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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커트 Mar 01. 2021

일기를 쓸 용기

글 쓰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기를 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일기를 쓸 때야말로 가장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때다. 글로 무언가를 옮기는 순간이 나는 항상 두렵다. 좋았던 일들은 글로 쓰는 순간 전부 희석되어 사라지는 것 같고 나쁜 일들은 영원히 박제 되는 것만 같다. 결국 아무것도 진실되지 않은 것 같고 후에 그 글을 읽는 나는 나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 같다. 정확한 기록이라는 것은 없으니까. 어떤 작가는 무언가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때는 그것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때라고 말했다. 미움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면 아무것도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때가 와야만 나는 정확한 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요원한 일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다.



 기록에 대한 공포를 떠나서 나는 나의 자격에도 의문이 너무나 많다. 나는 나의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 삶에 대해서 무엇을 기록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에겐 공포고 남에겐 읽을거리조차 되지 않을 일기를 써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장의 형태로 내 머릿속 안에서만 떠돌아다니는 기록을 무시하고... 무시하고 무시하면서 몇 년이 흘러 나는 글 쓰는 방법도 잊어버린 쓸모없는 이십대 중반이 되었다.


 문보영 시인은 ‘내 일상이 너무 평평해서 일기를 쓴다’고 이야기했다. 뭐가 너무 넘치고, 너무 다채로워서 쓰는 게 아니라 무언가 부족함을 느껴서 쓰는 것이 일기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다시 일기를 열심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작위적인 글이어도 그냥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포장을 곁들인 일기를 써내고 선생님 도장을 받던 시절처럼. 남들은 누가 자기 일기를 읽는 게 싫었다지만 나는 선생님이 내 일기를 읽고 도장을 찍어주시던 게 싫지 않았다. 그 생각은 어릴 때부터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했던 것 같다는 자학으로 곧바로 이어졌지만 어쨌든 그게 내가 소통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3줄 이상은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위인 영웅이 쓴 글에도 3줄 요약을 부탁하는 시대에 내 일기를 읽는 사람은 아마 나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평하고 부족한 내 삶에 대해서 기록할 것이다. 부정확하고 거짓되고 작위적인 일기를 쓸 것이다. 과장된 슬픔이나 희석된 기쁨을 글로 옮기면서 내가 이렇게나 사랑하고 미워하는 게 많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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