해 외세의 침입에서 조국과 국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자의 이름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예를 갖추고 그의 이름이 가장 빛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명예라지만 세월을 견뎌내는 동안 왜 변용되지 않았겠습니까.


‘경찰청의 명예’와 ‘현장의 명예’


우리는 수십만 페르시아 군대에 죽음으로 맞섰던 300명의 스파르타 군과 12척의 이순신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울컥, 가슴에 끓어오르는 뭔가를 느낍니다. 그 느낌의 근원을 타고 들어가다 보면 자신의 이익과 공명심을 내려놓고 장렬히 희생한 자를 만납니다. 그때 뇌 안의 ‘거울신경세포’든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이든 우리는 주저 없이 ‘명예’를 선사합니다. 생각건대 명예는 ‘사적 안위와 이익’을 전제하지 않는 모양샙니다. 그것이 ‘명예감’이 폭발하는 계기가 아닐까요?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욕망’에 충실한 ‘현상계’에 속한 존재입니다. 동시에 ‘이성’에 따르는 ‘예지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를 ‘현상계에 따른 명예’와 ‘예지계에 따른 명예’로 나눠볼 수 있다면 경찰의 명예는 어느 쪽에 속하는 걸까요?


오늘날 경찰관이라는 이름 앞에 가장 많이 붙는 말이 있다면 아마도 ‘짭새’겠지만 원래 그 자리에는 ‘명예’가 있었습니다. 비록 조선 시대 언어처럼 혀끝에 달라붙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의 경찰도 명예를 곧잘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경찰청이 말하는 명예와 현장이 말하는 명예의 색감이 달라 보입니다. 말하자면 ‘경찰청의 명예’는 ‘의식儀式’의 문자로 활용하고 있는 인상이 강하여 ‘형식’만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반면 ‘현장의 명예’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나 ‘내용’을 호소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여기 잘 알려진 영화 대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영화 베테랑) ‘가오顔かお는 일본말로 ‘얼굴’이지만 저는 영화의 흐름상 ‘체면’ 또는 ‘쫀심(명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현장 경찰의 언어를 보면 앞의 문장은 ‘경찰의 처지’를, 뒤는 ‘경찰의 당위’를 표현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이 문장에서 ‘쫀심’에 대한 경찰청과 현장의 관심의 차이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경찰청은 ‘현장의 처지’를 개선하는 쪽에서 ‘명예’를 구하고 있다면, 현장은 이 두 가지는 별개이며, 각각 충족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면 국민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뛰어들고 있는 경찰이 돈이 부족하여 품위 유지나 살림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실상의 고발이며, 하나는 그것과 무관하게 경찰은 ‘명예’를 추구해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겁니다. 요컨대 경찰청은 처우가 나아지면 경찰의 명예가 높아질 것으로 보지만, 현장은 처우와 명예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처우’와 ‘명예’는 구분해야 한다


경찰의 날이나 순직자를 떠나보낼 때, 청이나 서 단위에서 공식적으로 ‘명예’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헌화, 특진, 훈장 등이 그러한 표징이고요.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모습은 사뭇 달라집니다. 조심스럽고 숭고한 태도는 승마의 기수처럼 현장 경찰의 등에 올라타 힘껏 박차를 가합니다. 물론 경찰청도 일상 안에서 명예 함양을 고민합니다. 언급했듯이 현장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서 해법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열매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지요. ‘공안직 수준의 급여’, 더욱 확보하게 된 ‘승진의 기회’가 포털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우와 명예 어울릴 수는 있어도 커플로 맺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가 말했던 것처럼 그것들의 성격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무 여건 및 급여 향상은 경찰 개인의 존엄과 품위를 위한 것으로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수호하는 경찰에게 쾌적한 곳을 제공하고, 흡족할 만큼의 금전적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은 국가적 책무입니다. 그리하여 현장의 처우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나아졌다고 합시다. 그리 되면 직업적 만족감은 높아질 겁니다. ‘오! 경찰 제법인데’라며 외부의 평판도 더불어 올라가겠지요. 그렇다고 그것이 명예가 될지는 의문입니다. 승진과 돈, 근무 여건은 전형적인 ‘콧대의 척도’라서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평판이 높은 지위나 직업군과 부딪히면 대번에 꼬리를 내려 버립니다. 예를 들어 출신과 계급 비교를 통한 자학, 검찰을 빗댄 외부의 비꼼 말이죠.


다시 ‘가오’ 있는 ‘서도철 형사’의 언어로 돌아가 봅시다. 그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했습니다. 저는 뒤의 문장은 앞의 문장에 구속되지 않는 당위적 측면에서 고려했습니다. ‘경찰에게 명예’는 돈이든 뭐든 어떤 조건에 구애되지 않고 ‘있어야만 하는 무엇’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경찰 구성원 전체를 구속하는 힘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나아가 경찰청 구성원 모두에게 마땅한 것 으로요. 명예는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명예 경쟁’은 있을지라도 그것의 우열은 없으며, 그저 ‘존중’만 있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경찰청이 추구하는 명예를 ‘처우의 명예’라면, 현장은 '처우'와 '명예'를 나누자는 겁니다. 앞은 국가의 책임으로, 뒤는 구성원 모두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의무로 말입니다.


현장 경찰과 경찰청 모두의 명예를 위하여


저는 글의 앞부분에서 우리에게는 명예감이 있는데, 그것은 고대 그리스와 이순신 장군처럼 자신의 안위와 벼슬, 금전적 대가를 고려하지 않고 주저 없이 불의의 역사와 맞섰던 이들을 보면서 폭발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맞다면, 우리는 경찰청과 현장의 어느 쪽이 명예의 ‘원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조언대로 ‘현상계’와 ‘예지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경찰관이라면 어느 쪽을 좇아야 정의로운지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예에 대한 경찰청의 생각은, '구분'이 요구됩니다. 즉 ‘처우’와 ‘명예’를 나누어 재설계를 해보자는 겁니다.


‘재설계’와 관련하여 외람되게도 한 말씀 덧붙이면서 매듭을 짓겠습니다. ‘간접경찰(지원부서)’은 ‘직접경찰(현장경찰)’이 아니므로 명예감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빽빽한 문자나 숫자와 씨름하면서 불현듯 명예감이 폭발하기란 곤란한 일입니다. 그런 그들도 명예의 맛을 볼 때가 있습니다. 현장을 보며 와락 눈물을 쏟아낼 때죠. 현장은 곧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자신을 통해 현장이 빛났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현장'을 넘어 전 경찰관이 시민으로부터 명예를 얻습니다.


-대한민국 파출소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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