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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Jun 14. 2024

종방, 각자의 자리에서 안녕

240612 언저리의 기록


프로그램이 끝났다. 여러 번 반복된 일인데 이번엔 좀 신기한 느낌이다. 다 같이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를 외치지 않아서 그런가? 제작 형태와 입고 방식이 달라지면서 생긴 변화가 새삼 크게 와닿는다.


예전엔 방송을 하나의 채널에 입고하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스터 파일을 붙잡고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방송본을 기다리는 채널이 단 하나일뿐더러, 그 채널이 우리 제작팀과 식구이기 때문에 약간의 딜레이를 용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 손이 발이 되게 비는 조연출들에게 애타는 마음을 억누르며 시간을 벌어주던 편성팀 여러분과 주조 감독님들 새삼 감사합니다 ) 우리는 온에어 시점까지 파일을 확인하고 또 하고 고치고 또 고쳐야만 마스터피스가 나오는 것마냥 다듬으며 공을 들이곤 했었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다 같이 테이프에 붙어서 ( 아주 최근까지도 테이프를 사용한 몇몇 채널이 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테이프를 내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심심한 위로를 ... 받아 가세요 ) 모든 걸 쏟아내고 주조에 꽂히는 걸 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끝까지 해냈다는 개운함 같은 것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 마지막 회를 끝내면 과정이 좋았든 싫었든 다 함께 축하하며 끝났음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 방송이 생방송인 경우엔 희열이 더 넘친다. 특히 오디션의 경우엔 우승자가 발표되기 때문에 서로 축하하고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누며 그래도 우리 좋았지, 미화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방송사에서 제작사가 분리되어 나왔고, OTT를 비롯한 채널이 늘어나면서 공동 제작에 이어 동시 납품 케이스가 늘어났다. 제작비를 주시는 곳들이 한 방송의 멀티채널이 되어버린 것이다. 해외로 방송이 나갈 경우엔 자막 번역도 하고 저작권에 걸리는 음악도 갈아야 하니까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면 우리도 2주에서 한 달 전엔 입고를 해야만 한다. 예전엔 4회 방송 날까지 4회를 붙잡고 있었다면, 이젠 4회 방송이 나갈 즈음 이미 8회를 마무리하면서 12회 정도를 편집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한두 달 정도의 미래를 살아가다 보니, 제작진 모두가 막방의 순간을 함께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일을 먼저 끝낸 인력을 미리 쉬게 하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 합리적인 시스템이 되었지만 어쩐지 낭만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메인 피디와 막내 피디만을 남겨놓고 한두 템포씩 일찍 휴가들을 떠났다. 공식 휴가이므로 울리는 카톡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겠지만, 종방도 전에 휴가를 떠난 것이 어쩐지 어색해서 자꾸만 카톡방을 들여다보곤 했다.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여행을 다녀왔더니 오랜만에 연락한 지인들이 뭘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여행을 다녀왔냐고 한다.


휴가 가러 타는 비행기만큼이나 촬영 가러 타는 비행기도 좋아하는데. 벌써 반 년이 훌쩍 넘은 사진.


대망의 종방날. 다 같이 모여 엔딩을 자축하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연락들을 주고받으며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때로는 버티면서 결국 뭐 하나씩은 배워간 프로그램일 테니까. 운이 좋게도 몸과 마음이 참 건강한 피디들만 모인 팀을 겪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새로운 걸 많이도 배웠다. 어쩌면 내가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닐까 싶을 만큼 촬영에 대해서, 편집에 대해서, 팀을 운영하는 방법과 시스템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 시간이었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랬던가. 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점수는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 밤을 새워가며 노력했던 기억은 남는다고. 우리가 한 편집의 조각보다 큰 건, 밤낮없이 서로 도와가며 지낸 그 시간들일 것이다. 본인도 무수면이면서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 부르라던 사람, 상담하고 싶을 때 쪼르르 찾아오지만 결국 내 고민을 들어주고 가던 사람, 서로 아닌 건 아니라며 옥신각신하다가도 엉덩이가 의자에 붙은 것마냥 우직하게 밀고 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던 사람, 회사가 집인 것처럼 살면서 편집 빨라지는 방법을 알아내어 모두를 재워준 똑똑한 사람, 본인보다 열몇 살이나 많은 선배가 오늘따라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걸 눈치채고는 ( 알았는지 몰랐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 해가 뜰 때까지 옆에서 재밌는 드라마 얘기를 잔뜩 해주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터널처럼 긴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주 6회 정도 먹던 서브웨이. 이제 당분간은 서브웨이 먹자고 말할 팀원이 없어서 슬프다.


이제는 전부 뿔뿔이 흩어졌고 복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바로 이런 지점이 있어서 피디의 삶이 재미있는 거라는 걸 대부분의 피디는 안다. 어딜 가든 잘할 사람들과 함께해서 참 좋은 시간이었으니 이제 또 다른 시작을 힘차게 하면 되겠지. 시계를 지난 여름으로 되돌린대도 아마 나는 이 팀을 선택할 것이고, 그럴만한 팀을 또다시 만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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