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02 향수란 무엇인가?
어쩌면 최초의 향수는 원시시대부터 쓰여졌을 지도 모른다.
인류가 불을 쓰기 시작하면서, 고기를 불에 구워먹기 시작하면서 부터 향수의 역사는 시작되지 않았을까? 고기를 구워먹고 나면, 한참 동안 옷에 냄새가 배여, 고기 냄새가 계속 따라다닌 경험은 다들 한번쯤 있을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고기 냄새를 풍기며, "나는 방금 고기 구워 먹은 능력있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야! 너도 고기 먹고싶니?" 라며 고기 향을 풍기며 이성을 유혹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멋대로 한 상상이긴 하지만, 아니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이러한 상상을 하지 않고서도, 역사 속에서 향수를 사용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향수는 실로 아주 오래전 부터 사용되었다. 기원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뒷받침하듯, 성서 창세기전을 살펴보면 몰약, 유향 등의 향신료가 언급된다. 4500년 전의 이집트 제 5왕조 시대에는 미라를 만들때 몰약을 사용했었다. 어쩌면 향수는 인류에게 최초의 화장품이자 사치품이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도 물론 고가이지만 기원전 향료들은 매우 비싼 사치품이었기에, 종교적, 치료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제사장들은 연기를 통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제거하여 스스로를 정화한 후 종교 의식을 행했다. 처음 인류가 사용한 향수는 주로 허브같이 향기가 강한 식물들을 태워 그 연기를 몸에 직접 쐬는 방식이나 향료를 몸에 직접 묻히는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향수를 나타내는 perfume은 라틴어 perfumum에서 유래된 단어로, per은 through를, fumum은 smoke, 연기를 뜻한다. 즉, 이는 '연기를 통하여', '무엇을 태울 때 나는 연기를 통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쯤되면 원시시대 고기 향수설도 그럴싸한 가설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향수의 발달은 연금술의 발달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지금도 대체로 조향사들이 화학을 전공하였거나 화학에 능통하거나, 화학에 대한 일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아랍은 9세기 무렵 알콜을 증류법을 찾아냈고, 10세기 경에는 최초로 수증기 증류법으로 에센셜 오일을 추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랍은 알콜 사용을 금지하였기에, 향수는 대체로 고체 향수나 오일 형태로 발달하였다. 십자군 전쟁을 거치며 아랍의 수증기 증류법과 알콜 증류법 등 다양한 연금술 지식이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덕에 13세기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금을 얻기 위해 와인으로 실험하던 중 알콜을 증류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알콜을 증류할 수 있게 되자, 알콜에 원료를 넣고 향수를 만들기도 했지만, 원료의 향이 알콜에 온전하게 배이지 않았고, 원료의 찌꺼기가 많이 떠다녀 사용하기 불편했다.
14세기에 와서야,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형태의 알콜 향수가 만들어지게 된다. 최초의 알콜 향수는 1370년 로즈마리를 증류하여 얻어진 에센셜 오일을 알콜에 희석해 만든 '헝가리 워터'로,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해 만들어진 향수였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헝가리 워터를 자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정말 그녀가 헝가리 워터 덕에 아름다움을 유지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아름다움을 잘 유지하여, 나이 72살에도 자신보다 연하인 폴란드 국왕에게 청혼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향료를 대량으로 추출하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향수가 대중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향수의 핵심인 향료는 종류가 대략 6000여 가지가 있는데, 이 중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3000여 가지이다. 이중 동물성 원료는 머스크, 영묘향, 해리향, 용연향 딱 4가지가 있다. 동물성 향료는 채취량이 한정적이라 일반적인 식물성 향료에 비해 고가의 향료이다. 또한 동물성 향료 특유는 따뜻하고, 무거운 느낌, 관능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편이라 베이스 노트에서 많이 쓰인다.
동물성 향료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머스크는 사향 노루의 생식선에서 채취된다. 사극을 보면, 왕를 유혹하기 위해 여자들이 지녔던 향 주머니, 향낭의 주 재료가 바로 이 사향노루였다. 사향노루의 향이 이성을 유혹한다는 속설 때문에, 그리고 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사향 노루는 무분별한 밀렵으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1996년 체결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희귀동식물보호규약'에 따라, 사향 노루는 멸종 위기 야생 동물 1급으로 분류되어 보호받고 있어 머스크를 채취해 거래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이제 머스크는 모두 합성향료로 만들어서 쓰고 있다.
영묘향은 시벳, 사향 고향이의 분비물에서 얻어지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고양이 똥 커피(루왁)의 그 고양이이다. 사향 고양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에 놓이면 이 분비물을 더 많이 생산하게 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사향 고양이를 좁은 곳에 가두고 스트레스에 일부러 노출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얼마나 향이 좋으면 루왁커피를 만들기 위해 사육까지 되는 걸까 싶다. 사향고양이도 사람들 때문에 참 힘들겠다... 최근 공진단 재료인 사향 노루의 사향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사향 노루에 대한 대체제로 영묘향이 뜨면서 1g에 3만원 하던 가격이 10만원 이상으로 폭등했다고 한다.
해리향은 비버의 향낭에서 채취한다. 비버의 수컷, 암컷의 생식선에서 채취하는 해리향은 레더, 타바코 향을 만들때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향이다. 사실, 해리향은 영어로 Castoreum인데, 종종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에 바닐라향을 내기 위해 이 성분이 들어가곤 한다.
유일하게 생식선에서 채취하지 않는 용연향, 앰버그리스는 향유고래의 토사물이 바닷물과 햇볕에 의해 성분이 변해지면서 형성되는 데 흔히 바다 위의 금덩어리라고 불린다. (향유고래는 전 세계의 따뜻한 바다를 누비며 살고 있으니, 한국의 해변가에도 용연향이 나타날 수 있다. 해변가를 거닐 때는 주변을 잘 살펴보며 걸어보자!!!)
위의 4가지 동물성 향료는 원료 자체의 향을 맡아보면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이를 매우 연하게 희석하여 다른 향료와 블렌딩을 할 경우 우아하고 관능적인 향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매우 인기가 많은 향료이다.
이 4가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3000여 가지의 향료 전부가 식물성 원료이다. 그럼 왜 식물들은 이렇게 다양한 향을 가지게 되었는가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식물에게서 향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식물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식물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다. 생각해보라, 식물이 귀찮게 진드기가 꼬였다고 잎사귀를 탈탈 털거나 할 수 있을까? 직접 3박 4일을 걸어가 멀리 떨어진 곳에 자신의 꽃가루를 옮겨 번식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사실 당연한 건 없지만, 내가 보고 배운 바로는 식물은 대체로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은 생존, 자기 방어, 번식 경쟁을 위해 향을 발산한다. 벌이나 나비를 유인하기 위해 향을 내뿜고, 벌과 나비가 날아와 꽃가루를 뭍여 다른 곳으로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떨어뜨린다. 소나무는 자기 주변에 다른 나무들이 자라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될까 피톤치드를 분비한다. 인간에게는 힐링이 된다는 피톤치드가 소나무 외의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만드는 방어책인 것이다. 식물은 평소 세포 사이(세포벽)에 이러한 성분들을 모아두었다가 필요시 이를 발산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추출하여 에센셜 오일로 사용한다.
향료인 에센셜 오일을 얻는 방법에는 냉침법, 온침법, 압착법, 수증기 증류법이 있는데, 영화 향수에서 그루누이는 냉침법을 통해 향료를 채취한다. 냉침법은 원료에 라드를 잔뜩 발라 원료의 향이 라드에 배게 하여 향을 추출하는 방법이다. 온침법은 베이스 오일에 원료를 넣고 햇볕을 쬐여 따듯하게 만들어 향이 배이게 하는 방법이다. 압착법은 원료를 압착하여 오일을 짜내는 방식이고,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수증기 증류법은 원료를 넣고 열을 가하면 에센스 오일과 수증기를 함께 모은 뒤, 이를 냉각 파이프를 지나게 한 후 무게에 따라 에센셜 오일과 에센셜 워터(증류액)으로 분류하여 향료를 추출한다. 이렇게 얻어진 향료인 에센셜 오일을 고체인 밤형태로 만들거나, 알콜에 희석하여 향수로 만든다.
에센셜 오일을 희석하는 이유는, 에센셜 오일이 매우 고가이기 때문 고농도노로 농축된 성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장미 꽃잎에서 에센셜 오일 1ml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보통 수천송이의 장미가 필요하다. 식물에게 소량씩 존재하던 성분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식물들을에게서 추출해 얻어지는 것이 에센셜 오일인 것이다. 에센셜 오일은 따라서 특정 에센셜 오일은 산성이 강해 희석하지 않고 피부에 바로 바르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바르는 오일은 캐리어 오일 혹은 베이스 오일에 에센셜 오일을 희석하여 만들어진 오일이다. 향수도 마찬가지로 에센셜 오일의 향을 취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그 자체로 쓰면 매우 위험할 수 있어 희석하여 사용한다.
에센셜 오일을 얼마나 희석하느냐에 따라 향이 달라진다.
에센셜 오일을 알콜에 어떤 비율로 희석하느냐에 따라 농도가 달라지고, 향수의 지속시간이 달라진다. 에센셜 오일과 알콜의 비율을 부향률이라고 하는데, 흔히 오 드 코롱(콜로뉴/쾨른), 오 드 트왈렛(EDT), 오 드 퍼퓸(파팡/파르푕, EDP), 퍼퓸(파팡/파르푕/parfum extrait)으로 나뉜다.
여기서 "오(Eau)"는 프랑스어로 "물"을 뜻한다. 향수는 알콜과 섞는다면서 왜.. "오"만 붙는 걸까? 왜냐면 사실 알콜보다 물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체로 향수는 에센셜 오일과 15~18% 가량의 알콜과 증류수로 만들어진다.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들어가는 건 "물"이다. 향수를 떠나 대부분의 화장품 성분 중 물이 왜 가장 많이 들어있는 걸까? 저렴해서? 물이 빠진 화장품은 치즈 없는 피자, 앙꼬없는 찐빵, 뉴턴이 사라진 고전역학같은 걸까?...왜 우리는 거금을 들여 물을 사는 걸까?)
가장 약한 농도인 샤워 코롱은 2~3%, 흔히 코롱으로 불리는 오 드 코롱은 3~5 %의 농도로 에센셜 오일을 희석해서 가장 농도가 옅다. 지속 시간이 2~3시간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뿌려보면, 향이 나는 건가 싶어서 더 많이 뿌리게 된다. 여러번 뿌린다고 해도 코롱의 지속 시간은 매우 짧다. 강한 향을 싫어하거나, 지속력이 약한 향수를 찾거나 가볍게 뿌리고 싶을 때 사용하기 좋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오 드 트왈렛은 5~7%의 농도로 에센셜 오일이 들어가며 코롱보다 향이 강하며, 3~4시간 정도 향이 지속된다.
오 드 퍼퓸은 에센셜 오일의 농도가 8~15% 정도로, 5시간 이상 향이 지속되며 꽤 진한 향이 난다.
향수 원액이라고 불리는 퍼퓸(파팡/파르푕/parfum extrait)은 15~30%의 농도로 에센셜 오일이 들어가 있어서 향이 매우 매우 진하게 난다. (가끔 조향사들이 향수를 만들며 느꼈던 감정이나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읽어보고 읭?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때는 퍼퓸(파팡)의 향을 맡아보자. 조향사가 표현하고자 했던 향은 주로 퍼퓸이다!)
너는 뭐로 만들어 졌니?
향수는 어떤 에센셜 오일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비율로 조합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어떤 향을 메인인지, 어떤 원료들을 사용했는지, 어떤 비율로 조합하였는지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향수에 어떤 원료들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성분을 보는 것이다. 그것보다 간략하게 어떤 향이 나는지를 보고 싶으면, 노트를 보면 된다. (사실 맡아보면 되지만 맡아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트에는 탑노트, 미들노트, 라스트노트가 있다. 대체로 탑노트는 30%, 미들노트 50%, 베이스노트는 20%의 비율로 구성되는데, 이들의 밸런스에 따라 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우리가 향을 맡을 때에는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 순으로 맡지만, 향수를 만들 때는 베이스노트, 미들노트, 탑노트 순서로 원료를 배햡한다고 한다.
탑 노트, 헤드노트라고도 불리는 탑노트는 가장 먼저 맡아지는 향으로, 휘발성이 높은 원료들로 구성된다. 주로 향수를 처음 뿌리자 말자 맡아지는 향은 사실 알콜이다. 그래서 향수를 시향할 때 시향지에 향수를 뿌리고 열심히 흔드는 것이다. 알콜아 날아가라! 그 알콜이 날아가고 난 후 맡아지는 첫 향이 탑노트다.
미들 노트, 하트노트라고도 하며 향수를 뿌리고 20분에서 1시간 가량이 지나서 맡아지는 향이다. 주로 미들 노트로 향수의 이미지가 결정되어 진다. 해당 향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향이 바로 미들 노트이다. 향수를 뿌리고 집을 나서면 그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 들고 다니면서 뿌린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지만...
베이스 노트 혹은 라스트노트라고 불리는 잔향은 주로 향수를 뿌리고 2~3시간 후에 느껴지는 향이다. 베이스 노트는 사용하는 이의 체취나 온도에 영향을 받아 향이 달라진다.
향수를 사기 전에 늘 시간을 가지고 시향을 해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향하는 순간에 맡은 향으로 결정했다가는 사놓고 화장대 구석에 장식용으로 놔두거나, 누군가에게 "이거 너 줄게" 하는 참사가 일어나는 이유가 이 노트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트들을 모두 맡아보지 않고 덜컥 향수를 구매한다! 향수를 뿌린 후, 시간을 두고 이 향이 어떻게 변하는지, 나와 반응해서 어떤 향이 나는지를 맡아본 후 구매를 해야한다.
향수는 시간에 따라 향이 변한다. 뿌리는 사람에 따라서도 향이 달라진다. 똑같은 향수를 뿌리더라도 세상에 똑같은 향이 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향수가 나에게 반응하여 나만의 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향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만의 것이다.
조향사이자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까지 받은 세르주르텐은 향수는 남과 자신을 구분시켜주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 <향수>에서 그루누이는 "향기는 그 사람의 영혼이다"라는 말을 했다.
당신의 영혼에서는 무슨 향이 나는가?
당신과 당신의 영혼에서 어떤 향이 나는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당신에게서 어떤 향이 났으면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