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구두가 죄 망가졌다.
3월 24일
퇴근 후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남아있던 마지막 한 개까지 기어코 뒷줄이 끊어졌다.
그날이 내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
그날 나는 회사에서 짤렸다.
한 달 전, 언론 매체에 인턴 취재기자로 취직을 했다. 면접을 보던 날 부사장님은 말씀하셨다. 한 달 동안 회사는 예란씨를 평가하고, 예란씨도 회사를 평가하는 기간이 될 거라고. 그 평가를 마친 후 우리는 예란씨와 함께할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나는 수긍했다.
자신 있었으므로.
그런데 이틀 전, 국장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셨다. 그리고 말했지. 예란씨는 기자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기자로서의 기질과 성질, 그리고 깡이 없다고.
납득할 수 없었다.
허나 수긍했다.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하고 내게 통보하고 있었으므로.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수긍할 수밖에.
실은 회사에 들어오기 전 서울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광고대행사 언론홍보쪽으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어쩌면 거기 들어갔으면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회사에 들어간 걸 후회하느냐고?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나의 사수님 덕분이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사수로 말할 것 같으면 프로패셔널하고 똑 소리 나게 일하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떨 때는 나를 긴장하게, 어떨 때는 무장해제 시키던 사람. 일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배울게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나를 감동시켰던 부분은 바로 그가 ‘기회’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회사를 거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대다수는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잘못된 걸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 내가 쓴 글이 상사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들은 내게 어떤 방향으로 다시 써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다음날이 되면 내가 썼던 글이 쓱 고쳐져 있었을 뿐이다. 속이 쓰렸다. 내가 상사에게 좆같은 보노보노를 드렸다는 자책감에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고, 내가 쓴 글보다 상사가 쓴 글이 못나 보여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사수는 내 글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내게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하나하나 알려주었고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게 좋았다. 내 손으로 직접 글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웠다. 그는 내게 스스로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 잘못된 지점을 바로잡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것은 글과 나 자신을 모두 존중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혼이 나면서도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내 마음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이건 정말이지 만났던 사수 중에 처음이었다. 한날은 그가 크게 꾸짖은 적이 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었기에 마음속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얘기가 다 끝나자 그가 내 생각을 물었다. 기자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혹시 내게 말하고 싶은 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느냐고.
이전엔 그런 적이 없었다. 상사들은 항상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게 나를 위한 것이든 자신을 위한 것이든 한껏 쓴 소리를 한 뒤에는 아무도 내 생각을 물어봐주지 않았다. 왜 그랬느냐고,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거냐고. 그랬으므로 침묵을 지키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고 서글픈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오르던 순간에도 이를 꽉 물고 그 자리를, 시간을 견딜 수밖에.
그런데 그가 그리 물어봐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마음을 열고 내 안에 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해한다.
내가 너를 이해한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상사에게가 아니라, 한 인간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서우면 무섭다고,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이런 저런 부분이 걱정된다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그에게는 털어 놓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가만 들어주었고 함께 방법을 모색했다. 그 모습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더 성장하고 싶게, 더 잘하고 싶게, 그에게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해 보이는 옷을 걸치고 있던 나를 위해 직접 옷 수선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색하던 각 잡힌 코트가, 자켓이, 구두가 점점 편해졌다. ‘기자님’이라는 호칭이, 내가 지금 있는 자리가 점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게 일종의 ‘어른다운 어른’의 본을 제시해준 사람인 것이다. 나도 훗날 누군가의 사수가 된다면 저렇게 되어야지, 저렇게 기회를 주는 상사가 돼야지, 절대 회사에서 혼자 곪아 터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말아야지, 다짐하게 만드는.
그래서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런 어른을 만났고, 그가 되돌려준 기회를 붙잡아 한 달 동안 온 힘을 다해 성장했고, 나로 하여금 다시 그런 어른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아쉽긴 하지만 안타깝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다. 그러므로 내일 그를 만나 저녁을 먹을 때 말할 것이다. 나는 지금 편안하다고. 사수님 덕분에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우리 또 만나자고. 계속 좋은 인연을, 기회를 이어가자고 말이다.
※위 사진도 사수님이 찍어주신 거다. 사진도 참 잘찍는 우리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