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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01. 2019

육아휴직 24/24

#Part 1_오전

휴직하고 나면

한가하고 여유로울 줄 알았다.

그런데.


24시간이 부족하다.

휴직하고 두어 달 와이프 출근시키고, 애들 등 하원 시키고, 밥 하고, 청소 좀 해보니 하루가 만만치 않다. 아차 하는 순간, 무릎을 딱 치고 나면 일 년은 그냥 갈 것 같다. 이왕이면 보람찬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까운 휴직기간이 애들 똥만 치우며 지나가면 안 된다. 물론 애들 똥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24시간 동안 나의 주요 일과를 24가지 정도 추려본다. 시간의 흐름대로, 혹은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자.

 




1/24 - 하루의 시작



휴직 전, 회사 근처에 크고 깨끗한 50m 레인을 가진 수영장이 개장을 한 덕에  반년 넘게 새벽 6시에 수영을 하고 7시에 출근을 했었더랬다. 한 10년 전쯤에 적십자의 인명구조원 교육도 듣고 자격증도 땄을 정도로 수영을 즐겨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수영이 훨씬 재밌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 사이 많이 늙은 탓에 수영이 그나마 몸에 무리가 덜해서 일테지.

아무튼, 새벽 수영은 앞으로도 평생 가지고 가고 싶을 정도로 좋은 습관인 것 같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빨리 시작할 수 있고, 오전에 굳은 몸으로 하기에 몸에 무리도 많이 없다. 남들 잘 때 일어나서 1~1.5킬로 정도 수영하고 나면 약간의 성취감도 든다. 물론 건강까지 좋아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육아는 곧 체력이다. 육아의 성패는 체력이 좌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체력관리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에 아침운동은 필수 일과가 될 수밖에 없다.

샤워 후 수영장을 나서면 오전 7시, 그 어느 순간보다 맑은 정신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이제 전쟁터로 복귀할 시간.





2/24 - 커피 한 잔


그녀는 정확한 가격을 모르지만 커피는 맛있다고 한다.  가격을 몰라야 그 맛을 더 오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7시 10-15분쯤 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빠아아아아아!!'를 외치며 두 아이가 뛰어온다. 자, 지금부터 오전 일과 시작!

운동하고 왔더니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커피머신의 전원을 켜고 예열되는 동안 아이들의 먹을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에 애들 등원 준비시키며,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는 생명수와 같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전자동 커피머신을 큰 맘먹고 직구로 샀다. 그래, 나는 물욕의 노예임을 인정한다. 선 자기 합리화, 후 지름신 영접의 항상 똑같은 패턴이다. 때로는 여기에 와이프의 선결재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여부에 따라 용서냐, 몽둥이냐, 실외 취침이냐 등의 변수들이 뒤따르기도 한다.

와이프 거 한 잔, 나 한 잔 사이좋게 내린 후 카페인을 주입한다.




3/24 - 애들 아침


낫또밥 -  들기름에 볶은 김치, 시금치, 멸치볶음 ,낫또 그리고 마법의 주먹밥 가루를 넣고 참기름 몇 방울 톡톡

애들 아침은 주로 하나의 그릇에 준비한다. 떠먹이고 할 시간이 없으므로 숟가락 하나로 본인들이 직접 떠먹을 수 있게 간단하게 이것저것 고기, 야채 등을 비벼 주거나, 빵이나 누룽지를 그릇에 담아 준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고맙게도 잘 먹는다. 그렇다면 애들 밥 먹을 동안 쉬는 시간?? 노노, 수영 끝나고 집에 온 순간부터 애들 등원 전까지는 한순간도 앉을 틈이 없다.




4/24 - 과일야채주스


사과, 레몬, 키위, 샐러리, 시금치
사과, 레몬, 아스파라거스, 오이, 매실액기스


꿀꺽꿀꺽 원샷

일주일에 3-4번 정도 만들어서 애들 먹이고 우리도 마신다. 잘 마시는 날도 있고, 싫다는 날도 있다. 안 마시는 날은 땡큐다. 엄마 아빠 디톡스 하는 날이 되겠다. 단맛을 내는 과일 한 두 종류(사과, 키위, 파인애플 등)는 꼭 들어가고 야채들은 소화를 위해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찬물로 식힌 후 갈아 준다. 레몬은 정균 및 해독효과가 있다고 해서 꽉 짜서 즙만 넣는다. 혹시나 속에 부담될까 싶어 애들은 꼭 밥 먹은 후 디저트처럼 주고 있다.

잘 마시고 가는 날은 그래도 건강하게 채소를 좀 먹였다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하다. 아이들 채소 먹이기는 다른 많은 집들도 숙제일 것 같다. 아빠 나 시금치 주세요 당근 주세요 샐러리 주세요 하는 애들은 없으니까. 그나마 밥에 잘게 썰어주거나 이렇게 갈아주는 것도 방법이다.




5/24 - 그녀의 아침 도시락


햄, 치즈 샌드위치(매일 태우지는 않음), 더 중요한 건 직접 구운 식빵이란 것!!


커피와 샌드위치, 이렇게 두면 출근길에 가져가신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 애들이 남긴 음식 또는 식빵에 잼 발라서 서서 씹지도 못하고 삼키느니 출근하는 길에 차에서 라디오나 들으며 조용히 먹는 게 훨씬 우아하겠지 싶어서 간단히 만들어서 들려 보낸다.

주방에서 상시 대기 중인 파니니 그릴에 올려놓고 다 구워지면 다른 일 하다가 와서 꺼내기만 하면 된다. 가끔 정신없거나 싸운 날은 좀 태우기도 한다. 과일이나 야채 있으면 따로 담아주기도 하고 바가지 많이 긁는 날은 안 싸주고 싶지만, 그래도 돈 벌어오는데 잘 보여야 한다. 잊지 말자. 이제 생활비 받아써야 하는 처지다. 그녀가 가장이다.




6/24 나의 아침


어묵국에 말아서 후루룩

왜 궁상이냐고? 딱 내가 와이프한테 했던 말이었다. 휴직 전, 내가 출근할 때는 와이프가 간단히 챙겨 먹을 수 있도록 가끔 저녁에 찌개나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놨었는데 퇴근 후 보면 거의 먹지도 않고 남겨진 때가 많았었다. 왜 만들어줘도 못 먹냐, 아침에 애들이랑 먹음 될 텐데 왜 궁상이냐 핀잔주면 아침에 그럴 시간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어차피 애들 먹이는 거 같이 먹음 될 텐데 왜 시간이 없는지 이해가 잘 안 됐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한다. 입만 놀리면 다친다.

겪어보니 내가 딱 궁상이다.

자, 오늘 아침을 보자, 어묵국은 딱 한 명 먹기도 애매하게 남아있고 애들은 어제도 저녁으로 저걸 먹은 상황. 그럼 애들은 질린다고 잘 안 먹을 테니 다른 빵이나 밥을 비벼서 준다. 밥솥을 보면 또 딱 한 명 먹기도 애매하게 밥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궁상을 떨 때인 것이다. 국그릇을 꺼내 이 애매한 밥을 이 애매한 국에 말고, 아침에 잘라주고 남은 시금치를 선 채로 먹는 것이다. 꿀맛이다. 이제 보니 이게 왜 궁상인가. 남은 국과 밥을 깨끗하게 비우고 빈 냄비와 밥솥을 보면 그게 또 그리 뿌듯하다. 설거지도 안 나오고 오늘도 잔반은 제로이다.




7/24 똥

다른 글에서도 쓴 바 있고, 읽는 분들을 위해 길게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좋아서 많이 싸고 날이 흐려서 많이 싸고, 아침 먹고 나면 거의 꼭 큰 일들을 보신다. 엄마가 말하길 아빠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부정할 수가 없다.


 


8/24 등원


그쪽 아닙니다!

드디어 등원이다. 대략 9시.

양치와 세수시키고, 엄마가 꺼내 놓고 간 옷들 입히고 양말, 신발 신겨서 데리고 나오면 된다. 말이야 쉽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쫓고 쫓기는 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점심 맛있게 먹고 잘 놀다 와라 얘들아.


오전 1차전이 끝이 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쑥대밭이 된 집을 정리하고 소파에서 자고 있는 친구들을 깨워서 돌려보내고, 만신창이가 된 부상병을 셀프로 돌 볼 시간이 왔다.

왜 여기서 자고들 있니


그리고 2차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놀 틈이 없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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