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네 Mar 03. 2024

친구 어머니 정성이 가득 담긴 터키 유기농 가정식

퀴타히야, 터키


퀴타히야역에서 제이넵 차를 타고 제이넵이 어머니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 가는 길에 빵집에 잠깐 멈춰서 제이넵은 내일 아침 식사로 먹을 빵을 샀다. 제이넵의 집은 4층짜리 낡은 빌라로 건물 전체가 제이넵 어머니 소유이고 위층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차를 타고 오는 길에 와! 4층짜리 집이라니 너 부자네~~ 하고 말했더니 제이넵은 뭐, 우리 가난하지는 않아. 나라 경제가 엉망이어서 그렇지, 하고 말했다. 한 열 시 가까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늦은 시간 도착이라 민폐일까 봐 걱정했는데 어머니는 춥지 않았냐며 따뜻한 차와 과일을 내주신다. 정성을 봐서 배를 깎아 먹었다.



포근한 침대에서 눈을 떴다. 남의 집에서 너무 늦게까지 잠을 자면 민망해서 본능적으로 7시부터 눈이 떠졌는데 다행히 9시 넘어서까지 모든 식구가 잠을 잤다. 소파베드라 불편할 줄 알았는데 소파에 이불도 깔고 포근한 이불을 덮으니 엄청 따뜻하고 포근하다. 창문 밖으로 제이넵 동네가 보이니 좋다. 내가 감기기운에 으슬으슬해하니 히터를 세게 틀어주었다. 너무 세게 틀어서 제이넵은 더워서 3시쯤 거실로 나가서 잤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눈을 뜨면 보이는 책장에 제이넵의 책들이 있다. 제이넵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어서 수학책들이 있고, 석사 논문 쓰는 중이라 관련된 책들이 있다.


아침식사
어머니가 직접 만든 카이막
카이막 먹는법. 빵에 바른다음에
꿀, 잼 등 원하는 것 올려 먹기
직접 만들었다며 덜어주신 크랜베리 쨈

열 시 반쯤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 식사를 먹는다. 신선한 올리브, 치즈들, 계란치즈 부침, 감자를 넣고 만든 빵, 모든 식사에 빠지지 않는 터키식 차(çay)! 백종원이 터키 가면 꼭 먹으라는 카이막을 아직 못 먹어봤다. 아침 식사 전문 식당도 이렇게 한상차림은 꽤 비싸다. 그런데 난 어머니가 직접 키운 야채, 쨈, 유기농 빵을 먹으며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 올리브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맛보느라 먹어봤다. 작은 카키색 올리브가 짜지 않고 맛있어서 몇 개 먹었다.


어머니가 직접 만든 카이막은 유기농 우유를 사다가 저온에 끓이고 식혀 만든 것인데 버터도 직접 만드셨다. 카이막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너무 기대돼! 어떻게 먹는 거야? 하고 물으니 친구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호밀빵을 조금 뜯은 뒤 카이막을 바르고 그 위에 꿀이든 쨈이든 원하는 걸 올려 먹으면 된다. 쨈은 딸기쨈, 무화과호두쨈이 있었다. 무화과를 평소에 좋아하진 않았는데 먹어보니 너무 맛있고 고소해서 물어보니 터키에서 많이 먹는 무화과호두쨈이다! 제이넵 집에서는 이것도 유기농. 어머니는 평소에 뭐 하시냐고 물어보니 할머니랑 밭농사 짓는 걸 좋아하신다 했다. 내가 아플 때 준 린든차도 나무에서 딴 거고, 크랜베리 농사도 짓는다며 시큼한 거 좋아하냐고 쨈을 가져오시더니 덜어주신다. 건강한 맛인데 되게 상큼하고 약간은 단맛도 나면서 맛있다. 하트 뿅뿅.


카이막에 꿀도 올려 먹고 무화과도 올려먹고 이번엔 버터에, 이번엔 치즈에 다양하게 맛본다. 카이막은 유튜브들에서 말하는 그렇게 환상적인 맛까지는 아니다. 우유맛 나는 굉장히 부드러운 크림 같은데 맛있긴 맛있다. 나도 집에 가서 만들어보고 싶다. 카페인에 취약한데 터키식 차이를 마시고는 밤에 잠을 잘 잔다. 홍차일 텐데 왜 그렇지? 두 단짜리 주전자 밑에는 끓는 물이, 위에는 차가 들어있고 은은하게 섞어서 마신다. 아침이든 간식이든 식사든 터키인들은 항상 이 차와 함께다. 길거리에도 10TL(450원)이라는 포스터를 자주 볼 수 있다.

라비아가 보낸 메시지


제이넵 친구 라비아가 차이를 마시는데 손잡이가 뜨거운데도 왜 이리 잘 잡고 마시냐고 내가 놀라던 게 생각나나 보다.



낮에 퀴타히야를 돌아보고 세시 반쯤 집으로 돌아왔다. 더 구경하지 왜 이리 일찍 왔냐며 간식으로 케이크를 내어주셨다. 어젯밤 제이넵이 준 잠옷바지와 발 시리지 않냐며 준 수면양말을 신고 일요일의 편안한 오후를 보낸다. 우유도 따뜻하게 데워준 제이넵. 터키 가정의 카펫. 우리 집에도 가져가게 카펫을 사가고 싶은데 부피가 커서 엄두를 못 냈다. 케이크를 먹으며 같은 코리더에 살 때 제이넵이 부엌에서 만들어준 초코 케잌을 떠올린다.


저녁 식사를 차려주시는 어머니
만트라고 하는 만두 같은 것인데 안에 병아리콩 같은게 들어있다
병아리콩 수프
단호박 후식

제이넵 엄마는 우리가 외출하면서부터 저녁 식사를 준비하셨다.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집에 초대해서 이렇게 정성스레 여러 요리를 차려서 내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감사해서 시내에서 노란색 프리지아 꽃을 사다가 어머니께 드렸다.


파프리카 같은 것 안에, 그리고 깻잎 같은 것 안에 밥이 들어있는데 향이 강하지는 않은데 이국적인 맛이 난다.  만트는 만두 같은 것인데 안에 자잘한 콩들이 들어있다. 나는 병아리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닥 맛은 없는데 병아리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맛있게 먹을 맛이다. 러시아 펠미니에 사워크림을 올려 먹는 것처럼 여기두 요거트를 올려 먹는다. 저녁에는 소다도 사다 주셨는데 나는 저 소다를 정말 좋아한다. 사이다는 아닌데 약간 달달한 맛이 나는 스파클링이다!


그리고 정말 맛있는 것은 디저트로 먹는 단호박! 늙은 호박이라고 해야 하나. 약간 꿀로 달달하게 절여진 호박을 접시로 가져와 덜고 그 위에 카이막을 듬뿍 뿌린 다음에 위에 호두를 뿌려 먹는다. 내 입맛에 딱 맞는 정말 맛있는 맛! 호두도 아까 우리가 테이블에 앉아서 직접 뿌개고 깐 유기농 호두이다. 해독이 절로 될 듯한 터키 유기농 가정식.


어머니는 영어를 못하시지만 나와 소통을 하고 싶어 거실로 자주 나오시고, 아주 간단한 영어 단어는 알아듣는다. 비록 집안이지만 볼 때마다 방에서 매번 다른 스카프를 메고 나오셔서 우리가 웃는다. 이제 일을 안 하신다고 하는데 나이는 53세로 되게 젊으시다. 일을 안 하면 낮에는 무엇을 하며 행복을 느끼시냐 물으니 번역기로 바느질하고 미싱 하는 과정을 듣는다고 하며 작업물도 사진으로 보여준다. 파는 거냐 하니 그냥 순수한 재미로 하는 거라고 말한다. 제이넵 방에 있는 뒤여운 기린도 어머니가 만드신 거다.


아침을 먹을 땐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셨다. 내가 일어나 인사하려 하니 일어나지 말고 편하게 먹으라는 제스처를 취하신다. 할아버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 하니 비행기가 몇 시간이 걸리냐, 얼마냐, 터키에는 얼마나 있냐 등등 제이넵 통역을 통해 물으시고 내가 너무 스윗하고 귀엽다면서 좋아하신다. 계속 더 있다 가고 여기 같이 살자고 한다. 근데 막상 몇 마디 나누더니 자기는 볼일이 있다며 금방 떠나셨다. 할머니가 가기 전에 나랑만 둘이 사진을 찍고 싶다 하셨다. 그리고 자기 sns에 돌려도 되냐고 물어 흔쾌히 당연하죠! 하고 말했다. sns는 왓츠앱 스토리 같은 것이었고 나중에 제이넵 폰으로 보니 나랑 찍은 사진을 진짜로 올렸다. 재밌다. 나도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나 혼자 씻지도 않고 파자마 바람이라 우리 집에 손님을 초대한 것 같은 사진이다.


제이넵이 샤워를 하러 간 사이에 통역가가 없어진 우리는 앱으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제이넵하고 계속 같이 살고 싶지 않으세요? 제이넵이 결혼하면 같이 못 살잖아요! 하니 당연히 후딱 결혼해서 나가 사는 게 자기는 좋다고 말한다. 제이넵 어머니는 내가 다음날 아침 오전에 부르사행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도 동행하셨다. 추운데 같이 버스를 기다려주셨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아침에도 부르사, 이스탄불로 긴 여정이 될 테니 탄수화물이 필요하다며 거한 아침식사와 함께 감자를 볶아 주셨다. 마지막으로 카이막 즐기기. 여름에 제이넵 가족이 안탈리아 등 남쪽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는데 기회가 되면 나도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다시 만날 생각에 이별이 아쉽거나 슬프지 않았다. 따뜻한 마음 가득 충전하고 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정하고 보려면 안보이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