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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종 Dec 22. 2024

응원봉이 만든 다시 만난 세계

광장에 우뚝 선 2030 여성, 바뀌는 시위문화는 우연이 아니다

지난 12월 7일과 14일 ‘빛의 혁명’을 만든 MZ세대가 혹 민주 세대를 일컫는 말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K-POP 음악과 응원봉으로 가득 찬 집회는 흡사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야구장 구호처럼 재밌는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K-POP 음악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지난 12월 7일 여의도, 국회 표결 전까지는 여느 집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표결이 무산되고 밤이 되자 분위기는 바뀌었다. 국회를 둘러싸며 행진을 시작했고, 거리에는 다양한 응원봉을 든 2030 여성들이 가득 채웠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국회 앞의 오색찬란한 빛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화여대에 게첩된 대자보를 읽어보면 이들이 광장에 나와 탄핵을 이유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지 못해도 2014년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2016년에 광화문을 알며 2022년의 이태원을 압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참담함을 모르고 산 세대입니까. 기계에 끼어 죽고 바다에 빠져 죽고 컨테이너에 깔려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춘을 진정 모르십니까?”     


6070 기성세대에게는 광주라는 비극이 자리 잡고 있었다면 지금의 2030세대에게는 세월호가 자리 잡고 있고, 그 비극이 이태원에서 재현되고 채상병으로 다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계엄령을 알지 못하고, 군사독재를 알지 못하고 자유와 민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소위 86세대로 불리는 기성세대들 이후에도 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느끼는 시대에 대한 갈망, 절박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새로운 시위문화를 주도하는 젊은 여성들이 집회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2030 여성들은 집단화되어 있었고,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하이브 본사 앞에 가면 팬들의 말들을 모아놓은 트럭 시위가 있다. X(구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를 보면 항상 아이돌의 이름들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시태그 총공’의 한 형태로 집단적인 행동전을 통해 의사를 표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소속사에게 이메일을 집단적으로 보내기도 하고, 선전물을 만들어 SNS를 통해 널리 알리는 활동에도 사뭇 시민단체 활동가만큼 익숙하다.      


14일 여의도 앞 집회에 참가한 강원지역 참가자가 탄핵 가결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성계는 “2008년 광우병 시위 등 젊은 여성들은 항상 시위의 중심에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번만의 현상으로 보고 ‘기특하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동안 여성들의 참여를 무시해 온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표 공약으로 꼽는 등 ‘젠더 갈라치기’를 이용해온 만큼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탄핵 광장에서 두드러지는 여성 청년들의 참여는 이미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연대의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서울촛불행동 김지선 공동대표는 “10대, 20대 여성들은 여성혐오 문제나 성폭력 문제가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고 꾸준히 행동해왔던 흐름이 있다.”라며 “연대하고 행동하는 것에 이미 익숙한 세대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특히 “정치를 바꿔야지만 자기 삶이 달라진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행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의도 집회에 참석한 김미진씨는 “여성들은 윤석열 정권이 만들어 온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라며 “윤석열은 여성을 향한 배제는 노동자를 향한 배제로, 노동자를 향한 배제는 장애인을 향한 배제로 보여주었고, 평등을 간절히 원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 배제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윤석열은 민주주의를 원하고 평등을 원하는 우리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와 싸우겠다는 지금에 이르렀다.”라며 “페미니스트들은 윤석열을 넘어 성평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14일 2차 대학생시국대회에 참여한 강원지역 대학생들의 모습

2016년 촛불 사회자로 이름을 알린 윤희숙씨는 “원래 초는 추모의 의미였지만 2002년 효순미선사건 이후 누구나 참여하는 집회의 상징물이 되어 촛불 하나만 들면 집회 참가자가 될 수 있다.”라며 “이젠 그 역할을 응원봉과 반짝이는 무언가만 있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너른 광장에 하나 두 개의 촛불이 모여서 수십만 수백만 촛불이 되어서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서 큰 힘이 되었다면 지금은 좀 더 촘촘한 촛불이 되었다.”라며 “다양하고 다채로운 빛들이 단일한 촛불 사이를 촘촘하게 채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팬덤은 사랑으로 움직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최애와 내가 살고 있는 일상,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 집회에 참가한 이들을 과연 누가 이길 수 있을까?”라며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운 광장의 진리는 하나다. 광장은 이미 열렸고, 국민은 이길 때까지 싸운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운 광장의 진리는 하나다. 광장은 이미 열렸고, 국민은 이길 때까지 싸운다는 것이다.”

http://www.chunsa.kr/news/articleView.html?idxno=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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