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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Jun 18. 2023

매주 하는 방송, 매뉴얼은 없음

#3 주간 음악 생방송 - 녹화 준비


배정이 잘못된 줄 알았다.


매주 아이돌이 나오는 주간 음악 방송이라니. 같이 입사한 동기가 네 명, 아이돌 친화적인 순서로 줄을 세우면 다섯 번째여도 서러울 나였다. 아이돌이라면 줄줄 꿰고 있는 동기도 많잖아. 어차피 전부 신입일 거라면 전문가를 배정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도 좋을 텐데. 왜 하필 나인거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나는 확실히 잡식이었다. 드럼의 정석을 배우겠다며 메탈리카를 질리도록 듣다가도 김광석을 들으며 눈물 줄줄 흘리는 사람. 발라드가 대세면 발라드를 듣고, 일렉트로닉이 대세면 가끔 한 번 들어주는 멜론 탑 100 기반 리스너. 귀는 또 어찌나 얇은지, 듣고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끔 푹 빠져 허우적거리곤 했다. 재밌게 본 영화 OST는 단숨에 세계 최고의 명반이 되고, 학교 축제에서 만난 국악 팀은 대한민국을 대표할 천재 아티스트가 되는 식이랄까. 이렇게 일상에서 만나는 음악 중 보물을 찾아내는 기분은 제법 멋져서, 나 같은 잡식들을 위한 소소한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곤 했다.


문제는 그 '소소한 음악' 안에 케이팝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왜 없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어릴 때부터 아이돌 음악은 듣지 않았을 뿐. 친구들이 HOT 파와 젝키 파로 나뉘어 전쟁할 땐 롤러 브레이드를 타며 쇼트트랙 놀이를 했고, 하늘색 풍선을 흔들며 거짓말을 외치던 친구들이 빅뱅 거짓말로 갈아탈 땐 동아리방에서 꽹과리를 치다 드럼으로 갈아탔다. 음악 방송에 배정받은 첫 주. BTS를 향한 관객들의 어마어마한 환호성에 너무 놀라서는, 멤버들의 이름을 황급히 검색해 보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어처구니가 없다. 이렇게까지 준비가 안 된 사람을 음방에 배정한 회사도, 그리고 준비가 안 되어 있던 나도 참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튼 배정을 받았으니 하긴 해야 했다. 하필 도망친 막내 한 명과 2주 뒤에 그만둘 막내 한 명, 총 2명의 프리랜서 PD 업무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일 건 뭐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도 막내들이 도망쳐서 도망 못 칠 신입사원을 배정했다고 한다.) 따뜻했던 교육 기간이 끝나자마자 황야에 내버려진 신입사원에겐 아무런 매뉴얼도 인수인계도 없었지만, 2주 뒤부터 2인분을 혼자 해내야 하는 상황은 초인적인 힘을 만들어냈다.



생방송을 준비한다는 것


음악 방송이 무슨 방송이냐고? 방송이다. 그것도 아주 대단한 방송. 아티스트들이 무대 하는 걸 찍어서 내보내기만 하면 되지 않냐는 말은 정말이지 섭섭하다. 음악 예능의 베이스가 되는 건 결국 무대이고 그 무대들의 집합체가 음악 방송인데 말이야. 언제나 모든 것의 기본은 중요하지 않나. 기본 중의 기본인 음방을 한 번 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출연할 아티스트가 정해지면 순서와 구성을 짠다. 음방 시청률에 목매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름지기 방송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매주 만드는 VCR에 아티스트 컨셉을 맞추어 섭외를 하고, 무대 직전 ID가 필요한 팀에겐 가벼운 소개 VCR을 붙이기로 한다.


동시에 진행되는 건 무대 디자인 회의다. 기본 무대뿐 아니라 아티스트별 전환 무대를 만드는 과정. 이 지점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무대와 미술 감독님인데, 연출팀은 이 분들이 꿈을 펼치실 수 있도록 장을 깔아 드리고 거기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 아티스트 컨셉만 드리고 나오는 시안을 그대로 쓸 수도 있겠지만, 결국 카메라에 담는 연출은 피디의 역할이므로 어떤 컨셉을 수용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필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업무도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디자인은 감독님이 하시지만 영상 레퍼런스는 필수적으로 피디가 찾아 넘겨야 하기 때문에 새로 나온 뮤비와 의상 컨셉을 연구하며 해당 아이돌의 히스토리를 훑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정보가 차츰 쌓이게 되고, 이걸 묵혔다가 다음 컴백 때에도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어서 점점 낼 수 있는 의견의 깊이가 깊어지곤 했다.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특효 등은 명백한 연출 PD들의 몫이다. 여기까지는 막내가 할 일이 없지만, 이걸 짜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 제법 지난하다. 소속사로부터 음원과 가사, 그리고 안무영상을 받아 가사지를 만들어 연출 선배들에게 넘겨야 하기 때문. 그러면 연출 선배들은 거기에 온갖 정보를 녹여서 카메라와 무대 감독님에게 넘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종종... 아티스트가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까지 계속된다.


사실 이렇게 몇 문단으로 커버하기엔 역부족일 정도로 훨씬 많은 일들이 있다. 선배들이 쓸 VCR용 자료를 찾는다거나, 식사 준비 및 출입증과 비표를 챙기는 소소한 일들, 그리고 방송 당일에 쓸 비디오 테이프를 준비하는 업무는 말이 쉽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들이어서, 잠을 하루 단위가 아닌 일주일 단위로 자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방송 직전 5일 정도는 잠을 안 자고 싶은데. 곰처럼 겨울잠에서 비축한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인체의 신비까지 바꿀 수는 없었지만, 이런 전쟁 같은 루틴에 결국 적응을 하긴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음악방송 조연출로 거듭나다니. 여기에 도움 된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체력과 기동성, 그리고 주인의식 정도가 될 것 같다.



내가 이러려고 운동했지 - 체력은 방송력


조연출의 체력적 극한은 무한에 가깝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극한은 "어떤 사물이나 일 따위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인데, 바꿔 말하면 이 한계 자체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매주 비디오 테이프 두 박스를 나르고 각종 장비 카트를 끌며 뛰어다니는 사람. 시곗바늘이 꼬박 두 바퀴를 돌 동안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스튜디오와 대기실, 그리고 편집실을 오가며 사전녹화부터 방송까지 쳐내야 하는 존재. 서서 졸다가 무릎이 꺾이는 느낌에 황급히 눈을 떴을 때, 무대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도 몇 바늘 꿰매고 스튜디오로 돌아왔을 때, 그래 이러려고 그렇게 운동했지, 하며 하루 서너 시간씩 수영하고 달리기 하던 대학 시절의 나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미니멀리스트 & 멀티 플레이어가 된 방송 노마드 - 기동성은 미덕


다른 회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 회사는 피디에게 개인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웰컴 키트로 받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나의 명패가 지금도 안쓰러울 정도. 대신 피디들은 팀별로 꾸려지는 회의실에서 구석 자리 하나를 배정받는다. 회의실이 넓으면 넉넉히 쓸 수 있겠지만 좁다면? 가장 좁은 자리는 당연히 막내의 몫이다. 당시 긴 테이블엔 자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장 끄트머리에 공간을 조금 내어 노트북 하나를 겨우 올린 채 지냈었는데, 다른 부서의 동기 한 명은 내 자리를 보고 입을 벌렸지만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리 좀 좁으면 어때. 어차피 나의 일터는 이 회사 건물 온 층에 널려 있는데. 스튜디오가 우리 집 안방이고, 편집실이 내 방이었다. 회의실 층에 있는 복합기 네 개는 나의 관할 구역이나 마찬가지였고, 자료실과 인제스트실, 그리고 문서수발실은 가끔 마실 가기에 제격인 앞마당과도 같았다.


말하자면 유목민이었던 셈이다. 큰 가방에 온갖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던 학창 시절의 나는 안녕. 미니멀리스트처럼 짐을 줄이고 기동성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조연출 가방? 결코 멋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최소의 짐을 넣고는, 인터컴이 꽂히는 단단한 재질의 청바지에 기능성 주머니가 여럿 달린 후드티를 꿰어 입으면 그 묵직함에 스튜디오의 한기도 저만치 물러갈 것만 같다.


돌이켜보면 효율성도 정말 대단했다. 태어나서 이만큼이나 효율적으로 일한 적이 있었으려나. 카톡 하며 계단도 못 내려갈 정도로 멀티플레이엔 젬병이었던 나인데. 복합기 세 개를 한 번에 돌려본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보자. 온갖 연락을 쳐내면서도 매주 큐시트와 가사지를 포함한 자료를 6000 장쯤 혼자 복사해야 했던 슈퍼맨 시절. 새벽 두세 시쯤, 고요히 잠든 어둑한 사무실을 이리저리 달리며 세상 가장 복사를 잘하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던 그 시절은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감정노동을 센스로 승화시키는 방법 - 살림꾼 막내의 주인의식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너무나 진부하다. 자기계발서에 수도 없이 나오는 그 말. 직장에서도 선배들이나 상사들에게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가장 듣기 싫은 말. 아니 회사의 주인은 따로 있는데 왜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강요하시죠? 싶지만, 이때쯤 깨달았던 것 같다. 주인의식 없이 조연출을 하려면 100배쯤 마음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른 모든 방송이 그렇듯 음악방송에도 수많은 스탭이 있다. 스크롤이 흘러도 흘러도 계속 흐를 만큼 많은 수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데, 우리는 연출팀이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는 걸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솔직히 처음엔, 스스로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감독님들만 계셔도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왜 여기 서있는 것인지. 카메라 감독님들은 알아서 컷을 잡았고, 특효 감독님도 타이밍 다 알고 계셨고, PA 감독님은 신입인 나보다도 더 큐시트를 잘 보시고 알아서 마이크를 채워주고 계셨다. 심지어 FD 분들이 소품도 옮기고 무대까지 밀고 있는데? 내가 이 스튜디오에서 할 일은 대체 무엇인가 싶었지만, 문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였다. 뭔가 바뀌는 순간들, 방송에선 수도 없이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의 순간들. 그때마다 한없이 능력자처럼 보이던 감독님들이 부르는 건 결국 피디의 이름이었다. 피디님 이거 어떡해요, 피디님 저거 어떡해요, 의 쓰나미에서 느껴지는 위기감. 이걸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 방송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노래에 담긴 내용과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특정 지점의 문제를 해결할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까지를 매뉴얼화시키는 작업. 여기엔 대략 두 달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누가 무슨 질문이라도 할까 봐 덜덜 떨던 모습에서 여유를 갖고 넉살 좋게 답변을 받아치는 조연출이 되기까지는 사실 혼자만의 끊임없는 연구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결국 연출팀인 내가 이 방송의 주인이라는, 자아도취 한 스푼 섞은 주인의식에 기반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 결과는 넉넉한 자신감이 되어 돌아와 주었다.


덧붙이자면, 누가 묻든 친절하면 좋다. 잘 몰라도 그저 웃고 긍정하면 된다. 알면 알려드리면 되고, 모르면 확인해 드리면 될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라는 말이 주는 신뢰감만큼은 변하지 않으니까. 방송에선 숨 쉬듯 발생하는 것이 예측할 수 없던 이슈와 문제 아닌가. 극 J를 극 P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하던 대로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되 친절하게 대응하면 내가 한 감정노동이 센스가 되고, 어느새 대단히 멋진 해결사가 되어있을 수 있다.




대단한 비결이 있는 것처럼 적어놨지만, 사실 아직도 조연출의 업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런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 풍덩 뛰어들어, 결국 두꺼운 매뉴얼 하나를 후임자 손에 쥐어주고 나온 것이 뿌듯할 뿐이다. 하긴,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또 방송의 재미 아니겠나. 적어도 나는 루틴이 있는 음악방송으로 시작한 덕분에 반복 터득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음악 무대의 준비 과정을 탄탄히 익혔으니, 결과적으로 이 배정은 플러스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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