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s ways of knowing
로렌스 콜버그는 1981년 '인간의 도덕성 발달' 이라는 연구를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연구대상이 된 사람들은 죄다 남자였다. '남자의 도덕성 발달'도 아닌 '인간의 도덕성 발달'이라니. 그 시대만 해도 그런 연구가 당연하게 학계 주류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를 비판하며 나온 학자가 길리건 (Carol Giligan) 이다. 그는 낙태라는 윤리적 선택을 앞둔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여성의 도덕성 발달' 연구를 진행했다.
도덕발달이 남성 표본만을 대상으로 인간에 대한 표준화 연구를 진행한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연구를 비판하며 여성의 도덕성 발달 연구를 진행했던 길리건처럼, 벨렝키 (Mary F. Belenky)와 세명의 여성 심리학자들은남자 표본만을 대상으로 한 페리의 앎의 방식 연구에 대항한 (The Perry Scheme: 이 역시 남성만을 대상으로한 남성 중심의 연구였다) 여성의 인지발달, 특히 "앎"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여성은 어떻게 인식하고 아는가, 135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한 질적 연구를 통해 다섯 가지 단계의 결과를 정리했다.
벨렝키와 는 침묵 - 수용적 지식 - 주관적 지식 - 절차적 지식 - 구조화된 지식 의 단계로 여성들의 앎의 방식을 정리하였다. 이 연구는 여성 연구에서 주된 메타포인 목소리를 앎의 방식과 연관지었다. 벨렝키와 학자들에 따르면, 여성들은 인식론적인 전제를 "말하기" 와 "듣기" 라는 은유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는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진리를 "빛" 과 같은 시각적 은유와는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1) 침묵
여성들의 침묵의 상태 가운데에 있을 때, 이것은 그들이 지식이나 교육에 들어간 돈의 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의 개념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의 능력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에 더 관련이 있다. 대개는 환경적인 영향으로 여성들은 침묵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 말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발성하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여성들, 억압적인 환경이나 가정 안에서 학대를 경험한 여성들이 대부분 이 카테고리에 속했다.
2) 수용적 지식
수용적인 앎의 방식을 가진 여성들은 그들 자신만의 관점이 있으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수용하거나 그것을 반복하는 단계에 머무르는 특성을 보였다.
3) 주관적 지식
주관적 지식을 가진 여성들은 이제 막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듣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지지받고 격려받기 원하는 만큼 타인의 의견이나 목소리를 포용할 수 있는 역량까지는 되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 안에 제한되어 있는 경향을 보인다. 아직 그들의 목소리는 "지성화(Intellectualize)" 되지 않은 상태라고 본다. 즉, 자신의 목소리를 지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분석하는 단계로 나아지는 않는 단계다.
4) 절차적 지식
절차적 지식은 두 양상으로 나뉜다. 독립적 인식자 (Separate Knowers) 와 연결된 인식자 (Connected Knowers). 독립적 인식자는 여러 지식과 앎의 방식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외부의 지식과 상대적인 권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려고 한다. 외부적 권위와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반대적 지식들에 저항함으로서 많이 나타나며, 전통적인 여성 역할에 반대한다. 주로 사회적 문제나 본인의 것이 아닌 외부 지식에 대해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습득하고 분석하려고 한다. 반면, 연결된 인식자는 체계화된 교육보다는 "공감"을 통해 학습하고자 한다. 자신의 경험 뿐 아니라 특정 맥락 속에서의 타인의 경험에 엑세스 하는 방식으로 외부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5) 구조화된 지식
마지막 단계로, 구조화된 지식으로서 세상을 인식하는 여성들에서는 여러 목소리들을 통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지식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인식, 지식은 상호적으로 연결되며 시대에 따라 환경과 사회에 따라 유기적으로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건되는 지속적인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지식의 구조화됨을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죽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목소리 또한 듣고 공감하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엄청난 잠재적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상충하는 다른 세계관들을 컨트롤이나 장악 (domination) 하려 하는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된 느낌을 느끼는 능력이다.
벨렝키는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또는 현재 가정을 꾸리고 있는 환경이 여성의 앎의 방식을 구성하는데 유효하다는 점을 짚음과 동시에, 가정 환경을 벗어난 성인 이후의 삶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성의 앎의 방식이 남성의 앎의 방식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남성은 전통적 교육의 방식과 지적 발달의 궤를 같이 하지만, 여성은 남성 위주로 발달되고 체계화되어온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구조의) 전통적 교육의 방식을 따라 발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애초에 남성 위주로 설계된 정규 교육과정보다는 어쩌면 가정환경, 주변 사람과의 관계, 사유 등을 통해 앎의 방식을 발달해나간다고 할 수 있다.
벨렝키의 연구 또한 미국의 여성들을 대상으로만 했기 때문에 인종적, 문화적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외의 다양한 변수 또한 존재하겠지만, 여성을 이해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인 체계를 고안해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벨렝키의 연구모델을 보며 여성으로서 나 자신은 어떻게 앎의 방식을 발전해왔는가 탐구해보는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