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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13. 2024

여기 가려고 아부다비에서 스탑오버


어머머 한국인이죠?
우리 딸하고 사진 한 번 찍어주세요!!


쾌활해 보이는 세명의 여자 무리가 멀리서부터 날 발견하고 다가올까 말까 하다가 다가와서 말을 건다. 한국인을 봤다는 신기함에 눈빛이 반짝반짝한 무리이다. 한국인이어서든 무엇이어서든 나를 좋아해 주는 존재는 고맙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내 옆에 세우고는 소녀가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사진 찍고 싶다고 어머니가 말한다. 나는 아이폰의 카메라를 왼쪽으로 쓸어 카메라 화면을 켠 뒤 내 걸로도 찍어달라고 건넸다. 내 핸드폰을 돌려주면서 고맙다며 자기네들은 카자흐스탄에서 왔다고 했다. 작년 내내 카자흐스탄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못 갔던 나는 오! 저도 카자흐스탄 너무 가보고 싶어요! 하고 말했다. 더 대화를 나눠도 좋을 것 같았는데 그들은 쿨하게 금방 자리를 떴다. 내가 러시아어로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하니 오, 러시아어를 해! 하고 소녀가 가는 길에 말했다. 내 사진첩에는 카자흐스탄 소녀와의 사진이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 원피스의 다리 부분을 좀 정리하고 앉아서 찍을걸.


남녀노소 다국적 국가들의 사람들을 실은 호텔 셔틀버스가 한 시간 후 마지막 목적지인 루브르에 내려주었다. 러시아어권 사람들, 유럽인, 중국인이 대부분이고 한국 사람은 나를 포함해 한두 명 정도다. 뒤통수 머리색이 다양한 다국적 사람들이 떠드는 버스에 실려 루브르에 왔는데 관광객이 진짜 많다. 근데 다행히 기다리는 줄은 없다. 야자수가 푸르르다. 아, 아부다비는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짐 될까 봐 놓고 왔는데 눈이 따갑다.  아부다비 미술관은 시내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는데 바다가 바로 보이고 야자수들이 있어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야자수가 있는데 제주도 같지 않고 괌 같지 않고 필리핀 같지도 않다. 새로운 장소 같다. 선진국 냄새가 난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그 건축물을 보러도 많이 가는 것 같다. 사진으로 보면 회색의 저 철근 같은 지붕이 뭐 그리 아름답고 대단하다고 보러 갈까, 싶은데 그 거대한 공간에 들어서면 압도적인 아우라가 있다. 바람이 통해 시원하고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어떤 동양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와서 긴 삼각대를 세워두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다. 미술관 안에서 청록색의 맑고 깨끗한 바다가 보이니 마음이 상쾌해진다. 미술관 곳곳의 창문에 좋은 글귀가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로 쓰여 있어 지나갈 때마다 보는 재미가 있다. 아랍어 글씨가 너무 이국적이고 좋다.




전시를 보기 전에 건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배가 고파서 뭐 좀 먹으러 갔다. 카페 레스토랑이 여러 개 있는데 깔끔한 토마토 오일 파스타가 먹고 싶다. 한 카페 레스토랑 입구 쪽으로 걸어가니 메뉴판이 있었다. 메뉴판 앞에 서 있는 직원이 식사를 할 거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혹시 파스타도 있냐고 물었다. 펜네 아라비아따가 있고 먹고 싶다면 햄버거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다고 말한다. 아부다비 물가는 대략 식사에 2-3만 원 드는 걸 알고 와서 메뉴판을 보니 가격도 무난해 보인다.


왼편엔 바다가 보이는 뷰인데 펜네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부터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말하는 것과 스타일을 보니 대만인인 것 같은 커플이 앉아있다. 주위에 화려한 문양의 끈나시 원피스 등을 입은 서양인들이 많다. 펜네 아라비아타는 너무 맛있다. 면 삶기 정도도 덜 익은 느낌 없이 식감이 쫀득하다. 소스도 너무 맵지 않고 정말 맛있다. 2만 7천 원인가, 너무 비싸지만 맛있고 양이 많다. 이때는 위장도 안 좋을 때라 양이 너무 많아 먹다 먹다 남겼지만. 어쨌든 탄수화물 가득한 식사!


주문할 때 음료는 뭐로 할 거냐 물어서 “유리병에 담아 공짜로 물을 주진 않지요?” 하고 물었더니 사 마셔야 한다고 한다. 그럼 물 한 병 작은 걸로 주세요, 했는데 7천 원짜리 유리병에 든 에비앙 물을 가져다준다. 루브르라 물도 프랑스 물을 주나. 비싸지만 어쩌겠어 물은 마셔야지. 에비앙 물은 평소에 흐르듯이 맛있게 먹히지 않고 툭툭 끊어져 들어가서 안 좋아하는데 이 물은 또 맛이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이런 보석들이 많다
모양도 재질도 영롱하다
예쁜 보석함
아라빅 느낌이 좋다
붉은 색감이 좋다


내가 갔을 땐 까르띠에 보석전을 템포러리 전시로 하고 있었다. 상설전시에는 기원전, 로마 제국, 페르시아 등 조각 도자기 등이 있고, 나는 회화를 좋아해서 한동안 봤는데 모네, 칸딘스키, 피카소, 샤갈 등 뭐 마리 앙뚜아네뜨 초상화 등 소소하지만 구경할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도 있다. 예전에는 초상화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유독 초상화에 매료된다. 사진기도 없던 시절 사진처럼 그린 커다란 초상화를 보면 그 당시 옷도 구경하고 가구 장식 표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옷의 질감을 어쩜 저렇게 표현하는지 정말 아름답다. 헝가리 국립박물관보다 오랫동안 머물며 본 작품들이 많았다. 아이를 낳으면 미술관에 자주 가고 싶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마음에 일어나는 흥분감, 삶에 의지가 생기는 것 같은 불쑥거리는 마음이 좋다.



전시 구경을 마치고 나와 벤치에 앉아 경치와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며 자연 속에서 쉰다. 근처에 바다가 있는데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을 못 찾겠다. 중간중간 인부 아저씨들이 있어 물어 물어 가는데 공사 현장에 가려져 버스 정류장을 못 찾겠어서 결국 해변 가는 걸 포기하고 시내에 가보려 한다. 모래 바람이 불어 눈이 까끌해진다. 버스비는 2-3 디르함 정도 한다. 아랍의 버스는 남녀가 유별하다. 여자들이 앉는 구역에 앉아 밖을 구경하면서 가는데 도시, 건물 구경이 재밌다.


@the espresso lab


도심 뷰가 예쁜 카페에 왔다. 내부는 아랍느낌은 나지 않는 깔끔한 모던한 디자인의 곳이다. 아무리 덥지 않은 따뜻한 날씨여도 15분 정도 그늘이 없는 길을 걸었더니 목이 마르다. 내가 마시려는 허브티가 다 떨어져서 아이스초코를 시켰다. 와이파이를 쓰면서 글을 쓰면서 쉬려고 했는데 배터리가 30도 안 남았다. 아직 3시 반 밖에 안 됐는데 호텔에 무사히 돌아가려면 아껴 써야 한다. 혹시 충전이 되냐고 물었더니 충전기가 있으면 자유롭게 사용해도 되는데 아쉽게도 아이폰 충전기는 없다고 한다.


무려 만 육천 원짜리 아이스초코를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본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아랍 모자를 쓴 남자가 옆 테이블에 앉아있다. 재밌게도 우리가 보기에 똑같아 보이는 의상이라도 재질도 브랜드도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어제까지 난 한국이었는데 10시간을 날아온 이곳 카페 옆자리의 남성은 진짜 신기하다.


에티하드 항공에서 서비스를 해주던 턱수염이 약간 난 키 크고 다부진 체격의 승무원이 있었는데 아랍 사람이라면 자기네 나라에선 저렇게 하고 다닐까, 하는 상상을 하였다. 내가 감기에 걸려서 따뜻한 물을 달라고 했었는데 음료 서비스가 끝난 뒤 혹시 네가 필요할까 봐, 하고 담요도 하나 더 주고 자는 시간에 지나가다가 내가 기침을 하자 따뜻한 물을 혹시 가져다주냐고 물었던 따뜻함. 동기 중에 수염이 세게 나고 아랍 사람 같이 생긴 사람이 있는데 여기에 오면 현지말로 말 걸까, 하는 생각도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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