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냐는 어른들의 질문
초등학교 시절, "넌 꿈이 뭐니?"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제 꿈은 통일입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을 텐데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기억에 남은 것인지,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본능적으로 직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파일럿, 한의사, 선생님, 기업가, 대통령 등등 하루건너 바뀌는 장래 희망들을 빼면 살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딱히 없었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대학 진학이 일생일대의 사명처럼 느껴지는 고3 수험생에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어른들의 질문은 '어느 대학에 갈 거니?',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니?' 등과 같은 것들이죠.
과연 우리나라 수험생 중에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3 때 이미 정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대학 진학을 위해 언제부터 간절히 꿈꿔왔던 것처럼 행동하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만 해요. 그래야 합격 확률이 좀 높아질 테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누군가의 잣대로 규정되고 합격을 향해 만들어진 꿈들 때문에 오히려 진짜 꿈을 찾을 시기를 놓치고 말죠.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에 나가면 뒤늦은 방황의 시기를 맞게 되더군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전까지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존재론적 질문들을 던지면서 말이죠. ‘나는 왜 태어났을까?’,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 말이에요.
처음엔 ‘뭐로 먹고살지?’라는 질문과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다른 것으로 생각했어요. 솔직히 ‘너 뭐 먹고 살래?’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딱히 ‘뭐라도 해 먹고 살겠죠’라는 답변 말고는 답할 말이 없었거든요.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니?,
해야 할 건 하고 나중에 너 하고 싶은 걸 해!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정해져 있는 우선순위가 있다는 듯이 말하는 것 같아요. 모두가 그 정해진 길을 걸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4년제 대학에 입학할지, 2~3년제 전문대학에 입학할지, 그마저도 아니면 바로 취업할지를 선택해야 해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다면 이젠 번듯한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고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려야 하죠. 조금 더 노력해서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와 자동차 하나는 꼭 마련해야 해요.
부모님이 제게 바라는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예요. 물론 부모님의 마음속엔 아들이 보다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뜻이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삼십의 제 인생을 돌아보면 단 한 번도 정해진 경로를 따라간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삶이 누군가에겐 멋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 실상은 좀 달라요.
부모님과 사회가 정해준 경로를 걷는 것이 무서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았죠. 어쩌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용의 꼬리가 될 바엔 뱀의 머리가 되겠다’라는 심보였던 거죠. 그래서 자꾸 새로운 길을 찾아 도전하는 게 취미이자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사실 부모님이 원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는 건 사실 쉽지 않았어요. 끊임없는 잔소리와 함께 서로를 갉아먹는 시간을 견뎌야 하거든요.
하지만 부모님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나 자신을 온전히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도 깨달았죠.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자립할 힘을 기를 수 있었어요.
부모님이 정해준 산을 오르는 것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넘어지는데 연습이 조금 필요했던 거예요. 무서웠으니까요. 이토록 홀로 무서워할 때 “넌 할 수 있어” “너를 믿어”라는 그 한마디를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뭐로 먹고살래?’라고 다그치지 말고 ‘어떤 삶을 살고 싶니?’라고 따뜻하게 물어봐 주세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도 괜찮아요. 그리고 무엇이라고 대답했든 믿어주세요. 또 응원해주세요.
그럼, ‘뭐로 먹고살지?’라는 질문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물음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몰라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