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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May 10. 2022

나에게 듣고 싶은 말

잘했어, 수고했어

긍정적인 '말 한마디' 정해서 꾸준히 해보기


저번 불교대학 수행과제였다. 

고마워, 사랑해, 멋있어, 수고했어, 놀라워, 대단해

누구나 듣고 싶은 한마디의 모든 말들

그중 한 가지를 정해서 가족, 친구, 동료 가까운 사람들에게 꾸준히 해보기.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니.


생각해보면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은 소리는 참 많았던 것 같다.
학생 때는 '열심히 하는구나, 성실하다, 모범이다.' 직장 다닐 때 윗사람에게는 '잘했어, 수고했어.' 동료들에겐 '똑똑해, 일 잘해.' 부모님에겐 '잘한다, 잘 산다.' 친구들에겐 '지혜롭다, 여전하네.' 뭐 이런 말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 말이기도 할 것 같다. 

좋은 말이란 게 중독성이 있어서 들을수록 더 듣고 싶고 못 들으면 서운하고 내가 뭐 잘못했나 불안하고 그렇다. 말이란 게.


그걸 바꾸어 내가 좋은 말 한마디를 정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꾸준히 해보라는 거다.

좋은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떤 말을 좋은 한마디로 정할까 고민을 하다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해 줄 좋은 말 한마디를 정하려니 가족 모두에게 적합한 한 마디를 찾기가 여간 고민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주말 저녁 식사 후에 가족들에게 한번 물어보았다. 


"저번 주 불교대학 수행과제가 좋은 말 한마디를 정해서 꾸준히 해보기인데 영 정하기가 어렵네? 다들 나한테 듣고 싶은 한마디가 뭐야?"

처음 듣는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쉽게 나올 줄 알았는데 어? 고민들을 한다.

침묵이 길어지면서 그 분위기 사이에서 내가 바로 알아챈 것은 아내에게 엄마에게 듣고 싶은 한 마디는 지금 본인에게 부족해서 잘 듣지 못하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근데 그건 쫌 나한테 부족한 쫌..."

딸이 얼버무린다. 바로 그거다. 그래서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거다.


"기탄없이 말해봐"

하하하하 남편이 웃음을 터트린다. 


딸과 남편이 쉬이 말을 하지 않아 초3 둘째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아들은 엄마한테 듣고 싶은 말이 뭐야?"

"그게 쫌 그래."

"뭔데? 뭐라도 다 좋아."

아들이 결심한 듯 말한다.

"음  '우리 같이 놀자'"

앗 의외의 대답이다. 내가 생각한 말들과 다른 종류의 한마디인데 초등 3학년이라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 '엄마랑 같이 놀자'

생각해 보니 요즘 극도로 딸리는 체력에 하두 누워 있어서 아들 혼자 노는 날이 많았고 조금 신나게 놀라치면 "뛰지 마, 층간소음!!" 할 때가 많았고 저녁 먹고 요즘 한참 가지고 노는 너프건 좀 쏠라 하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읊곤 했다. 

아들이 하고 싶은 것보다 아들에게 시켜야 할 엄마의 의무를 완수할 마음으로 하루 종일 동동이다. 


아들이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은 함께 너프건 전쟁하고 줄넘기할 때 엄마가 옆에서 기록 세주고 재미있는 책 읽어주고 밤에 잠 들 때 등 긁어주고 잠깐 옆에 누워 있어 주는 것.

참 소박한 아들의 소원. 

아들이 이제 10살. 이렇게 엄마 옆에 붙어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거실이 장난감으로 정신없고 늘 뛰지 말라 잔소리하고 식사시간도 왁자 왁자 소란스러울 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가끔 어떤 일로 아들이 집에 없을 때 -학원을 늦게 갔거나 캠핑을 갔거나 - 적막한 집 안 공기에서 아들의 존재를 깊게 되새긴다.

어쩌다 한 번씩 조용하다 그런 조용한 날이 점차 많아지다 어느 날부터 조용한 날만 계속되겠지.

사람은 지금 여기가 행복인걸 모르고 만약 이렇다면, 저렇다면 하며 멀리서 행복을 찾는다. 이젠 조금만 더 깨어나자. 이제 아들과 신나게 놀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래도 딸은 생각이 길어지나 보다. 

"남편은?"

"음 음 나는 그냥 뭐 수고했어?"

'수고했어'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1순위가 '수고했어'라고 어떤 설문조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의젓한 남편도 가끔은 큰 아들 같아서 아내에게 '수고했어, 잘했어, 역시'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나나 보다. 그런데 조금 억울한데?

나는 남편에게 수고했어 잘했어 이런 칭찬 자주 한다. 증거는 없지만.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서 계속 듣고 싶은 말인 걸로 해석하자.


남편은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아하고 참 회사생활 잘하는 사람인데 현재 윗사람 **실장이 약간 소시오패스 기질이 있어서 아주 죽을 맛인 거 같더라. 그 전 상사와는 아주 잘 지내더구먼 지금은 달력 빨간 날 체크하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은 나에게 참 고맙고도 고마운 사람이다. 남편의 그 많은 수고 덕에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지낸다.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중3 딸의 대답이 궁금하다.

최근 중간고사를 마무리한 딸. 딱히 공부하라는 잔소리 안 하게 해 주는 고마운 딸.

1년 365일 하루같이 루틴 하게 공부하지 않는 것이 맘에 안 들어 못마땅해해도 늘 허허실실 웃는 아이

딸은 다행히 뾰족한 내가 아닌 둥글둥글한 아빠의 기질을 많이 닮았다. 

다른 과목 다 잘 치르고 수학 망쳐서 잔뜩 주눅 들어 있는 아이

"음. 잘했어?"


'잘했어'

그렇구나. 딸은 '잘했어' 소리를 듣고 싶었구나.

딸에겐 잘했어 소리를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정한다.

생각해 보면 잘하는 것 투성인데 왜 그 소리에 그렇게 인색할까?

자기 공부, 자기 시험, 자기 수행 완전히 스스로 알아서 하고
독서를 즐기니 이해력도 좋고 문장력도 좋고
성격도 좋고 서운한 것 속상한 것 금방금방 잊어버리고 실실 웃고

매번 지저분해도 가끔은 호텔처럼 방정리하고
엄마 밥상 차리는 것도 도와주고 식사 후에 늘 자기 그릇 설거지통에 담그고

어버이날에는 그 주 용돈을 다 털어 엄마가 좋아하는 달다구리 호두파이를 사왔더라.

사춘기가 있나 싶게 착하고 순한 아이

뭐가 그리 부족하다고 잘했어 소리에 인색했을까?


엄마 하는 것처럼 정리해라. 엄마 한참 공부하던 때처럼 해라.

아이에게 어른 기준을 걸어놓고 거기에 도달하라고 하는 건 불공정하다.

많이 반성한다. 

욕심 많고 기준 높은 엄마 때문에 지극히 정상인 딸이 고생이다.

딸이 엄마한테 듣고 싶은 한 마디는 딸에게 부족한 점에 대한 말이 아니라 엄마의 인색한 한 마디의 또 다른 표현이다. 나 진짜 열심히 하는데 잘했다고 좀 해주지 하고


아들 '같이 놀자'

딸 '잘했어'

남편 '수고했어'

어쩌면 나에게 서운했을 가족들. 이런 것도 모르고 혼자 질주하고 있었다니.


나 이런 소리 듣고 싶다 생각은 했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말 해 줘야지 생각은 안 하고 살았다.

수행과제는 꼭 진짜 수고하고 잘할 때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꼭 수고하지 않았어도 아주 잘하지 않았어도 꾸준히 긍정적인 말을 하라는 의미일 거다. 

문득 살면서 내가 들었던 긍정적인 말들이 모두 내가 정말 잘해서 들은 소리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소리 들을 만큼은 아니라도, 그래도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멋지다고 

선량한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준 긍정적인 신호들이 한 곳에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거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만큼은 내가 받았듯이 잘해도 못해도 좋은 말들을 해줘야지 다짐해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오늘 저녁 한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져 보기 바란다.


"살면서 나한테 듣고 싶은 한 마디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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