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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y 30. 2021

22nd JIFF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가 끝나고 한 달만에 올리는 전주 이야기

작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했던 탓에, 매년 가던 전주를 2년 만에 다녀왔습니다. 상영 규모가 축소되어 다른 해에 비하면 다소 적적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거리 곳곳에는 ‘영화는 계속된다 - Film Goes On’이라는 올해 전주의 슬로건이 걸려있었습니다.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았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상영을 비롯해서 제한적으로나마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있었던 작년의 다른 영화제들과는 다르게 작년 영화제를 제대로 개최할 수 없었던 전주였기에 이 직접적인 슬로건이 더욱 뭉클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상한 시기이니만큼, 올해 영화제가 이렇게 개최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방문 일정을 고려해서 상영작들을 보며 올해는 라인업이 좀 약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기우였습니다. 샤흐람 모크리의 ‘수상한 범죄’라는 최고의 작품을 만났기 때문이죠. 얼마나 좋았냐면, 사실 이 작품은 일정이 맞지 않아서 전주에 다녀온 다음 날 온라인으로 감상했는데, 작은 모니터로 보자마자 이 영화를 극장에서 안 보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한 번 남은 오프라인 상영회차를 노리고 오직 ‘수상한 범죄’를 보러 평일에 전주를 무리해서 한 번 더 다녀왔을 정도. 그 정도로 좋았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영화를 만나면 그 영화제가 영화 자체로 기억되는 경우가 있는데, 전주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통행증’과 ’24 프레임’이라는 두 걸작을 만났던 2018년이 그랬었죠. 2021년의 전주는 아마도 '수상한 범죄'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래에 이번 전주에서 관람한 12편(오프라인 8편, 온라인 4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세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평을 적어보았습니다. 영화제를 다녀온 지 한 달만에 적는 글이지만, 이렇게라도 정리를 하니 전주가 마무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수상한 범죄>

샤흐람 모크리의 ‘수상한 범죄’는 기이하고도 간절한 걸작입니다. 샤흐람 모크리의 네 번째 장편인 '수상한 범죄'는 이란 혁명의 불씨가 되었을 뿐더러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극장 방화 사건을 소재로 합니다. 극장에서 벌어진 참극을 영화라는 매체로 풀어내는 이 영화가 현실에 맞물리는 순간의 기이한 관계. 다소 산발적으로 배치된 '수상한 범죄' 속 플롯에 담겨있는 것은 영화(에서의 상상)와 현실(에서의 비극) 사이의 상호작용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세 개의 시간대가 (서로 다른 시점 쇼트를 유려하게 사용해) 뒤섞이는데, 1970년대의 실제 '사건', 2020년의 극화된 '사건', 그리고 극중극 ‘수상한 범죄’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슴’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70년대 사건 당시 상영되었던 작품이자 극중극 ‘수상한 범죄’ 속에서 상영되는 작품이기도 한 이 ‘사슴’이라는 작품을 매개체로 서로 다른 시점들의 평행선은 뒤틀리기 시작하고,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빌어 세 개의 시간축 사이의 경계는 서서히 흐려져 갑니다. 설명을 하기에 불가해한 마법같은 순간이 더러 찾아오는 이 영화는 그 전체가 마치 누군가의 몽상 같기도 합니다. 영화가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는,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구해낼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 ‘수상한 범죄’는 시네마가 현실을 바꿀 수도 있(었)다고 믿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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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범죄 / Careless Crime / جنایت بی‌دقت

dir. 샤흐람 모크리 (이란)



<아버지의 길>

스르단 골루보비치의 ‘아버지의 길’은 우직한 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작동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사회를 상징적인 방식으로 비판하는 이 영화에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 아버지라는 인물은 가족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이 영화에서 니콜라의 손과 발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시골 프리보이에서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하는 여정이 굳이 인물의 신체적 능력을 한계까지 시험하는 것도, 주인공이 집을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려는 주인공의 행동도 말하자면 (극중 주인공의 말처럼) 제도에 대한 나직한 항거인 동시에 일상을 되찾기 위한 간절한 염원으로 보입니다. 기계 혹은 제도의 개입이 최소화되는 이 고단한 여정 속에서, 영화 내내 관객들을 옥죄어오는 답답함이야말로 이 모든 노력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의 황량한 풍경화입니다. 결국 '아버지의 길' 뒤에 남게 되는 것은 제도에 대한 기나긴 탄식과 개인을 향한 자그마한 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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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 Father / Otac

dir. 스르단 골루보비치 (세르비아)



<컨퍼런스>

이반 트베르도프스키의 전작 ‘동물학’은 독특한 발상이 돋보이는 드라마 정도라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신작 ‘컨퍼런스’는 절치부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야기의 잠재력과 세공력이 굉장합니다.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인질극을 소재로 삼아 사건 이후 십수년이 지난 이들의 ‘재회’를 통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굳이 점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컨퍼런스'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잊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뇌까리듯, 극중 (타의적으로 붙여진 행사명) ‘컨퍼런스’는 트라우마를 떠나보내기 위해서 트라우마를 불러오는 일종의 의식처럼 치러집니다. 관객들은 물론 ‘컨퍼런스’에 참여한 사건의 당사자들이 기억을 되살려가며 사건 당시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구체화하자, 결국 비극의 실상은 인물들은 물론 관객들까지 괴롭하는 질문이 되어 뇌리에 박힙니다.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오른 참담한 기억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측면에서, ‘컨퍼런스’는 묵직하고도 예리한 시선으로 사건을 관찰하고 또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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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 / Conference / Конференция

dir. 이반 트베르도프스키 (러시아)




친구들과 이방인들 / Friends and Strangers

dir. 제임스 본 (호주)


다가올 세상 / The World to Come

dir. 모나 파스트볼트 (미국)


어둠 속의 빛 / Fires in the Dark / Des Feux dans la Nuit 

dir. 도미니크 리에나르 (프랑스)


팬 걸 / Fan Girl

dir. 앙투아네트 하다오네 (필리핀)


사랑 뒤에 남은 두 여자 / After Love

dir. 알림 칸 (영국)


전장의 피아니스트 / Broken Keys / مفاتيح مكسرة

dir. 지미 케이루즈 (레바논)


공중보건 / Social Hygiene / Hygiène Sociale

dir. 드니 코테 (캐나다)


보호자 / Brother’s Keeper / Okul Tırası

dir. 페리트 카라한 (터키)


아빠와 아들 / Here We Are / הנה אנחנו‎

dir. 니르 베르그만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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