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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Jun 10. 2024

시지프의 지옥을 찢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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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비위 예방 추진단’이 이제 막 출범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경찰 역사상 처음 있는 TF라고 하던데 오죽하면 이런 조직까지 구성해야 했을까.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경찰청의 심경을 잠시 이해해 보았습니다. 나아가 감사관실만의 문제가 아닌, 수사기획조정관과 경무인사기획관까지 머리를 맞대기로 하였다니 뭐랄까.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진 모양새여서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도 하고, 대안 또한 탐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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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위 예방을 위한 경찰청의 대응 방식은 크게 ‘심리적 통제’와 ‘냉혹한 처벌’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출근해서, 퇴근 후, 또는 쉬는 날에도 문자나 카톡으로 금욕의 ‘1일 1 경구’ 전달하기를 꼽을 수 있겠고, 후자의 경우 직무배제, 타 지역 전출, 인사에서 소외, 수익 감소, 사례 공개 등이 있지요. 이 은 상호 보완적인데 저지른 행위가 심리 통제의 근거가 되고, 이는 다시 행위를 구속하는 식입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폭력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의 주장을 단순화해 보면 '목적 달성을 위한 모든 일방성은 폭력이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국민 신뢰도와 조직원 보호라는 명분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러므로 아렌트의 문제의식에서 보면 지난 경찰의 역사 위에서 펼쳐졌던 ‘비위 예방 버라이어티’는 조직원에 대한 일관된 '억압 행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몸이든 정신이든 얻어맞은 사람은 아프기 마련인, 모멸감은 이를 더 아프게 합니다. 모멸감은 상식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받는 고통입니다. 그것은 분통으로 연결됩니다. 자신과 무관한 일로 도매금으로 넘어간, 불치의 연대책임자나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버린 자들이 경험하는 일반 정서입니다. 그들이 자유에 민감하다면 자존감에 심각한 상처를 입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뭉개진 자신의 인격을 보듬는 방법은 거짓 순응, 즉 조직을 신뢰해주지 않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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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자정 노력에 관심 갖기 시작하고 나서,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봄직한 기상천외한 것들이 도입되어 왔습니다. 이후 눈에 띄는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도, 같은 방법․다른 이름으로 출시를 거듭합니다. 앞은 그 방법이 틀렸음을, 뒤는 방법이 고갈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는데도요. 이러한 현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이유는 조직의 전두엽이 오랜 시간 사디즘적 구조와 인간 존엄에 대한 몰이해에 노출되어 온 탓이 아닌가 합니다.


말하자면 1년 내내, 경찰청은 경찰관의 뇌를 ‘유한락스’로 뿌득 뿌득 씻깁니다. 그들의 불쾌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행위 자체에 흡족해합니다. 그래서 사디즘적입니다. 여기서 경찰관들은 한 '사람'이기보다는 한 '덩어리'입니다. 그래야 잠재적 비위자로 일반화할 수 있으며, 수세미질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경찰관의 탈선을 막으려는 행위 안에는 ‘인간을 도구’로 보는 인식이 슈크림처럼 담뿍 담겨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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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기업뿐만 아니라 공직에서도 MZ세대의 높은 ‘이직의도’에 주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블라인드’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율성'과 '공정성' 그리고 '상사의 리더십'이 젊은 세대의 직장 내 만족감을 올리는 요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돈과 워라밸 보다 더 높이 평가된다지요. 요컨대 주니어들은 돈도 돈이지만 자신의 가치와 회사의 가치가 맞았을 때, 좋은 정서를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에서 딱히 일터를 떠날 이유나, 나아가 직을 걸고 깽판 칠 동기를 찾는다는 건 어색한 일입니다.


TF가 위와 같은 +데이터들을 비위 예방의 핵심 근거로, 아니 깨달음의 원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즉 경찰‘개인’의 가치와 ‘경찰’의 지향점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TF! 행여 ‘시지프의 지옥’을 설계하고 있다면 찢어버리고, 그 ‘묵은 생각’과 결별해 주세요. 세종이 했고, 코페르니쿠스가 했으며, 칸트도 했습니다. 그들의 ‘사고 전환’이 인류 문화를 반짝거리게 했습니다. 경찰청도 할 수 있습니다.


<언론보도>

[단독] 경찰들 잇따른 비위에...경찰 첫 ‘비위 예방 추진단’ 출범(조선일보,202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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