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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Apr 04. 2023

있잖아, 나는 계속
계약직이라도 상관없어


“선생님, 전 언제쯤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정신과 의사선생님께 하소연을 했다. 남들은 다 적당한 직장 찾아서 적당히 밥벌이 하고 사는 것 같은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서른이 될 때까지 계약직만 전전했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일 년. 벌써 4개의 직장을 거쳐 왔다. 계약직이었으므로 당연히 연봉협상 따위는 없었고 계약기간이 끝나갈 때쯤엔 또 뭘 먹고 살아야 하나 전전긍긍했다.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기 위해 노력했고 끝없이 자격증을 갱신해야 했다. 그럼에도 주위에서 어느새 대리를 달았다더라, 진급을 했다더라, 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쩔 수 없이 기가 죽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산지와는 관계없이. 늘 불안정하고 초조한 생활의 연속. 그러므로 이제는 계약직이라면 넌더리가 난다고.


그런데 어느 잠 못 드는 밤, 친구가 카톡으로 물어왔다.

“예란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나는 짧게 고민한 후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에세이작가로 죽고 싶어. 내 묘비명엔 에세이 작가라고 기록되고 싶어”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에세이 작가로 죽을 수 있을까. 직장을 고를 때도, 직장에서 짤릴 때도 그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로 귀결됐다.


그저 에세이를 쓰는 것.      

에세이 작가로 살고 싶다면,

에세이 작가로서 죽고 싶다면,

답은 하나다. 

계속 에세이를 쓰면 된다.


언젠가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일본에 한 말단 공무원이 있었는데, 그는 일평생 일제강점기 시절 쓰였던 한국 교과서를 모집해왔다고. 낮에는 아무 의미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말단 공무원으로, 퇴근 후엔 전국 곳곳을 누비며 한국교과서를 모집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그는 생을 마치는 날 자신이 모은 자료를 한국 역사박물관에 기부하고 표창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묘비명에는 ‘역사사료학자’라고 기록되었다고. 9급 공무원이 아니라, 역사사료학자로.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생각한다. 아, 중요한 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니구나. 계약직이든, 졍규직이든, 회사에 계속 다니든, 짤리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중요한 건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거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에세이를 계속 쓴다면, 내 묘비명에는 에세이작가로 기록되겠구나.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상 나는 에세이 작가인거야. 반드시 내 묘비명에는 그렇게 쓰일 거야.


이로써 내 불안정한 생활 속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계속 쓸 거라는 것. 계속 써야 한다는 것. 회사에 나가지 않는 지금, 오늘은 뭘 할까? 가 아니라 오늘은 뭘 읽고 뭘 쓸 까? 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매일 아침 일어나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모니터를 켜고 하얀 백지장을 마주하는 것이라는 것.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키보드를 두들기기로 마음먹는다. 새벽 여섯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빈속에 커피를 들이 키고 모니터를 킨다. 오늘은 무얼 쓸까, 어떤 글을 남겨 내 정체성을 단단히 할까. 확실한 건 오늘 아침에 쓴 이 글이 후에 내 묘비명에 쓰일 글자를 더욱 선명하게 해주겠지. 이 한 장의 에세이들이 모여 한 글자 한 글자 더 깊이 새겨지도록 만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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