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도리작가 Jul 14. 2022

가면을 쓰면 바람도 나겠다


브런치 글쓰기 플랫폼에서 몇 년간 글을 썼다. 발행한 글만 150편, 작가의 서랍에 들어간 글은 아마 그 2배는 될 거다. 글이란 원래 자신을 갈아 넣는 작업이라 수 백개의 글을 쓰려면 아마 거의 나를 다 갈았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최근 발행 글은 2달 전이다.


1천 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겼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몇 개월에 걸쳐 불안하고 힘든 와중에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쓰면서 수 백명의 독자가 생겼고 대기업 임원인 남편과 나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또 수 백명의 독자가 늘었고 그 후로도 꾸준히 늘어난 결과이다.


유투버 구독자가 최소 만 명 단위인 것에 비하면 천 명은 적은 수이다.

그러나 영상과 달리 스스로 찾아 글을 읽는 수고를 하고 당신의 글을 또 읽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한 독자들이다.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브런치에서 나는 대기업 임원의 아내이지만 물질보다는 더 높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한 때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은 사람이다. 조직이 주는 물질과 명예 대신 혼자만의 자유 속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늘 그런 이미지를 추구하며 그런 각성과 반성과 다짐의 글들이 백 편이다.


아닌 듯 하지만 결국 그 가면으로 귀결된다.

아무래도 나는 지친 것 같다. 벗고 싶은 두툼한 가면을 벗고 민낯을 보이려니 부끄럽다.

브런치의 내 모습이 거짓은 아니다. 나는 분명 많은 부분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가끔 무거운 가면을 벗고 싶을 때가 있다. 



-------------------------------------------------------------------------




요즘 고민이 생겼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고민이다.

자꾸 다른 남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 아닌 다른 남자들.

직업도 다양하다.

애들 학원 선생님, 동네 의사 선생님, 우리 집 유리창 갈러 온 남자까지.

다 멋있어 보인다. 다 잘생겨 보인다. 이게 며칠 간다. 내가 미친 걸까? 

난 고상하고 도도한 여자인데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러지?



처음 아이 학원 선생님이 자꾸 머릿속을 맴맴 돌 때는 정말 심각했다. 심지어 그 선생님 진짜 못생겼다. 약간 유인원스럽게 생겼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난다. 이런 미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 사이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 안과  선생님. 

정기검진을 갈 때마다 왜 이리 친절하지? 나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이런 미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또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식이다. 지금도 남자만 바뀔 뿐 진행 중이다.

지금은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권태기인가 싶다.

동네 지인한테서 같은 고민을 들었다. 우린 함께 웃었다.



올해 결혼 15년 차이다.

처음 남편을 보았을 때 머리에서 커다란 후광을 보았다.  최초 그리고 마지막 신기한 경험이었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박사학위까지 삼성전자 과장이었다. 심지어 표정도 좋다. 잘 생겼다기보다는  좋은 인상의 남자였다.

엄마 아빠는 고무되었고 나는 흥분했지만 묘한 열등감을 동시에 느꼈다.



얘기도 잘 통하고 관심분야도 비슷하고 착하고 돈도 잘 벌고 그 부모님들도 인자하고 좋은 분들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전생에 나라를 두 번 구했나 보다 했다.

나는 우쭐하면서도 조금 불안했다.

결혼은 처음이라 막상 결혼했는데 막장이면 어쩌지?



기우였고 처음 모습 그대로 꾸준히 아직도 세상에서 마누라가 제일 예쁜 줄 아는 착한 남편이다. 월급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나오는 모든 상여금 무슨 보너스 심지어 이런저런 상품권까지 회사에서 주는 모든 것을 가져다준다.

나는 사치하지 않는다. 살림꾼이다. 사실 재테크에도 능하다.  남편도 바보가 아니니 내가 잘할 걸 알고 다 보내주는 거다. 그래도 내가 여유롭게 사는 건 다 남편 덕이다.



남편은 요즘 배가 많이 나왔다. 뚱뚱하진 않은데 요즘 회식이 많다. 그래서 배만 뽈록 아마 술 배인가 보다.

"남편, 금방 출산한 여자 배 같아." 

놀렸다. 남편은 그저 웃는다.



어쩌면 전생에 나라를 두 번 구하고 만난 지 모르는 최고의 남편인데도 권태기는 온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남편과 함께 골프를 쳤다. 처음으로 남편이 골프 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뒤태가 얼마나 넓고 듬직한지 묘하게 흥분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 함께 운동하면 좋았겠지만 나는 골프를 그만두었다. 지금은 원래 하던 요가를 계속한다. 남편은 요즘 골프에 더 맛이 들어 신나게 다닌다. 토요일, 일요일 약속이 잡힐 때마다 나간다. 심지어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 나가기도 한다.

그 사이 내 눈에 계속 다른 남자들이 들어온다.



가면을 벗고 말하면 그래서 바람이 나나 보다 싶다.

내가 지금 바람이 난 건 아니니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는 원래 헛헛함을 타인에게서 채우지 않는다. 



요즘은 칼 세이건의 묵직한 책 '코스모스'를 부지런히 읽는다. 흥미로운 책이다. 쇼팽 녹턴 20번을 독학 중인데 1/3 정도 했다. 

브런치가 너무 번잡해져서 새로운 플랫폼을 찾았다.

기분 따라 여기저기서 놀 생각이다.



남편 회사에서 신라호텔 갈비탕을 보냈다. 작년까지는 삼계탕을 보내더니 올 해는 갈비탕이다. 신선하다. 한 팩은 남편 끓여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듣고 싶은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