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독을 품은 바다뱀은 바닷물고기와 함께 모래알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정부 주도하에 야심 차게 추진된 하계 올림픽이 전염병으로 연기되고 전국 각지에 강제성 없는 “비상사태조치”가 발령된 2021년 이른 봄 일본에서 나는 오키나와로 2월과 3월 총 두 번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과 영국의 시민들이 먼저 코로나 백신 접종이 받기 시작한 상황이라서 세상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던 당시 나는 도쿄에서 단신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에 나에게는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춰졌다. 먼저 첫째로 비록 결과적으로는 가지 못했지만 1년 이상 가지 못한 한국에 간다는 명분으로 회사로부터 장기간 쉬고 있었고 두 번째로 반년 이상 개인 프로젝트로 시작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은 잡지의 출간 원고와 취재, 촬영을 모두 마무리한 상태이었다. 평소 이렇게 길게 시간이 남으면 한국으로 쉬러 갔겠지만, 국경이 쉬이 열리지 않아 여행지를 찾아보던 중 오키나와로 떠나게 되었다. 멀리 나하로 가는 항공권이 교토로 가는 신칸센보다 더 저렴한 것을 알고 망설임이 사라졌다.
오키나와를 마지막으로 가 본 건 약 7년 전으로 필자는 도쿄 신주쿠의 대학생일 때 학교에서 현지 역사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 일본 본토와 다른 언론과 민심의 차이를 공부하기 위해 수학여행을 떠났다. 오키나와를 알면 알수록 역사와 정치 그리고 자연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으로서 오키나와를 제주도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육지와 확연하게 다른 생태계와 때깔부터 다른 자연의 풍광, 변화무상한 날씨 그리고 비극적인 현대사가 두 섬이 가진 공통점이다. 물론 오키나와에도 제주도의 “우도”나 “가파도”처럼 본섬에서 떨어진 섬이 많은데 이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섬은 오키나와 나하시의 항구에서 고속정으로 약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게라마 제도”다.
평범한 관광지보다는 다이빙 포인트로 알려진 게라마 제도로 떠나려면 우선 나하 항구에서 고속 페리를 타고 출발하여 서쪽을 향해 망망대해로 떠나는데 10분 정도 바다를 향해 가면 정말 거짓말처럼 쪽빛 수평선에서 섬들의 녹색 능선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게라마 제도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 크게 세 곳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섬인 “도카시키”는 약 7년 전 수학여행으로 처음 방문했다. 세계 2차대전 말기 미군이 “일본 열도”에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도카시키섬의 해변이다. 밀려오는 미군 앞에 덴노와 군부는 다른 태평양 제도에서도 그러했듯이 오키나와의 주민들에게 옥쇄를 명령했고 섬의 주민 몇몇은 가족 단위로 수류탄을 잡고 집단 자결로 목숨을 끊었다. 내 기억이 옳다면 그날 섬의 안내를 해 준 도민분은 어렸을 때 수류탄이 불발하는 바람에 살아남았다고 했다.
당시 나를 포함한 대학생 동기들은 누가 따로 시키지도 않았지만,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태평양전쟁 참화를 예리하게 기록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의 <오키나와 노트>를 챙겨 들고 수학여행에 참가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같은 책을 들고 오키나와로 갔지만 정작 기억에 오래 남은 건 섬이 가진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일본인 본토 출신의 학생들에 낀 한국인 학생이라는 미묘한 공백 속에서 나는 미군이 상륙한 그 해변 바닷속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해변에서 우리에게는 약 2시간의 시간이 있었고 나는 바다를 관망하기만 하던 동기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근처 상점에서 수영복을 빌려서 역사적인 해변에서 수영했다. 이미 시스젠더 게이로서 성 정체성을 확립한 복학생이던 나는 타인에 대한 신체 노출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시원하고 짜디짠 바다물에 몸을 담그자 멀리 꿈틀거리는 천연색의 물고기가 보였다. 나는 이 아름다운 생태계를 목격하고 놀라서 그만 바위로 보이던 곳에서 발을 딛고 서고 말았는데 멀리 해변에서 “산호 위에 올라가지 말라”라는 구조대원의 경고를 받았다. 이는 내 인생 최초의 열대 산호초이었다. 나는 문득 도카시키 해변의 산호가 60년 전 미군 해병들이 신었던 군화를 기억할까 궁금했다.
도쿄에 일하면서 정치와 사회문제에 시달리다가 오키나와에 도착하니 숨이 트이고 잠시나마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일시적으로 눈을 돌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쉬다가 게라마 제도로 놀러 갔는데 도카시키가 아닌 그 옆의 “자마미”라는 섬을 방문했다. 지금은 런던으로 이주한 오키나와 출신의 드랙퀸이 내가 인스타그램에 오키나와 사진을 올리자 “자마미” 라는 섬을 가보라면서 바로 추천해 주었다. 매우 아름답고 그리스의 미코노스처럼 게이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고 했다. 자마미로 떠나는 배는 아침 9시쯤 출발하는데 나에게는 아침 9시조차 일찍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다. 그러나 반신반의로 찾아간 자마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바다와 섬과 녹음에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바다는 번쩍이고 찬란한 열대림은 살랑거렸다. 흔한 편의점도 없는 마을은 배가 왔을 때 잠깐 들썩이고 관광객이 흩어지자 이내 인기척이 드문 평온으로 돌아갔다. 큼지막한 야생화 사이로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내에 내 마음의 고삐가 풀렸다. 섬마을 안내소에는 밀물과 썰물 그리고 달의 위치에 따라 찾아온다는 바다거북이 출몰하는 차트가 붙어 있었다. 바다거북은 만조에 따라 해변으로 이동한다고 하는데 태양을 따라 지구가 공전하는 24시간이 아닌 달의 미묘한 중력에 의해 하루를 24시간 50분으로 살아가는 바다거북의 삶으로부터 나는 시간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후 매일 아침 눈이 번쩍 뜨면 호텔에서 걸어 나와 오키나와 항에서 서쪽으로 자마미로 떠나는 배삯을 지불했는데 마치 오전부터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끊는 마음이 들었다. 관광객이 적어 한산한 항구에서 아침마다 갓 만든 도시락으로 점심과 간식을 먹었는데 주로 타코 라이스와 오키나와식 도넛 “사타안다기" 그리고 현지에서 “산핀” 이라고 불리는 재스민차를 챙겼다. 12월에서 2월 사이에 바닷속에 들어가면 혹등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남중국해 자마미 해변은 따뜻했다. 수심이 얕고 햇살이 강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부터 인스타그램과 텀블러 등을 통해 게이 남성의 범지구적 미학을 성립한 나에게 있어 아름다운 바다 앞에서 육체미를 뽐내고 기록을 남기는 행위는 종교적 의식을 떠나 본능적인 일이 되었다. 벗어야 사는 게이의 운명은 언젠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치욕을 마주하고 굴복되기 마련이다.
인류가 역병과 싸우던 2021년 처음 도착한 자마미의 해변은 비현실적으로 근사했다. 관광객으로 북적인다는 해변에는 나와 젊은 남자 그리고 중년의 여성이 있었다. 젊은 남자는 같은 유목 통나무에 앉더니 나에게 “이 해변은 바다거북이 유명해요. 바다에 잠시 갔다 올께요. 망을 봐주세요”라고 대형마트에서 급하게 구한 듯한 어설픈 고글과 핀을 착용하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 상반신까지 래시가드를 착용한 빼빼 마른 젊은이에게 혼자 코웃음을 치고 풀숲으로 들어가 브리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핸드폰으로 열심히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바다에 들어간 젊은이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해변으로 돌아와 실망한 표정으로 바다거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그는 이내 해변을 떠났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2월의 태양 밑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계속 사진을 찍었고 조금 떨어져 있던 여성 관광객은 나의 모습을 계속 관찰하고 질린 듯이 해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오키나와에서 도쿄로 돌아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나하행 비행기표를 끊었고 신주쿠에서 2만엔 가까이하는 고글을 구입하고 말았다. 준비하던 잡지는 연락 혼선으로 일정이 미루어졌으며 1월의 청명한 하늘의 도쿄는 2월이 되자 구름이 낄 뿐 3월의 매화는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자마미로 떠났다. 그리고 자마미의 해변에 들어가자 당연하게도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이 있었다. 도쿄의 수영장에서 쓰는 물안경이 아닌 고글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의 차이는 확실히 달랐다. 하얀 모래 위 지천에 커다란 해삼이 있었고 산호초 사이에 노란색 나비고기와 파랑돔 그리고 흰동가리를 만날 수 있었다. 내심 나는 바다거북과 만나기를 기대했다. 다행히 나 자신이 수영을 잘하는 편이고 서핑 레슨도 받은 적이 있어 물놀이에 대한 천부적인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방조제처럼 굴곡진 해변 덕분에 자마미의 해변은 잔잔하고 수심이 동해안처럼 처음에 움푹 깊어졌다가 다시 완만하게 낮아져서 수영하기에 매우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나는 레이디 가가의 신보 <크로마티카>를 들으며 다시 섬 반대편의 해변으로 옮겨 바다에 둥둥 떠다니며 물고기와 산호초를 감상했다. 수심 2미터 정도 되는 곳을 떠다니며 마치 시인 이상의 날개를 핀 까마귀처럼 바닷속을 훑어보는데 나는 왠지 멀리 물고기가 몰려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이동했다. 물고기 사이에 나는 검고 긴 생명체를 만나게 되고 나는 처음에는 장어인 줄 알았으나 이내 동그란 머리를 보고 이는 어류가 아닌 파충류임을 직감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나 이른바 시티 보이로 자라난 나는 일찍이 개구리와 뱀을 무서워했다. 도쿄에 서식하는 뱀을 취재한 어느 르포 작가에 의하면 단지 보이지 않을 뿐 도쿄 도심에도 많은 뱀이 살고 있다고 한다. 평생 뱀을 보지 못하는 무관심한 사람은 많아도 뱀이 보이는 사람은 왕왕 목격한다고 한다. 특히 공원에서 자주 노는 어린이들이 그러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나는 사회과 부도에서 지도를 훑다가 지리산의 “뱀사골”이라는 지명을 찾아내고 마치 실제로 뱀을 본 것처럼 놀랐지만 이내 손끝으로 교과서 지면을 까끌까끌 만지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2021년 처음 고글을 통해 맨눈으로 바라본 바다뱀은 매끈한 검은색 뭄뚱어리로 하얀 산호모래를 누비고 있어서 바로 눈에 띄었다. 육지의 뱀이 ◯자처럼 다부진 몸통을 지니고 있다면 바다뱀은 마치 장어처럼 몸 위아래를 잡아 늘린 0자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영복 한 장만 걸친 나는 저게 무슨 물고기인지 조금 더 가까이 갔으나 이내 머리와 비늘을 보고 원초적 공포를 느꼈다. 이게 사진으로만 듣던 강한 독성을 가진 바다뱀임을. 그 순간 나는 비명을 포함해 소리를 내는 것조차 두려웠다.
눈앞에서 “물리면 죽는다”라는 죽음의 신호를 감지한 나는 조용히 전력으로 도망갔다. 몸을 돌려 육지를 향해 자유형으로 헤엄치면서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코로나로 전세 계에 의료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데 나 자신도 의료진에게 누를 끼치는 관광객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스쳐 갔다. 먹이사슬이 전도된 것 같은 공포로부터 떠나 도착한 해변에서는 다른 관광객 남녀 커플들은 평화롭게 셀카봉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덩치를 한 몸에 오직 짧은 검은색 사각 브리프 수영복을 입었는데 해변의 사람들은 모두 얇은 바캉스룩의 옷을 입고 있었다. 터벅터벅 야자나무 숲 밑에 도망가 혼비백산한 마음을 진정시키자 다시 내 눈 앞에 펼쳐진 자마미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신주쿠에서 산 고글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이내 나는 마음을 다시 잡고 바다로 들어갔다. 그리나 조심스럽게 다가간 바다에서 다시 멀리 같은 곳에서 꼬불꼬불 헤엄치는 뱀을 보고 나는 기겁하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갔다. 바다뱀의 존재를 안 이후 나는 백사장의 모래를 밟는 것도 무서웠다.
바다뱀은 성질이 온순해서 사람을 먼저 위협자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시력이 약한 바다뱀은 사람을 짝짓기 상대로 착각하고 먼저 사람에게 다가올 수 있다고 하지만 이내 물러가며 독을 품은 이빨은 매우 작기에 다이빙복을 입으면 물려도 독이 혈관으로 침투하는 가능성은 적다고 다음 날 돈을 주고 참가한 스노클링 선생님이 알려주었다. 대부분 사람이 바다에 들어갔다가 모래 속에 있는 바다뱀을 밟아서 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다뱀은 야밤에 해변으로 올라온다고 하니 오키나와 해변에서 누군가와 함께 로맨틱한 밤을 보내는 나의 미래일기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하로 돌아가기 위해 해변에서 항구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다가 내가 헤엄친 구간에 뱀이 많아서 바다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을 읽었다. 그때야 발견한 경고문은 일본어와 영어로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 그렇다. 문제는 자연의 아름다움만 보려던 외부인에게 있던 것이다. 한때 생물학자로 일했던 현역 게이 포르노 배우가 나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원래 자마미는 바다가 아름다운데 뱀이 많다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산호모래 속 맹독을 품은 바다뱀 옆에 왜 물고기들이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지 추측만 할 따름이다. 일 년 이상 같은 기억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면서 도달한 결론은 바다뱀이 고운 모래에서 파내는 유기물을 먹기 위해 물고기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물고기도 바다뱀을 포식자나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울려 살고 있었다. 오히려 분명한 점은 나 자신이 관광객으로서 바다에 들어간 침입자라는 점이다. 자연에 대해 공포를 느낀 건 전적으로 나의 문제이었다. 놀란 건 나였으니 같이 놀라 나를 공격하지 않은 평화로운 바다뱀에게 지금에 와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후 이 오키나와 바다뱀과 조우한 사건은 내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준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먼저 삶과 죽음은 같은 차원에서 각각 24시간과 24시간 50분의 하루를 사라가는 인간과 바다거북의 시차처럼 공존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물리적인 극한 상황을 조금씩이라도 쉽게 받아들이게 된 나는 몇 개월 후 도쿄에서 택시를 피해 차도를 달리는 로드 바이크에 입문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시부야와 니쵸메에서 열리는 클럽 파티로부터 시선을 돌려 자연을 경배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게이가 아닌 인간으로서 클럽을 떠나 알음알음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생 패턴의 섭리가 가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는 캠핑을 비롯한 아웃도어 브랜드에 눈썰미를 가지게 된 점이다. 비슷하게 나의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을 준 가수 이랑은 바다에서 가진 경험을 짧게 에세이로 썼는데 여행으로 떠난 필리핀 바다에 들어가자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서 마치 보면 안 되는 것을 본 두려움으로 해변으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나도 이제 그 심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다음에 꼭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오키나와 산호가 하얗게 타오르고 제주도의 모자반을 비롯한 해초가 녹아드는 기후변화라는 현실에 강렬히 슬퍼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돋보기로 자세하게 바라보면 아마 높은 확률로 아름다움은커녕 추악함과 공포에 직면할 것이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작품전 "모임"에서 알게 된 <천수경>의 말을 빌리자면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면 지옥은 비어 있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매일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신주쿠 구석의 게이들의 맥락 없는 애정행각을 어느 이성애자가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감정이 스칠까? 우리를 통해 그들은 공포와 혐오를 느낄까 아니면 연민과 공허를 배울까? 나에게는 오키나와의 바다가 그러했다. 육지에서 비싼 고글을 사서 들어온 나에게 바다는 바다거북이 아니라 바다뱀을 보여주었다. 사실 인생이 그러하지 않은가. 앞으로는 맨몸으로 가지 않고 보디수트를 입고 민첩하게 도망가기 위해 핀을 챙겨갈 것이다. 되도록 혼자 행동하지 않고 현지의 경고문을 꼼꼼히 읽어야 할 것이다. 기억하자 바다뱀은 바다의 "인싸"였음을. 아담과 아담만으로 이루어진 에덴동산에도 뱀은 혀를 날름날름하며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