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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커트 Sep 12. 2020

사랑하는 한국소설

2018년-2019년

1.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문학동네, 2018)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관계와 정서를 아주 면밀하게, 또 철저히 여성의 눈으로 관찰하고 서술한 단편집이다.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모두 극적이거나 중대한 사건을 묘사하기보다는, 파편적인 경험 속에서 체험하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과는 모순되게 단편들 속 주인공들은 모두 크고 작은 폭력을 경험하고 관찰한다. 그 경험들은 모두 개별적인 것들임과 동시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필연적으로 개입하므로 공동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균열과 일상적인 폭력을 ‘사소하지 않다’고 단언함으로써 희망을 제시한다. 우리가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폭력을 발견하고 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균열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찰과 발화가 ‘무해한 사람’ 으로의 첫걸음일 것이다.


2. 파인 다이닝 (최은영, 황시운, 윤이형, 이은선, 김이환, 노희준, 서유미, 은행나무, 2018)

음식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일상을 관찰한 젊은 작가들의 단편을 ‘파인 다이닝’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매일매일 마주치는 음식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상상하고 관찰한 작가들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생존과 직결되고 인간관계를 연결하는 음식은 사실 그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 중 수록작 ‘승혜와 미오’는 비건 여자 친구와 동거하는 퀴어 ‘미오’의 밀푀유나베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소수자로서의 애환만을 납작하게 다루지 않고, 퀴어의 정체성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으로서의 갈등 또한 입체적으로 묘사하였다. ‘승혜와 미오’의 주인공들 뿐 아니라 수록된 단편들 모두, 쉽게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는 존재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발화자로서 ‘식탁 앞에’ 앉힌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3. 가만한 나날 (김세희, 민음사, 2019)

신혼 부부, 사회 초년생 등 젊은 세대의 다양한 초상을 여덟 편의 단편으로 묶었다. 이 책은 흔히 떠올리는 ‘소설 속 청춘’ 과는 다소 다른 얼굴들을 그리고 있다. 열정, 사랑, 순수함이 관습적인 청춘의 표상이라면 이 책의 청춘들은 좀 더 입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청년들이 어떻게 자기 삶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실망, 뿌리 깊은 자기혐오와 무력감을 체험하는지 철저한 관찰자이자 당사자로서 서술했다. 한때는 존경했으나 실망하게 된 선배, 부모와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 사회 속에서 마모되어 가는 지친 마음 등 청년들의 삶을 관통하는 정서와 이슈가 단편 여덟 편에 생생하게 녹아 있다. 세상을 바꾸기보단 당장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 것이 더 중요한 현재의 청년 세대가 스스로를 이해하기에도, 다른 세대가 그들을 이해하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책이다. 


4. 단순한 진심 (조해진, 민음사, 2019)

 프랑스로 해외 입양된 주인공 ‘문주’가 한국에서 친모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돌봄과 자애 등 기존의 모성 정치를 긍정하면서도, 혈연 중심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부역하지 않는 서사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한다. 혼자서 아이를 낳거나, 낳았으나 키우지 못했거나, 낳지 않은 아이를 돌봐 온 엄마들. 문주는 자신의 생모를 찾는 과정에서 그 엄마들의 역사를 알게 된다. 항상 남성 중심의 영웅 서사로 귀결되었던 역사의 현장 속에서, 그 엄마들과 다른 여성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연대했는지를. 낳기만 하면 초월적인 모성이 힘을 발휘하여 연약한 여성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 기존의 모성애 관념이었다. 진정한 모성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때로 검열하기도 하는 현 시점에, 연대와 인간애로서의 모성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책이다.


5. 대도시의 사랑법(박상영, 창비, 2019)

동성애자 남성 ‘영’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엮은 네 편의 연작소설이다. 네 작품 모두 기존의 순문학 소설과는 다소 다른 결로, 슬프고도 발랄하게, 무엇보다 솔직하게 쓰였다는 인상이 강하다. 소수자를 불행의 틀에 가두며 대상화하는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로 입체적인 삶과 사랑을 발화하는 책이기에 소중하다. 작품 속 주인공은 사랑에 대해 지치지 않고 질문한다. 사랑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해보았다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친구와의 수다 같기도 한 책이다. 사랑을 경험한 모두가 한번쯤 그렇듯 화자는 사랑 때문에 망가지고, 사랑을 혐오하면서도 사랑을 바란다. 또 그 지난한 과정을 지나오면서도 사랑을 믿는다. 세상이 규정하는 ‘정상적인 사랑’에 의문이 드는 모두가 또 한 번 사랑을 믿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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