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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이올렛 Oct 30. 2023

워킹맘 주재원의 현지 생활 정착기 3편–유치원 정하기


베이징에 부임했을 때 우리 아이들 나이가 6살, 3살이었다. 한국에서도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들이라 베이징에서도 바로 기관에 보낼 생각이었다. 1~2주 정도는 왕징 내 유치원들을 다 조사해서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한 곳 한 곳 연락해서 방문 상담하고 직접 방문하는 과정을 거쳤다. 왕징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들도 많았지만 나는 구분하지 않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도 같이 알아봤다. 한국인 운영 유치원 4곳, 중국인 운영 유치원 2곳, 이렇게 총 6곳을 방문하고 장단점을 고려해 결국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집 가까운 유치원으로 선택했었다.     


유치원을 정할 때 나의 기준은 대략 이랬다. 우선, 유치원 시설 및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왕징에 있는 유치원을 돌아보며 놀랬던 점은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 넓은 땅에 왜 이렇게 아이들 뛰어놀 공간이 코딱지만 한가 싶어질 정도로 유치원 내부가 너무 좁고 심지어 운동장을 갖춘 곳도 거의 없었다. 어떤 곳은 정말 작은 면적을 잘게 쪼개 써서 미로같이 만든 곳도 있었다. 아마도 베이징 임대료가 너무 높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차량 탑승 시간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면적도 넓고 커리큘럼도 내가 선호하는 쪽이라(예체능 위주) 거의 마음을 정했다가 차량 탑승 시간이 거의 1시간 가까이 된다는 정보를 얻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 집에서 직선거리로 10킬로도 안 되는데 베이징의 교통체증이 문제였다. 그곳은 베이징에서 가장 병목 현상이 심한 도로를 지나야 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도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마지막으로는 선생님들의 응대를 봤다. 중국 유치원 중에서 집과 직장 중간에 위치하고 자체 건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흙으로 된 운동장이 있는 쌍어 유치원(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유치원을 쌍어 유치원이라고 한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전화 연결이 늘 너무 어려웠고 선생님 응대가 사무적이다 못해 차갑게 느껴져서 이곳도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언어 학습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다 올 수 있는 곳을 선호했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응대 시 주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한 곳은 우리 집 옆 단지에 하는 한국인 운영 유치원이었다. 우선, 원장 선생님께서 베이징에서 아이들 키워 대학까지 입학시키신 분이라 베이징 내 학교 정보도 많았고 아이들 학습 경험도 잘 공유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베이징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치원을 운영하시는 분이라 신뢰가 갔다. 실제 방문 상담 때도 성심성의껏 대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정적으로는 3 살배기 둘째를 받아줄 유치원이 없었으나, 이 유치원에서는 별도 반을 만들어주셔서 둘째 아이가 1:1 케어를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정말 행운과 같은 조건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완벽하게 적응하던 무렵 코로나가 터져 3~4개월 정도의 짧은 유치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코로나 여파는 업종을 가리지 않았는데 특히 서비스업, 교육업에 미친 타격이 엄청났다. 왕징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인 운영 유치원들이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유치원도 결국 폐업했다. 큰애는 반년 백수 생활 끝에 국제학교에 입학했으나 문제는 둘째 애였다. 한국인 운영 유치원은 보낼만한 데가 없었고, 중국어 로컬 유치원은 단지 내에도 운영하는 곳이 있었으나 주위의 평가가 전혀 없는 곳이라 내키지 않았다. 중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쌍어 유치원은 수업료가 한국인 유치원의 거의 2~3배로 비싸 부담이었다. 베이징은 사교육비가 서울만큼 비쌌던 것 같다. 프랜차이즈식 대형 쌍어 유치원의 한 달 수업료는 3년 전인 당시에도 한화 2백만 원대였다. 그래도 정원이 꽉 차곤 했다. 예체능 교육은 특히 비쌌던 것 같다. 아이들 악기 개인 지도를 해주려고 알아보니 시간당 수업료가 보통 한화로 6~7만 원 정도 했고, 그 이상인 수업들도 많았다. 실제로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연간 사교육비가 우리 돈 1,800만 원에 육박한다고 하니 중국 정부가 2021년 7월 사교육 시장 단속 강화를 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반년 정도 백수 생활을 즐긴(?) 둘째는 운이 좋게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쌍어학원에 재입학할 수 있었다. 의외로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중국 아이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외국어 학습에 도움이 많이 됐고(특히 중국어가 자연스럽게 늘었다. 지금은 거의 다 까먹었지만….), 원장 선생님과의 소통은 한국어가 가능해 이점이 편했다. 질 좋은 커리큘럼에 나름 옥외 운동장까지 있어서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었고 매일 유치원에서 위챗으로 보내주는 아이들 사진들 보면서 오늘은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있어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 등원하는 뒷모습


어쨌든 유치원 정하고 다시 또 알아보는데 많은 에너지가 쓰이긴 했으나, 베이징에서 운이 좋게 좋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있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었다. 아이가 아침마다 유치원 가기 싫다고 힘들어한 적이 하루도 없었던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가끔씩 생각보다 애가 영어와 중국어가 빨리 늘지 않아 좀 아쉬웠던 때도 있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고 생각했다. 낯선 땅에서 모르는 언어로 사회생활 해야 하는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떼 안 쓰고 즐겁게 유치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내 맘대로 상황이 잘 받쳐주지 않으면 스트레스받고 자아비판을 혹독하게 하는 편인데, 아이들과 해외 생활을 하면서 뾰족한 구석들이 둥그스름해지는 것을 가끔 느낀다. 이 또한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생존 본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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