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PD 입봉일기 #5
링크드인에 업로드 중인 예능 피디 입봉일기를 브런치에도 옮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성과가 나서 올리는 입봉일기면 좋겠지만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뿌듯한 감정 49, 두려운 감정 51 로 분투하는 햇병아리 리더의 생각 흐름을 보고
공감하거나 위로받을 팀장님들, 대표님들, 그리고 직장인 분들이 브런치에도 많을 것 같아서요.
*** 사진은 AI 로 작업합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가장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좋았어요. 막막했던 구성의 뼈대가 드디어 만들어졌거든요. 얼추 살을 붙인 구성으로 촬영 시뮬레이션을 한 밤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오 분에 한 번씩은 웃었던 것 같습니다. 깔깔 웃던 막내는 대학생 조모임 같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상태가 일요일 야작할 때 같다면서요. 공휴일에 당연한 듯 출근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텐데, 활발하게 의견 내면서 레퍼런스 마구 던지는 모습이 저는 고맙고 좋았습니다.
사실 요즘, 이렇게 조모임처럼 일하는 것이 틀린 방법일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팀원들 의견을 들어가며 하나하나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힘겹긴 하거든요. 얼마 전엔 한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다들 자기 주장이 확실해서 그런가, 교차점 찾는 게 쉽지 않네요” 그러자 엄격한 도제식이 익숙한 선배는 말했습니다. “그건 힘없는 팀장이나 하는 방법 아닌가? 자꾸 의견 들어주면 팀원들이 너 무시해”
아주 틀린 말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잘 된 프로그램엔 대부분 절대권력이 있거든요. 그런 팀에선 시종일관 곡소리가 나지만, 프로그램이 잘 되면 과정은 미화됩니다. 좋은 방법 같아 보여요.
하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병아리 메인이어서 제가 제 의견을 100% 못 믿는 것도 있어요. 하지만 과연 100% 믿는 사람이 있을까요? 90% 의 확신만 있어도 밀어붙이는 것 역시 능력입니다만, 그러면 즐거운 팀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방송 제작은 특히 열정에 기대어 하는 일이에요. 내 의견의 수용될 여지가 있어야만, 다시 말해 팀 분위기가 유연해야만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런 한 번들이 모여 거대한 창의성이 됩니다. 그러면 90% 짜리 위대한 수장의 결과물보다 훨씬 만듦새 좋은 120% 짜리를 다 같이 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촬영 직전이 늘 그렇듯, 오늘도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여섯 명이 똘똘 뭉쳐서 즐겁게만 촬영하기로 해요! 가장 파이팅 넘치는 작가님의 말에, 촬영 끝나면 우리끼리 사진 찍고 막걸리 마시자는 말들이 덧붙었습니다. 즐겁게 일해도 바보가 아닌 업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 들어가며 천천히 달려도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언젠가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