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려 해 본 적 있는가
밤 12시 10분, 일과를 마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30년간 인생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결심으로 시작했지만 녹록지 않다. “오늘 하루도 참 열심히 살았다.”라고 말해줄 여유도 없이 집에 들어가면 잠에 곯아떨어져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선다. 그리곤 하루를 쪼개고 쪼개어 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독특한 사람으로 비친다. 뚜렷한 직업은 없어 보이고, 대체 생활비는 어떻게 버는지 꽤 궁금해하는 눈치다. 요즘 말로는 ‘N잡러’, 부모님 눈엔 세상 바빠 보이지만, 길에다 돈이고 시간이고 뿌려대고 다니는 ‘백수’다.
현재 사용하는 명함은 4개, 카카오톡 연락처는 3,903명. 거의 매일 사람을 만나 회의 아니면 모임을 2개 이상 진행한다. 구글 지도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2021년 총 이동한 거리는 지구 둘레 1바퀴에 해당한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사회운동가, 대학생 기후정의단체 강원지역 대표, 비영리스타트업 대표, 농민단체 상근자, 대학생 농사동아리 춘천지역 대표, 도시농부, 환경미디어 객원기자, 한국농정신문 기자,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운영위원, 춘천시 청년발전위원회 위원, 춘천시청년청 기후환경분과장, 유튜브 편집자, 브런치 작가 등 본인을 수식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가고 싶은 것뿐이다. 오늘 당장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 말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뜨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매년 날이 추워지기 시작할 즈음부터 안도현 시인의 ‘연탄 한 장’을 노래한 안치환 선배님의 ‘연탄 한 장’을 자주 듣는다.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싸늘해지는 가을 녘에서 이듬해 봄 눈 녹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그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듯이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 게 두려워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려 하지 못했나 보다
하지만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길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연탄 한 장(안치환 8집 외침) 中 -
지난 한 해 동안 나의 삶은 어땠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되기도 한다. 과연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려 노력했는가? 노래를 듣는 내내 평가보다는 매년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 되곤 한다.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고 싶다는 다짐은 매년 하지만 언제나 발목을 붙잡았던 건 내 가슴 속 깊숙이 박힌 이기심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또 다음 해를 준비한다. 나를 산산이 으깨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세상 미끄러운 길이 바로 여기 있다고 귀띔해주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