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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도 Jun 11. 2023

엠폭스 백신을 찾아서 3부

“이 마을에 머물지 않는 계절풍이 외로운 연을 파란 하늘로 밀어낸다"

결혼이라니! 20대 초에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배려인지 아니면 차별인지 나는 지인의 결혼식에 초대를 잘 받지 않았다. 대학교 당시 일본에서 한 번 그리고 졸업 후 지난 8년 간 한국에서 세 번 (이 중 한 번은 드랙퀸 모어의 아름다운 동성 결혼이었다). 결혼식이란 때때로 주말에 게이들이 양복을 차려입고 화장실에 하객룩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뷔페를 먹는 행사이다. 나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결혼을 축하한다고 축복하고 이어 한편 나는 다음날 엠폭스 백신을 맞는다고 전해주었다. 연락을 마치고 나는 조명코너로 가서 아르테미데의 스탠드 톨로메오를 둘러봤다. 아름다운 조명에 대한 한국 게이의 집착은 사실 매우 대단한 거라 나는 언젠가 게이와 조명에 대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눈부신 LED에 눈이 멀어서 그런지 나는 은은한 이탈리아 조명 앞에서 미래의 집을 상상하며 조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조명 코너의 종업원분도 왠지 마음에 결핍이 있는 게이 손님에 익숙한 듯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20퍼센트 세일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아무래도 플로어 조명을 사기에는 먼저 라운지체어를 준비해야겠어요 호호호”라고 이야기를 맺고 다시 백화점 복도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결혼을 맞이하고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로 했다.


나는 백화점 지하로 내려가 본점이 미국 시카고에 있는 커피 체인점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콜럼비아 원두를 케멕스로 내린 드립 커피로 기억한다. 아마 7년 전일까 내가 뉴욕에 일할 때 나의 친구도 아이비리그 중 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뉴욕으로 놀러 왔다. 책을 좋아하던 우리는 첼시 하이레인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카페를 알려준 사람은 뉴욕 Upper Westside에서 어플로 육체관계를 맺은 단기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세월이 지나 향기로운 원두를 파는 카페는 시카고와 뉴욕을 거쳐 한국 신도시의 백화점에 가게를 냈고 나는 이어 군대에 있는 친구에게 마침 예전에 가본 카페에 왔다고 연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 사람이 붐비던 백화점의 카페도 영업마감이 가까운 저녁 7시가 되니 아무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나는 가수 이랑의 노래 <가족을 찾아서>. “이건 뭔가 되게 크게 잘못 된 것 같아”라고 중얼거리며 카카오톡으로 친구에게 “지금 나 뉴욕에서 같이 간 첼시 커피집에 왔어!”라고 문자를 보내려다가 왠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기 위해 대화창에 입력한 문자를 지웠다. 대신 아무로 나미에의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고 유튜브로 요즘 한국 남자들은 하객룩으로 어떤 옷을 입는지 검색했다. 무신사와 유니클로가 광고로 뜰 무렵 나는 이 모든 헛짓을 그만두고 내년 친구 결혼식에는 강북 테일러샵에서 맞춘 비스포크 정장을 입기로 했다.


한국에서 지내던 무렵 나는 집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난 자취를 위해 출가한 이후 약 15년 간 티브이를 방에 들인 적이 없다) 케이블 방송에 나온 NHK를 보게 되었다. NHK에서는 일본의 시 중 하나인 “단가”에 대한 프로그램이 방송되어 있었고 단가 선생님이 시청자가 표제어에 맞추어 보낸 짧은 시를 평론하고 조언을 해 주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연 (Kite 凧)”에 대한 시를 모집했고 이 중 한 시청자가 쓴 단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 마을에 머물지 않는 계절풍이 / 외로운 연을 / 파란 하늘로 밀어낸다”


단가 선생님은 이 단가의 “외로움”이 이미 “이 마을에 머물지 않는”과 의미적으로 중첩되니 “외로운 연”을 “솟구친 연”으로 바꾸면 어떠냐고 평을 내렸다. 단가를 감상하며 왠지 나는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나의 20대는 언제나 분노에 가득 차 있었고 외국인으로서 고독에 익숙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 본다면 인생은 굳이 외로움을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난 그저 퀴어로서 솟구치고 싶었다. 외로운 연이 아닌 계절풍에 실린 연이던 나는 자연스럽게 이성애자의 길을 걸어간 고등학교 동문들과 자연히 멀어지고 말았다.


세상은 기후위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미력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작금의 대한민국은 환경파괴보다 저출산 문제가 더 파괴적인 문제로 이야기되고 있었다. 나는 게이로서 저출산 문제에 무관심이랄까 아니 관심을 가져도 방법이 따로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퀴어로서 미래 세대를 만들고 양육하고 기르는 것은 어떤 의미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왜 대한민국의 언론은 저출산 대책으로 이민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미래의 구피가 되기를 원하는가? 구피와 금붕어는 이런 사회의 외침과는 상관없이 무심하게 새끼를 배고 깐다. 생명이 없는 상품도 어떤 운동화는 디자인이 복각되고 어떤 스탠드는 변하지 않고 계속 판매된다. 우리 게이들은 화려한 꼬리와 무늬를 가진 수컷 구피만 있는 어항 속에 사는 존재와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저출산 문제에서 논외 된 우리 퀴어의 삶은 축복인가? 불행히도 우리 게이와 퀴어들은 다른 이성애자 인구에 비해 미래 설계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비록 편견이지만 백화점에서 우리 게이들은 컨템퍼러리라는 최신 유행 상품을 구입하지만 이성애자들은 정작 자신의 자손을 위한 꼬까옷과 가구라는 미래를 구입하지 않는가? 백화점으로 떠나기 전 수영장 일화를 이야기해 준 어머니는 자신의 노후가 걱정된다고 했다. 마침 그날은 어버이날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간호를 해 줄 자신은 없지만 언제나 어머니의 걱정을 들어주고 보살펴 주겠다고 말했다. 마치 이는 현대화폐이론 (Modern Monetary Theory)의 이치와 일치해서 화폐와 미래에 대한 약속은 끊임없이 발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나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 허황될지 몰라도 지금 어머니의 노후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런 약속은 미리미리 해 주는 게 좋은 것이다.



다음날 나는 서울의료원에 가서 엠폭스 백신 주사를 맞았다. 백신접종 절차 자체는 매우 평범했다. 오히려 서울의료원에는 평소 만나지 못하는 아픈 노인 분들이 많아서 놀랐다. 의료원의 간호사들은 육체적 고통에 나약해진 환자와 가족들의 짜증을 받아주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왜 서울의료원은 서울 중심가가 아니라 왜 멀리 도심에서 떨어진 외각으로 밀려나야 했을까? 접종주사는 바로 끝났고 나는 접종 직후 15분간 의자에 앉아 휘트니 휴스턴을 들었다. 천국으로 간 휘트니 휴스턴에게 기도를 올리고 이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엠폭스 접종이 풀린 한국에서는 1200명 이상이 바로 접종을 예약했다고 했다. 아무런 신체적 이상이 없어 보이자 나는 지하철을 타고 시청으로 이동해서 진주회관에서 콩국수를 먹고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하퍼의 전시를 감상했다. 이어 명동의 한 백화점에서 운동화를 보다가 갑작스럽게 피곤함과 미열을 느꼈다.


백신 접종 며칠 후 어머니는 수영장이 다시 열렸다고, 물은 깨끗하다고 말해주셨다. 나는 이후 이른바 수영장의 “할머니”에게 말을 걸듯이 생각했다. “할머니, 저희들은 항문으로 겪는 치욕을 잘 이해해요. 우리들은 비슷한 이유로 쉽게 사회적으로 매도당하거든요”라고. 나는 그 “할머니” 분이 다시 건강하게 운동을 재개하셨으면 한다. 어항 속 물고기는 같은 물에서 배뇨를 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구피 같은 물고기가 될 수 없다. 접종을 마치고 나는 다시 이태원 클럽으로 가서 엠폭스 접종을 마친 남자와 서로를 탐닉했다. 그리고 이후 도쿄로 돌아가서 (불란서의 문호 프랑스와즈 사강을 표절하자면) 저녁식사로 복어지리탕이나 들깨 감자탕을 고르듯 시공과 만남에 따라 이름 모를 남자들을 만났다. 일본에 돌아가서 현지 인권 운동가들과 만나 소매를 올리면 그들은 신기하고 부러워하듯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나의 엠폭스 1차 접종 부위에 생긴 작은 반점의 사진을 찍었다. 현 지점 일본에서는 대국민 엠폭스 접종 계획이 없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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