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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lee Apr 10. 2021

인생은 여름방학처럼

봄 6호

Images from @jacquemus

이번 주의 생각


2018년, 안상수 디자이너가 학교에 강연을 오셨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옷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늘 이렇게 상하의가 붙은 작업복을 입고 머리에 딱 달라붙는 비니를 씁니다. 물론 종류는 몇 가지 있어요. 아무도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지만요.(웃음)”


생각해보니 나도 어떤 옷을 입으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는 반면  어떤 옷을 입으면 잔디밭을 뒹굴고 엉덩이만 붙일  있으면 어디든 털썩 앉았다. 안상수 디자이너의 말씀대로 옷은 정말  날의  행동의 범주와 태도를 결정지었던 것이다.  옷장에는 10 전에 샀던 베이지색 점퍼, 좋아하는 분홍, 노랑, 연두, 흰색이 오묘하게 뒤섞인 니트, 고등학생  독서실에 걸치고 다니던 셔츠 같은 오래된 옷들이 많이  같은 옷을 돌려 입는 편이어서 유독  말이 와 닿았던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들이  하루, 하루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5, 10 동안 나의 태도를 형성한다고 생각하니 나의  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


시간이 흘러 2019 여름, 호숫가에 알록달록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디에 누워 노래를 듣고 책을 읽다가 물에 몸을 담그기를 반복하는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잔디에 엎드려 ‘나는 여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특유의 색감 때문에  계절을 그토록 좋아했던  같아.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생긴다면 어린아이의 밝은  여름 원피스가 떠오르는 그런 브랜드일지도 몰라.’라고 몰스킨에 적었다. 그런 생각을   글로 옮기고 나니 신기하게도  이후로 편집샵을 구경할 때마다 ‘자크뮈스라는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이 떠오르는 색감의 옷들, 라벤더 밭과 보리밭에서 열리는 발랄한 패션쇼, 맨발로 피날레 인사를 하는 디자이너와 모델들, 모던함과 자유로움이 조화롭게 뒤섞여있는  브랜드가 조금씩  좋아졌고 시몽 자크뮈스가 브랜드 계정에 업로드하는 사진 들을 보고 있으면 1 내내 여름을 느낄  있었다. 이미 내가 원하는 길을 걷고 있는 브랜드를 찾는다면 내가 원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에게 오랫동안 몰스킨이 그런 역할을 줬던 것처럼.

 


이번 주의 콘텐츠


Interview

W 코리아 '시몽 자크뮈스'와의 인터뷰 중에서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브랜드를 론칭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엄마가 돌아가신 순간에 론칭을 결심했다. 18살 때였다. 그때 난 내 브랜드를 엄마의 성인 자크뮈스(Jacquemus)를 붙여서 론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건 엄마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엄마에게 나의 꿈을 꼭 이루겠다고 말해온 것을 실현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 이듬해인 19살에 브랜드 자크뮈스가 탄생했다.


F/W 파리 컬렉션에서 맨발로 등장해 피날레 인사를 나눴다. 모든 모델들도 맨발로 워킹을 했고 말이다. 어린 시절의 동심과 야생의 원초적 본능이 동시에 느껴지는 맨발이 당신에게 의미하는 바가 있나?

내게 동심과 야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어린이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이유는 어린이들은 뭔가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간적이다.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것, 그리고 순간적인 것이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언제나 말이다. 그래서 자크뮈스의 모든 컬렉션은 이러한 순간성과 원초적인 본능이 연결되어 있다.


그 영감을 어떻게 발전시켜갔는지도 궁금하다.

쇼를 통해 맨발과 마스크를 쓴 소녀들을 보여주었는데, 학교에서 마스크를 만드는 수업 역시 영감이 되었다. 패치워크로 보여준 콜라주를 모티프로 어린이들의 미술 수업을 떠올리며 일부러 완벽하지 않게 완성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미셸 공드리(영화 '무드 인디고'의 감독)의 영화 속 인물도 생각했다. 반은 원피스이고, 나머지 반은 재킷으로 구성된 룩인데 내가 무척 좋아하는 룩이다. 또 커다란 손 모티프 역시 공드리에게서 온 것이다. 사실 작업에 이미지 보드 같은 건 없다. 모든 이미지나 생각은 ‘순간순간’에서 오는 거니까.


당신의 삶이나 패션에 있어서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은?

단 한 명, 엄마이다.


그녀의 스타일은 어땠나?

최근 선보인 2016 리조트 컬렉션은 엄마의 이름을 딴 발레리 컬렉션이다. 이번 리조트 컬렉션엔 정말 엄마의 취향이 많이 담겨 있다. 그녀는 매우 여성스러우며 프랑스 남부의 여인다운 외모를 지녔다.


당신에게 패션이란?

나에겐 패션은 옷이 아니다. 패션은 그 사람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이 그 옷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옷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풍겨야 한다는 말이다. 옷을 위해 옷을 사는 것은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자신의 옷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뭔가가 담겨야 한다. 다시 말해 패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에 있어 큰 의미를 담는 세 단어를 말한다면?

인생의 행복과 하늘의 빛나는 태양,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사실 어깨에 작은 해 모양의 타투도 있다. 긍정적인 자기 암시의 대상인데, 컬렉션에서 해는 노란색 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지난 S/S 컬렉션에선 ‘마르세유의 파라솔’이라는 주제로 직접적으로 태양이 드러났고, 이번 F/W 컬렉션에서도 역시 ‘해의 아이들’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이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맨발로 천진난만하게 달리는 모습을 떠올려 붙인 이름이다.


패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나?

물론이다. 패션은 내 열정을 드러내는 매개체이긴 하지만, 그 옷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간단하다. 바로 단순함의 행복이다. 난 숍을 여러 곳에 여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그게 인생의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만족은 결국 행복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귀 기울여야 하고,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Book

매거진 B <THE SHOP>

이런 제한된 일상이 되레 명확하게 일깨워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어떤 것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 부류의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이죠. 예를 들면 저는 음식이 주는 맛 자체보다 식당이나 사람이 모인 상황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물건에 대한 애착보다는 물리적 공간에서 물건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기쁨을 더 즐기는 편에 가깝더군요. - 박은성 편집장
숍은 다른 사람을 알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의미를 지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나답고자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알고자 하는 것이 결국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평행선 같은 욕구니까요. - 조수용 대표
오래전 밀라노의 콘셉트 스토어 10 꼬르소 꼬모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당시엔 너무 좋은 나머지 이 느낌이 뭘까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테라스엔 화과 테이블이 꽉 채워져 있고 공간 곳곳을 특별한 규칙 없이 가구와 물건으로 메웠는데 무질서함에서 오는 일관성이 느껴졌어요. 그 모습을 보고는 이거야말로 어떤 사람 삶의 궤적을 그대로 옮겨놓은 거다 싶었죠.  - 조수용 대표


Book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나는 한 번도 양을 쳐 본 적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따라가고 또 바라보러 인적 없는 자연의 모든 평온함이 내 곁에 다가와 앉는다.
나의 시선은 해바라기처럼 맑다. 내겐 그런 습관이 있지, 거리를 거닐며 오른쪽을 봤다가 왼쪽을 봤다가 때로는 뒤를 돌아보는.. 그리고 매 순간 내가 보는 것은 전에도 본 적 없는 것. 나는 이것을 아주 잘  알아볼 줄 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진짜로 태어났음을 자각한다면 느낄 법한 그 경이를 나는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의 영원한 새로움으로 매 순간 태어남을 나는 느낀다.
영원한 어린아이는 항상 나와 동행한다. 내 시선의 방향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모든 소리에 기쁜 마음으로 귀 기울이는 내 청각은 그가 내 귀에 태우는 장난스러운 간지럼. 우리는 서로 그렇게 잘 맞았다. 모든 것을 함께하면서 각자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할 정도로 하지만 우리는 둘이서 함께 산다. 마치 오른손과 왼손처럼 친밀한 조화를 이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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