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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Apr 28. 2021

시간 여행, 어린 나를 만나다

서울의 변두리, 공항 가까이 비행기 소리가 나른한 곳. 그곳 좁은 인도에 "까치산역"이 있다.

지하철 이름은 까치산인데 정작 까치산은 빈번한 개발로 면적의 절반이 사라진 동네.

역사가 유난히 깊어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넘어질라 손잡이를 꽉 잡아야 하는 곳. 

목을 한껏 젖히고 지상으로 올라가는데 세월만큼이나 때가 탄 높은 천장과 뿌연 형광등

순식간에 '훅' 30년 전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래 그랬지 그랬어'


예나 지금이나 까치산역 입구 주변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꽃 장수, 옷 장수, 화장품 장수, 오뎅 장수

서울시장이 혹시 이 동네를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번잡하기가 수십 년 전과 똑같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의 반을 점령하다시피 한 꽃장수는 대낮부터 한 잔 한 건지 벌건 얼굴로 화분 하나 구매한 아줌마를 붙들고 한참을 얘기한다.

그래도 우리 가게가 제일 싸다는 둥, 여기같이 좋은 물건도 없다는 둥

마치 반대의 사실을 숨기려는 듯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길다.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시간인데 이 곳은 어찌 이다지도 그대로일까?

까치산역과 큰 도로변, 시장, 굽이굽이 고갯길과 그 옆에 즐비한 주택들, 오랜 학교가 그 위치 그대로  있어 길을 따라 걸을 때마다 30년 전 시간이 훅훅 지나간다.

예전 이 곳은 단독주택촌으로 전체적으로 낮고 차분한 마을이었다. 

시간마다 울리는 교회 종소리가 건물에 막히지 않고 온 마을에 울려 퍼지던 곳이다.

지금은 거의 다가구, 빌라로 변해 한 두 개 남아 있는 단독주택이 신기하고 반가워 자꾸 멈추게 된다. 


동네 대표적인 부잣집이었던 나무 대문 집도 사라지고 우리가 잠시 살았던 지선이네 집도 사라졌다. 온통 빌라, 다가구 주택. 집세 내는 세입자들이나 대출 잔뜩 끼고 은행이자 내기 바쁜 집주인들이나 모두 살기 버거워졌다. 그때는 마을의 푸른 하늘이 여유로웠는데 지금은 하늘따위 맡는 게 임자라는 듯 3-4층 빌라가 꽉 채우고 있다. 주민들은 시장에서 5천 원짜리 티셔츠 한 장 사면서 사이즈가 맞는지 몇 번을 확인하며 악착을 떤다. 월세는 못 깎고 꼴랑 5천 원 하는 티셔츠도 깎을 수 없으니 괜히 멀쩡한 옷 사이즈를 트집 잡으며 손님 행세를 해 본다.  


나는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교 4학년 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가족이 경기도로 이사 가기 전까지 살았으니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낸 셈이다.

시장통에서 고무줄놀이하고 놀이터에서 다방구, 말뚝박기, 짬뽕 놀이하며 해 질 녘까지 놀았다. 

그 놀이터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니 동네를 걷다 어릴 때 놀던 놀이터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가는데 가슴이 벅찼다. 내가 거기 있었다. 거기에 내가 있었어


놀이터는 신식으로 개조되었다.

모래바닥은 폭신폭신한 탄성고무 바닥이 되었고 회색 돌이었던 미끄럼틀은 친환경 소재의 무지갯빛 미끄럼틀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학교, 학원으로 바쁜지 한 명 보이질 않고 동네 할머니들이 죽치고 앉아 요즘 전 세계 코로나 상황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그 상황이 너무 웃기고 우습다. 늙으면 80세나 100세나 다 친구라며 그중 제일 목소리 큰 할머니가 떠들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미세먼지 많은 봄 날씨가 그날따라 웬일인지 예전처럼 맑고 파랗게 나를 반긴다.

잘 왔다고 기다렸다고 잘 왔다고 잘 왔다고


어릴 때는 온 세상이었던 곳이 이제와 보니 고작 3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좁은 동네였다.

나는 이 동네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이 동네에서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보여주고 싶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고 존재감 약하던 내가 얼마나 잘 컸는지

성공해서 금의환향하는 드라마 TV문학관의 유치한 조연이 된 것 같았다.


30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30년 전의 시간이 흐르는 그곳에 가서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잘 살았다고, 열심히 살았다고, 나는 잘하고 있다고 예나 지금이나

그러니 무언가 꼬일 때 좀 쉬어도 된다고 그거 하나 못했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존재감 없던 어린 내가 이렇게 잘 된 것 보라고


가끔 어린 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여행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어린 시절 슬프고 고단하던 곳이었는데 3시간여의 짧은 여행 후에 매번 내가 발견하는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나는 이 시간여행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서 쓸 예정이다.

그 끝에서 결국 내가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리할 예정이다. 


첫 번째 시간 여행의 마무리는 까치산역 입구 오뎅 장수의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한다. 




수레를 끌고 지나가던 60대 중반의 여인이 갑자기 오뎅 포장마차 앞에 선다.

"저기! 거기가 파출소에 누가 먹고 튀었다고 신고했어?"

"응?? 어어어어 내가 신고했어. 아 얼마 전에 어떤 놈들이 여자애도 한 명 끼고 와서는 이것저것 먹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해 그래서 내가 살짝 사진을 찍었지. 근데 한 명 한 명 사라지더니 제일 마지막에 남은 놈이 막 뛰는 거야. 그래서 내가 뛰어갈까 하다가 그걸 어떻게 잡아? 그냥 파출소에 신고했지."

"못 잡아.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잡아? 나도 숱하게 당했어"

"나도 몇 번 당했어 한 세 번인가? 근데 못 잡아"

못 잡을 거 뻔히 알면서 그래도 혹시나 파출소 놈들은 좀 다르려나 기대 반 우려반 찔러보는 심정으로 파출소에 신고하고 까맣게 잊고 있던 걸 지나가는 여인이 상기시킨 거다.

"나는 세 번이 뭐야? 많이 당했어. 한 번은 쩌기 농협까지도 쫓아간 적이 있다니까."

"나는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그냥 한 세 번?"

"파출소에서 좀도둑이라 못 잡는다고 전해 달래"


너나 할 것이 없이 바쁜 곳이다. 본인이 당신보다 훨씬 많이 당했다며 동조를 하는 듯하더니 막판에 용건을 툭 던진다.

"에? 파출소에서? 아니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이제사 그 따위 소리야? 아 못 잡으면 말라고 해. 아이고"


수레를 끌던 여인은 누구 들어라는 건지 허공에 대고 한마디 더 보탠다

"못 잡아 못 잡아"

그 여인은 괜히 좋지도 않은 일의 마무리를 빨리 끝내고 싶었을 거다. 그 와중에 또 얘기를 거들어 준 거 보면 같은 처지의 사람인 게 분명하다.

길 가던 여인은 어쩌다 파출소 직원들을 만나서는 별로 좋지도 않은 소식을 전해 주게 되었을까? 세상에 많고 많은 좀도둑 다 잡지 못하는 거야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런 얘기를 지나가는 여인에게 전해 달라는 파출소는 다 무언가?

이 곳은 정말 30년 전 시간에 갇혀 있는 걸까?


오뎅 장수의 얘기는 계속된다. 포장마차에는 또 다른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보아하니 오전부터 죽치고 앉아 주인의 말동무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니 저저번 준가? 어떤 놈들이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이것저것 막 주워 먹는데 좀 이상해. 여자애는 안 먹는다 하고. 그러더니 한 놈 한 놈 사라지는 거야. 내가 좀 이상해서 핸드폰을 요레 들고 살짝 찍었지.  남자애 두 명이 찍혔어. 그러더니 막판에 남은 놈이 냅다 뛰는 거야. 내가 어찌나 화딱지가 나던지 내 이것들을 쫒아갈까 하다가 사진 들고 가서 파출소에 신고를 했지. 그랬더니 이제 와서 못 잡는다고 지랄들이지. 아이고"

그 후로도 주인의 얘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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