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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울사람으로 보이려 애쓸 필요 없어요

by 모네

대학교에 입학해서 사투리를 쓰는 또래들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신기했다. 호감 가득한 신기함이었다. 경상도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충청도, 광주도 한 두 명 있었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나의 일상에서 사투리 쓰는 사람들은 40-50대 학교 선생님들이나 엄마 친구인 아줌마들이었어서 사투리, 하면 나이 든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 또래 친구들이 이런 억센 억양의 사투리를 쓰다니. 나를 비롯한 서울 수도권 친구들은 어떤 신세계를 만난 마냥 신기해서 따라 썼다. 경상도 사투리에 옮아서 우리의 말투는 잠깐의 신입생 기간 동안 진짜 어설프게 흉내 내는 이도 저도 아닌 말투가 되었다. 흉내를 내다가 아예 지금까지 경상도 사투리로 변한 친구도 있다.


사투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말씨를 보란 듯이 당당하게 쓰는 친구들이 멋있어 보였다. 자신의 개성이 드러난다. 나를 키워준 우리 부모님이 전수해 준 자신의 모국어? 니까. 반면 특히 여자인 친구들은 자신의 말투를 억누르며 애써 소위 서울말이라고 하는 말투를 쓰려고 노력했다. 너무 꼭꼭 눌러 말하고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봐 말도 조심 조심하길래 자신의 원래 성격이 억눌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언어와 말씨는 곧 자신의 정체성인데 그게 왜 창피해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한 5-6개월 내 만난 사람들도 경상도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씨와 출신 지역을 들키고 싶지 않아 보였다. 현재 거주지가 서울이라고 자꾸 자신은 서울 사람이다, 서울에 산다는 걸 말하며 강조했다. 그런데 서울 사람은 주소지로 하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아닌가? 내가 치앙마이에 몇 달 거주한다고 치앙마이 사람이라 할 수 없고, 내가 창원에서 몇 달 파견되어 근무를 해서 주소지를 옮겼던 때에 내가 창원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들어도 어색한 것처럼? 나는 20대를 서울에서 매일 보내고 자취도 몇 년 했지만 스스로는 경기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


자신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 척, 자연스러운 척 해도 평생을 서울 수도권에서 산 사람들은 억양이 약간만 굴곡져도 눈치를 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듣기엔 경북 사람인데 묻지도 않았는데 “제가 서울에서 왔다 보니까,” 등등 계속 서울 사람인‘척‘ 하는 사람들에겐 괜히 반발심이 생겼다. “혹시 경상도에서 오셨어요?” 하고 물으면 엄청나게 당황해서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 “아, 아까 그까지 갔다고 하셔서요. 저는 거기까지라고 하는데 경남분들이 그까지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하면 다시 당황하지 않은 척 쿨한 척 부산에서 왔다고 한다. 자기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들키지 않은 적도 많은데 나에게 치부를 들킨 양 사색이 된 표정을 보면 재밌다. 굳이 신체 일부를 갈아 끼운 것처럼 본연의 내가 아닌 말투를 흉내 내고 원래 그런 사람인 척 살 필요가 있을까? mbti 해설에 정신고문자로 나오는 나. 서울 사람인 척 과장하지 않고 편하게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에겐 어디에서 오셨냐고 묻거나 사투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니 너무 사악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만나본 경상도 엠지들 중에선 부산 여자들이 제일 좀 티 안나는 서울말을 구사했다. 그런데 그중 대구 경북 사람들은 억양부터가 평생 고칠 수 없는 억양으로, 약간만 흐려진 억양으로 말하는데 자기는 사투리를 전혀 안 쓴다고 생각하고 들켰다는 듯 크게 당황한다. 별 거아니다를 별 ‘꺼’ 아니다,라고 발음을 하고 일료일 월료일은 이제 너무 알려진 거고,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이응 발음이 되게 높다. 요즘 크라임씬을 보는데 박지윤은 아나운서였는데도 이응 발음은 여전히 경상도 말씨가 강하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건이 일어나다,라고 할 때 ‘일’의 발음이 낮고 일자인데 그는 일! 어나다, 읽!다 등 이응의 발음을 아주 높게 시작한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를 내서 들을 때마다 귀에 턱턱 걸린다.


끝까지 자기는 서울 사람이라고 부모님만 경북에 계신다고 하던 사람에게는 “아, 그럼 고향이 서울이세요? ”라고 나도 굳이 끝까지 묻는다. “부모님만 사투리 쓰시고 서울에서 자란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하면서. 물론 그 사람은 그래 보이지가 않았다. 서울에서 자랐는데 부모님 영향으로 사투리 쓰는 사람들은 굳이 ~인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사투리 안 쓰는 척 서울 사람인 척하는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서울 사람이 하고 싶고 그렇게 보이고 싶은 걸까? 이방인처럼 보는 시선을 받은 적이 많아서 방어적이 된 걸까? 아니면 서울말과 서울사람이 멋져 보여서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인가? 난 폭풍 사투리 쓰는 사람이 더 멋져 보이고 자기다워 보여서 좋다(귀에는 계속 턱턱 걸려 이질감이 들지만. 근데 이건 내가 쓰는 말투를 듣는 상대도 그럴 테니 서로 참아주는 걸로. 또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같은 말투를 쓰겠는가. 이질감을 건강하게 포용하는 사회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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