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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이올렛 Apr 29. 2024

월말 부부

베이징 주재 생활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장점은 한국과의 직항 노선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우한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땐 직항 노선이 주 4회밖에 없어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직항이 없는 날이나 시간대가 잘 안 맞는 날은 상하이나 칭다오를 경유해 오고 가기도 했는데, 중국 국내선의 경우 연착이 빈번해 경유 비행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베이징은 인천과 김포 등을 오가는 직항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있고 가격도 저렴해 남편이 베이징으로 오기 매우 수월했다.     


보통 남편은 3~4주마다 한 번씩 베이징에 왔다. 금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곤 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왕징이라는 지역은 베이징 쇼우두(首都) 공항과도 택시로 30분 내외거리였다. 공항으로 남편을 마중을 나가는 길은 언제나 설렜고, 아이들이 나보다 더 들뜨곤 했다. 공항 게이트에서 아빠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아빠의 모습이 보이면 단숨에 달려가 안기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선 아빠가 캐리어에 어떤 선물을 담아왔을지 기대를 가득 품고 아빠 가방 속을 샅샅이 뒤지는 애들의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공항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

남편은 다행히도 매달 중국행 비행기를 타고 식구들을 보러 오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싫어하진 않았다. 그도 혼자서 열심히 일하고 지내다가 한 달에 한 번씩 바깥바람도 쐬고 그리움을 가득 안고 중국으로 와 가족들로부터 충전을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곤 했다. 나 또한 한 달 내내 일과 육아로 지치고 외로울 때쯤 남편이 와서 그동안 못했던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에 늘 감사하게 생각했다. 먼 지역에서 근무했다면 남편과 월말 부부가 아니라 반기 말 부부, 연말 부부로 지내야 했으니까. 

아빠의 공항 출영송에 익숙해진 둘째

    

큰아이는 처음엔 한 달 만에 본 아빠와 헤어지고 돌아오면 많이 심란해했다. 어느 날은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큰 아이가 “아빠 잘 들어갔겠지.? 엄마, 구름만 봐도 아빠 생각이나…”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려 내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주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고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면서 아이들이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들도 이내 적응했다.

     

돌이켜보면 이때 우리 부부 관계가 서울에서 늘 같이 있을 때보다도 더 애틋했던 것 같다. 나는 나대로 남편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나에게 불평 한마디 늘어놓지 않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남편은 혼자서 외국에 나가 일과 육아를 다 해내는 아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언제나 응원해 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월말 부부라는 생활방식을 안정되게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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