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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커트 Jun 15. 2021

<햄릿>의 여성 인물들

이 극의 남성 인물들; 햄릿, 선대 햄릿, 호레이쇼, 심지어는 햄릿과 대치하는 악인 클로디우스마저도 각자 확실한 내면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극 안에서 그 내면이 드러난다. 햄릿의 내면은 곧 극의 핵심이며, 악인 클로디우스는 독백(3막 3장)을 통해 그 안에서 충돌하는 양심과 죄의식에 대해 토로하고, 호레이쇼는 3막 2장을 포함하여 여러 번 햄릿의 대사를 통해 그 성품이 드러난다. 반면 여성 인물인 거트루드와 오필리아는 고뇌와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 아니라, 남성 인물들의 삶 속에 주변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사물, 혹은 영혼이 없는 껍데기와 같은 수동적 인물로 그려진다. 이 극은 거트루드를 악녀로 그리면서도 그녀 안의 고뇌, 혹은 그녀만의 욕망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오필리아는 어리고 아름답다는 사실 이외에는 부여 받은 특성 자체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녀 내면의 생각이나 마음이 극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그들은 <햄릿>이라는 서사에서 배제되며, 다양한 방식으로 남성 인물들에 의해 혐오당하고 대상화된다. 또한, 이러한 혐오와 대상화는 두 인물에게 가해지는 것을 넘어서 여성 전체로 확대되기도 한다. 


거트루드가 대상화되는 방식은 주로 그녀의 섹슈얼리티, 성적 욕망에 대한 햄릿의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거트루드를 대하는 햄릿의 태도는, 자기 아버지가 죽은 지 두 달 만에 재혼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를 뛰어넘는 뿌리깊은 경멸을 드러낸다. 3막 4장, 거트루드의 침실에서 그는 클로디우스와의 동침에 대해 경멸을 표현한다. 그는 ‘타락에 절어서 돼지우리 속에서 구애하고 아양떨며 역한 돼지우리 같은 침대에서 살라(enseamed bed, nasty sty)’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섹슈얼리티 자체에 대한 그의 혐오로 해석할 수 있는데, 똑같은 욕망에도 여성인 거트루드의 욕망에만 분노하며 이를 단속하려 하는 점이 다분히 여성혐오적이다. 실제로 그는 클로디우스를 증오하면서도 그 앞에서 그의 욕망을 단속하거나 그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햄릿은 이러한 자신의 경멸을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한다. 전 남편과의 의리를 지키지 못한 거트루드의 모습을 두고 그는 ‘약한 자여, 네 이름은 여자로다(frailty, thy name is woman, 1막 2장)’ 라고 말한다. 여성 개인의 결함을 집단 전체로 확대해서 해석하는, 전형적인 여성혐오적 사고방식이다. 


 오필리아가 대상화되는 방식은 여성혐오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오필리아는 딸로서 아버지에게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당한다(햄릿의 광증을 알아보는 도구). 레어티즈와 햄릿에게는 부당한 단속을 요구받는다. 달빛 아래 얼굴만 드러내도 정숙한 여인은 음탕한 여자가 된다는 이야기(1막 3장)를 들으며, 남성을 현혹하고 자손을 퍼뜨리지 말고 수녀원에나 가라는 모욕(3막 1장)을 당한다.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대상화하는 잘못된 행동을, 얼굴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덧붙여, 음탕한 여자는 나쁘다는 전제 자체도 비윤리적임)은 대표적인 여성 혐오이다. 햄릿은 또한 ‘여자는 꾸며야 한다’는 사회적 맥락을 제거한 채 그녀의 화장이 기독교적 윤리에 위배된다고 질책하며(3막 1장) 자신의 여성혐오를 정당화하는데, ‘여자들의 화장, 아양과 혀 짧은 소리’라고 여성 전체를 비난함으로써 또 한번 자신의 혐오를 여성 전체로 확대한다. 게다가 그는 광증을 연기하기 위해 무고한 오필리아에게 성희롱을 서슴지 않는다(3막 2장). 끝으로,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대상화당한다. 햄릿이 폴로니우스를 살해한 뒤, 보호해줄 남성 어른이 사라지자 결국 실성한 오필리아는 물에 빠지게 되고, 물에 빠져서까지 성적으로 대상화되며(그녀가 지니고 있던 꽃의 이름을 빌미로), 죽은 뒤에도 처녀성을 강요당한다(죽음보다 임신 여부를 더 중요한 화두로 다룸). 코르셋과 드레스 때문에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점마저, 그녀의 삶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했던 혐오와 대상화로 점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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