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에 갔지만 살은 섞지 않았어요."
홍대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회포를 풀다가 우리의 대화는 엠폭스로 이어졌다. 지인은 나에게 이번 한국에 와서 혹시 클럽에 갔는지 물었고 나는 이어 “클럽에 갔지만 살은 섞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그렇다. 나는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예전에 하루 바텐더로서 일한 이태원의 클럽을 방문했다. 이른 밤에 도착해서 그런지 클럽 사장님은 손님 없이 텅 빈 댄스 플로어에서 나를 반갑게 반겨주었지만 이내 울상이 된 표정으로 자신의 클럽이 인터넷에서 근거 없이 엠폭스 진원지로 지목되었다고 호소했다. 나도 자료와 뉴스를 찾아봤지만 엠폭스 확산지로 이 클럽이 지목되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고 2개월이 지난 현지점에도 그 소문의 근거를 확인할 수 없었다. 때로는 진실보다 찾기 힘든 게 풍문이다.
클럽이 위치한 이태원의 헤밀턴 호텔 앞 사거리에는 현 정권 여당의 “마약을 뿌리 뽑겠다”라는 선전문구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마치 우리의 현대사회의 욕망은 두 가지로 나누어진 듯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쾌락은 섹스인가 마약인가? 그런 상황에서 매일같이 누군가가 엠폭스에 걸리고 커다란 고통을 느끼면서 사회로부터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진 사람도 없던 나라에서 마약을 뿌리 뽑겠다는 현수막을 보면서 나는 생애 살아 본 적도 없는 레이건 정권 당시의 미국으로 Y2K를 넘어 80년대로 시간여행을 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이유와 배짱으로 스스로 심리적 선진국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한편 나는 다음날 오전 SNS를 통해 내가 다녀온 클럽이 자정이 지나자 다시 손님이 밀물처럼 돌아온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의 어느 봄날 대한민국에서 엠폭스 백신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난데없이 광복을 알게 된 한여름의 1945년 8월의 당시의 조선인의 마음이 그랬을까? 먼저 소식이 제일 빠른 운동권 지인이 접종 소식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치 코로나 대유행 당시 백신을 찾는 사람들처럼 나는 당시 엠폭스 백신 보급을 주관하던 HIV 예방센터 ISHAP의 홈페이지를 수시로 확인했다. 처음에는 예약 분량이 모두 동이 났다. 그러다 강아지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벤치에 앉고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뜬 추가 접종 신청을 보고 가까스로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우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의료원에서 접종을 받기로 되었다. 접종이 가능한 평일에 병원에 갈 수 없는 직장인 게이와 바이섹슈얼을 포함한 MSM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남자)는 어떻게 엠폭스 예방 접종을 받는지 걱정하며 나는 지인들에게 링크를 돌렸다. 이후 연락을 통해 결과적으로 나의 지인 두 명이 추가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약 일주일이 지나 엠폭스 백신을 받기 전날 나는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백화점으로 떠나기 전 현관에서 신고 갈 구두를 고를 즘 마침 운동을 다녀온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매일 다니는 수영장에서 접한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이로 관절이 약해진 80대 고령의 여성 고객이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다 실금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시설 관리 측은 물을 다 빼고 새로 소독을 하였으며 비용이 약 천만 원이 발생했다. 자신의 관절에 좋은 수영을 하는 “할머니” 고객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동료를 비난하기는커녕 다음은 자신이 그 차례가 아닐까 몸을 벌벌 떨고 있다고 어머니는 증언했다.
같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드랙퀸 모어는 일찍이 세상이 힘들면 “푸하하 웃고 똥구멍에 힘을 확 주라”라고 천명했다. 국가의 법률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하는 권리가 평등하지 못한 2023년 동아시아에서 나는 게이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상대방 교양에 따라 똥꼬충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기에 왠지 나는 타인의 항문의 고충을 이해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친구사이의 칼럼 “애널의 행정”이라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의 본점은 가장 하찮은 곳에서 올라오는 법이다. 우리 집 8살 강아지도 실외에서 배뇨하기 위해 매일 산책을 간다. 당연하지만 인간으로서 나는 타인의 존엄을 지키고 싶고 타인도 나의 존엄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만약 훗날 지금보다 더 선진적인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 생길 독거노인 게이 집단 거주지에 들어가는 날이 오면 공영 수영장에 실금 하는 수준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백신 접종 하루 전 나는 당장의 존엄을 즐기기 위해 자본주의의 꽃인 백화점에 갔다. 하지만 나는 경기도 신도시의 백화점에서 화려한 상품에 도파민을 느끼고 싶었지만 정작 백화점 화장실에서 씁쓸한 고찰을 하고 말았다. 백화점에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주로 어린이 손님이 보호자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가족 화장실”이 있었다. 지금 일본에서 어떤 상업시설에 가더라도 응당하게 있는 이른바 “다목적 화장실”이 한국의 백화점에서는 남자, 치마를 두른 여자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선 어린이의 픽토그램이 걸린 핵가족을 위한 “가족 화장실”로 소개되어 있었다. 이른바 경기도 신도시의 백화점에서는 작금 대한민국에서 가족 구성이 어려운 제3의 성이 배제되어 있었다.
9년 전 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만나러 보스턴에 간 적이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을 미국 전토에 허하는 2015년의 판결이 나기 전 이미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화장실은 모두 성중립 화장실이었다. 2023년 신도시 백화점에서 나는 개탄했다. 하버드 경영대로 공부하러 간 한국인 엘리트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실천하는가? 나 본인도 아이비리그에서 석사를 마친 사람으로서 조국의 성별이 양분된 화장실에서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예전 하버드 대학교에서 나는 생각했다. 중동에서 온 무슬림 학생들도 하버드 대학교에서 기꺼이 성중립 화장실을 사용할까? 나는 남자 화장실을 나와 대한민국의 백화점은 핵가족의 궁전이며 각 패션과 디자인 업계에 포진한 퀴어들이 디자인한 물건을 이성애자 손님이 모르쇠 사는 이른바 제물의 피가 스민 접시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구두를 신고 잡념에 빠져 백화점의 대리석을 걷다가 문득 나는 운동화가 사고 싶어 졌다. 나는 이어 내가 거주하는 일본 기준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광고를 가장 세련되게 한다고 생각하는 나이키 매장으로 걸어갔다. 예전에 도쿄 니쵸메에서 사랑받는 한국인 여성 DJ는 나에게 한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응당 DJ이라면 검은색과 하얀색 나이키 에어맥스 95년을 상비해야 한다고. 나는 풍토가 험한 일본 그리고 사계가 험준한 한국에서 웬만하면 검은색 에어맥스 95년을 신었다. 그러나 엠폭스 접종을 포함한 미래에 불안을 가진 나는 정작 새로운 운동화를 고르지 못하고 나이키 매장을 나갔을 때 바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늦은 나이에 군대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고등학교 동기 친구가 나에게 몇 개월 만에 안부 답장을 보냈다. 이성애자이지만 너무나 섬세한 마음을 가진 시스젠더 남자사람 친구인 그는 군대에서 근황을 전해주고 깜짝 놀랄 소식이 있다며 나에게 내년에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다고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