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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lee Apr 24. 2021

느낌표 사냥꾼!

봄 7호


이번 주의 생각


이 깨달음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충격적이어서, 나는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가 어딘가 교외로 가서 햇빛에 빛나는 키 큰 풀 들 사이에 그대로 드러눕고 싶다는 격한 충동을 느꼈다.


어제 지하철에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이 문장이 내가 책을 읽다가 문장 옆에 느낌표를 찍을 때의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말이나 글로 담기 어렵다고 생각한 감정이나 생각을 잘 담아 둔 작가의 문장을 만날 때면 내가 느끼는 감정의 격함 정도에 따라 문장 끝에 느낌표를 붙인다. 예를 들면 이렇게.


우리는 쳇바퀴처럼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위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거야. 그 바퀴는 둥근 원이 아니라 나선형이고 우리는 이미 많은 단계를 거쳐 온 거야.!!!!!!!!


지난주에는 혜은이가 내가 아끼는 책을 빌려 갔고 그날 밤 전화가 왔다.

“네가 이 문장에 무슨 생각을 하며 느낌표를 찍었는지 상상하느라 책 진도가 안 나가! 느낌표 너무 많아ㅋㅋㅋ”


이 말을 듣는데 내 속마음이 몽땅 들통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고 이렇게 답했다.

‘나 호들갑 쟁이잖아 ㅋㅋㅋㅋㅋ’


그러자 친구는 준비해둔 말을 내뱉듯 이렇게 외쳤다.

‘감탄 쟁이!!! 느낌표 사냥꾼!!!’


‘호들갑’이라는 나의 말을 순식간에 빛나는 다른 단어로 바꿔서 나에게 꺼내 보이던 친구의 외침을 들으며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백번 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을 말이었다. 그 순간, 책 곳곳에 찍혀있는 느낌표들이 어떤 상황에도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방패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 느낌표들 덕분에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감탄 쟁이!! 느낌표 사냥꾼이라니!!! (또 느낌표) 친구의 말을 곱씹으며 ‘느낌표’의 뜻을 검색해봤다.


느낌표 : 감탄문이나 감탄사의 끝에 쓰거나, 특별히 강한 느낌을 나타내는 어구, 평서문, 명령문, 청유문, 물음의 말로 놀람이나 항의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 감정을 넣어 대답하거나 다른 사람을 부를 때 쓰는 ‘!’ 형태의 문장부호


나는 보통 하고자 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전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진하고 정확하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느낌표를 찍었다. 또 일기장에서는 고민하던 일을 행동으로 옮길 때, 반성 뒤를 따라다니는 결심 끝에도 항상 느낌표가 붙어있었다. 돌이켜보면 '!'는 마음먹어야 가능했던 진지한 생각들이 쉬운 경로를 찾는 것을 도와줬고 행동 없이 머릿속에 물음표만 찍어내는 시간을 종료시키고 나의 태도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감탄사는 그 날, 그 순간을 더 감탄스럽게 만들었고 느낌표는 그걸 그나마 담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래!!! 소소하다는 취급을 받는 낭만을 놓치지 않는 느낌표 사냥꾼이 될 테야!!!




이번 주의 콘텐츠


Book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바다를 향해 등대를 밝히듯 집집마다 거대한 어둠에 맞서 자기 별에 불을 밝혀 대지는 서로에게 보내는 환한 신호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이미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노년에 이를 때까지 인생을 감미롭게 해 줄 모든 것들을 ‘시간이 생기면’이라는 전제로 조금씩 미뤄왔음을 깨달았다. 실제로 언젠가는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처럼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상상해온 행복한 평화를 얻게 될 것처럼.
너무나 아름답군. 파비앵은 생각했다. 그는 보석처럼 빼곡히 들어찬 별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파비앵과 그의 동료 말고는 아무도 없는, 살아있는 것이라곤 없는 세계에서. 그들은 보석이 가득한 방에 갇혀 다시는 그 방을 나올 수 없는 동화 속 도시의 도둑들 같았다.
이보게 로비노.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그 힘을 만들어내면 해결책은 뒤따라온다네.


Book

데이비드 브룩스 <두 번째 산>

사람보다는 시간을, 인간관계보다는 생산성을 중시하는 바람에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하지 못하는 이런 습성은 내 인생에서 반복되고 있다.
당신의 개성은 사랑이 당신 인생에 개입했거나 당신 인생에서 떠나간 장소들의 숨은 역사이다. 당신의 개성은 부모님이 당신을 사랑했던 방식 또는 사랑하지 않았던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천성적 열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킨다. 그렇지만 당신이 어떤 것에도 영원히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 어떤 것에도 빠져들지 못할 것이다. 헌신하는 인생은 소수의 소중한 '예'를 위해 수천번 '아니요'를 말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사랑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우리의 두 영혼은 하나로 합쳐지고 완벽하게 뒤섞여서 합쳐진 자국조차 남지 않았으며, 그 흔적은 앞으로도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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