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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리작가 Sep 07. 2022

엄마가 칠순이다

올해 엄마가 칠순이고 내가 48세라면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는?

올해 엄마가 칠순이고 아빠와 같이 산지 38년째라면 엄마가 아빠와 결혼한 나이는?




엄마가 올해 칠순이다.

엄마 외가 쪽 가족들과 조촐하게 식사를 하려는데 장소를 어디로 할까 하는 대화를 하는 중에 중학생 딸이 물어본다.

"잠깐, 그럼 할머니가 엄마를 음- 22살에 낳은 거예요? 와 진짜 빨리 낳았네요"

놀라는 딸을 앞에 두고 나도 엄마도 별 말이 없다.


내 나이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결혼기념일 횟수를 굳이 연관 지을 필요도 없고 깊이 생각할 이유도 없다. 중학생 딸은 그냥 더하기 빼기 해서 할머니가 참 빨리도 결혼을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언젠가 중학생 딸이 그 사이 이상한 수학적 오류를 눈치챌 때쯤이 아닐까 한다.

엄마의 대단하진 않지만 출생의 비밀을 말해 줄 때가.


엄마가 칠순이다. 시간이란 참

친정오빠는 어디든 좋으니 엄마가 가고 싶은 곳에서 식사하자고 했단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부모나 자식이나 은연중에 아들과 딸의 적당한 역할을 염두에 둔다.

엄마는 오빠 얘기를 귀담아듣고 나는 일단 가만히 있는다.

참 고마운 말이긴 한데 혼자 살면서 안 입고 안 사고 안 먹으면서 모은 돈으로 좋은 곳 가자는 아들에 대한 연민이 가슴을 찌른다.


엄마가 좀 뻔뻔한 사람이라면 아들이야 돈을 쓰든 말든 이때만큼은 좀 비싼 데서 먹자고 할 텐데 참 천성이 그렇지가 못하여 가격 재고 분위기 재고 이것저것 따지느라 머리 아파하신다.

보다 못해 비용은 내가 절반 부담할 테니 중심가 백화점 유명 한정식에서 식사하면 어떻게냐? 오빠한테 한번 말해 보라 했다.


돌아온 답은 식사비용은 오빠가 다 부담할 거라고

자존심인지 똥고집인지 평생 주변 사람들의 오해를 받은 오빠는 참 한결같다.

오빠가 적당히 꼼수를 부릴 줄 안다면, 오빠가 남들 보기 좋게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적당히 적당히 살았다면 그렇게 잘 다니던 회사에서 상사와의 트러블로 본인이 퇴직했을까?

그냥 적당히 남들 비슷하게 승진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살았겠지

그러나 어차피 그 사람은 오빠가 아니다.


남들 보기 화려하지 않아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오빠가 예전에는 참 답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우직한 모습에 겸허해진다.

저렇게 벽창호 같아서 도대체 어떻게 살려나 한심했던 적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못에 박혔을까 이제야 걱정이다.


명절에 선물 몇 가지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문득 결혼하고 한 번도 오빠한테 명절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친정오빠는 관심 목록 리스트에도 올리지 않았던 참 무심한 동생

곱창김 세트를 샀다. 혼자 반찬 마땅치 않을 때 밥만 해서 먹어도 맛있게

엄마 편에 보냈는데 며칠 후 카톡 문자가 왔다.

그 흔한 이모티콘, 그 흔한 물결 표시 하나 없다.

어머니 편에 김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명절에 보자고

맞춤법과 적당한  바꿈, 쉼표와 마침표를 지킨 흡사 원고지 문장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오빠인데 나와 엄마를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은 오빠를 변화시키려고 참 부단히도 애를 썼다.


오십이 다 되어가니 이제야 깨닫는다.

오빠는 오빠의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고.


엄마는 늦은 나이에 애 둘 딸린 홀아비와 결혼하고 남들은 십수 년에 걸쳐 겪는 결혼과 출산과 육아의 충격을 한꺼번에 얻어맞고 가끔 몸져누웠었다.

그 때면 오빠는 용돈을 모아 동네 슈퍼마켓에서 카스텔라빵과 바나나우유를 사 와 검은 봉지 채로 엄마 머리맡에 놓아두었었다.

엄마는 진즉 알고 있었다. 오빠가 착하고 순하다는 것을, 반면 나는 눈치 빠르고 이재에 밝아 아마 나중에 잘 살 거라고 했다.


대체 엄마는 아빠의 뭘 보고 결혼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아빠가 마음만 먹으면 갈고리로 낙엽 쓸어 모으듯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아주 부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엥?? 농담인지 뭔지 웃고 말았는데 엄마는 아빠의 뻥에 넘어간 바보이거나 아니면 사랑에 빠진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였나 보다.


칠순을 맞이한 지금, 엄마는

딱히 큰 병 없고 젊을 때 비하면 양반이 된 남편과

딸과 사위, 손녀, 손자, 그리고 아들이 있다.

실력 좋고 성격 좋은 남의 아들인 사위를 보면서 늘 아들이 눈에 밟히는 눈치다.

어르신들이 그 나이 되면 자식들로 자기 삶에 점수를 주던데 이 정도면 평균은 되지 않나 싶다.


손녀딸뿐 아니라 주변 누구도 나와 친 모녀관계임을 의심하지 않는 엄마가 나의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나의 모친란에는 나 어릴 적 돌아가신 그분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비고란엔 '사망'이라고 큼지막하게 설명까지 달아서. 그 종이를 받아 들 사람들 심정은 생각 않고 행정서류는 참 무심하다. 지은 죄도 없이 마치 죄인인 양 슬그머니 서류를 반으로 접었던 기억이 난다. 대체 엄마 이름은 어디에서 볼 수 있냐고 아빠한테 물은 적이 있다. 아빠와의 혼인관계 증명서에는 이름이 올라 있단다. 이게 무슨


평생 공들인 자식들인데 관계도 증명할 수가 없다니

속상하지만 그만둬야겠다. 엄마도 그걸 바라실 테니


올해 엄마가 칠순이다.

엄마 칠순 용돈은 어찌할지 오빠와 속닥속닥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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