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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너드 EngNerd Mar 15. 2021

영화에서 거인은 왜 느리게 움직일까? - 1편

거인의 존재와 신체 변화

by 엥너드 EngNerd

#거인 #앤트맨 #스케일링


이 글은 유튜버 '사물궁이 잡학지식'에게 제공한 원고를 다듬어 작성한 것입니다.

(거인이 되면 왜 느리게 움직일까? 편)




우리 몸이 커져서 거인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나 만화에서는 이 소재를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작자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거인이 될 수 있는 이유 혹은 거인의 존재를 그럴듯하게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앤트맨(Ant-Man)'을 보면 앤트맨이 자유자재로 몸의 크기를 변화시키면서 현란한 액션을 선보입니다. 핌 입자(Pym particle)가 원자핵과 전자 간의 간격을 조절하여 몸의 크기를 수축 또는 팽창시킨다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인이 되는 것이 단순히 크기만 커지는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앤트맨처럼 거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영화에서는 거인의 움직임을 느리게 묘사하는데, 왜 그럴까요?


자이언트 앤트맨의 모습.




거인의 존재


물결(~)은 비례한다는 뜻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논하였습니다. 그는 1638년 'Two New Sciences' 라는 책을 통해 스케일링(scaling) 또는 제곱-세제곱 법칙(square-cube law)으로 불리는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정육면체가 있을 때, 한 변의 길이가 2배 길어지면 표면적은 4(=2^2)배, 부피는 8(=2^3)배 커집니다. 만약 물체의 밀도(=질량/부피)는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부피가 증가한 만큼 질량, 즉 무게도 8배 증가합니다.


자, 그럼 무게 80kg, 키 180 cm(=1.8 m)의 앤트맨이 18 m 만큼 커졌다고 해봅시다. 키가 무려 10배 커진 것입니다. 그러면 스케일링에 따라 무게는 1000(=10^3)배 증가하여 무려 80톤이 됩니다. 이때 하중을 지지하는 다리 입장에서 바라보면, 다리 위 상체의 무게는 1000배나 증가했는데, 다리의 단면적은 100(=10^2)배 밖에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즉, 다리의 단위면적당 견디던 무게는 전과 비교하여 10배 증가한 것입니다. 마치 80 kg의 앤트맨이 800 kg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무게를 다리가 잘 지탱할 수 있을까요? 헐크라도 힘들지 않을까요? 이처럼 스케일링을 고려하면, 신체가 가질 수 있는 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엔 다른 가정을 해봅시다. 동일한 밀도가 아니라, 동일한 무게를 가진다고 말이죠. 같은 무게에 부피만 커지므로, 밀도는 약 1000 kg/m^3 (사람 평균 밀도) 에서 1/1000배인 1 kg/m^3 이 됩니다. 몸 주변의 공기 밀도가 약 1.2 kg/m^3 이므로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몸은 풍선 마냥 공기 중에 떠있게 됩니다. 발을 땅에 제대로 붙이기도 힘들게 되겠죠.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때의 변화는 어떨까요? 우리 몸이 성장할 때 뼈는 신체 구조의 변화에 맞춰 몸을 지지할 수 있도록 단단해집니다. 즉, 앞서 가정한 '기존의 형태를 유지한 채 온몸이 비례하여 성장한다'는 전제를 따르지 않습니다.


위의 문제로 거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앤트맨이 뛰어난 기술로 거인이 된다고 가정해봅시다. 일단 다음과 같이 가정을 해보죠.


무게 80 kg, 키 180 cm의 앤트맨은 무게 80톤, 키 18 m의 자이언트 앤트맨으로 변신할 수 있다. 그의 뼈, 근육, 장기 등도 강화되어 늘어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이제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알아봅시다.




신체 변화


우리 몸 안에는 명령을 전달하는 뉴런 신경세포가 있습니다. 뉴런은 세포막 사이의 나트륨(Na), 칼륨(K) 이온의 농도 차이를 통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합니다. 이 신경 전달 속도는 평균 약 100 m/s에 달하죠. 그런데 거인이 되어서도 신경 전달 원리가 같다면 몸 길이가 10배 길어졌으므로 같은 명령을 10배 늦게 전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앤트맨이 머릿 속으로 판단하고 다리를 움직이는데 0.1초가 걸렸다면, 자이언트 앤트맨은 10배 느린 1초가 걸리게 되죠. 심지어 뇌에서 생각하는 것 조차도 전기적 신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기에 앤트맨의 0.1초를 자이언트 앤트맨은 1초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뇌피셜입니다).


혈액 순환도 달라질 겁니다. 혈액을 순환시키는 심장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근육의 힘은 단면적에 비례하므로 자이언트 앤트맨의 심장은 100배 세집니다. 그렇다면 혈액순환이 원활히 될 수 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혈액이 흐르는 혈관을 단순한 파이프 형태로 가정하고 혈관의 지름이 10배 커졌다고 생각해봅시다. 혈액과 같이 점성이 있는 유체가 관을 흐를 때는 관 내부 벽면과의 마찰 저항이 존재하는데, 이는 표면적에 비례하여 100(10^2)배 증가합니다. 뿐만 아니라 높이에 따른 압력 변화 (높이에 비례), 모세혈관의 단면적 증가에 따른 압력 변화 등을 고려하면 혈액순환은 오히려 더 힘들 것입니다.


그럼 대사율은 어떨까요?  매우 작은 박테리아부터 코끼리까지 각종 생물체의 대사율(metabolic rate)을 조사한 결과, 대사율은 체중(body mass)의 3/4제곱에 비례합니다. 이것을 클라이버 법칙(Kleiber's law)이라고 합니다거인에게 클라이버 법칙을 적용하면 자이언트 앤트맨은 178배( (10^3)^(3/4) ) 높은 대사율을 보일 것입니다. 대사율이 높다는 것은 몸에서 발생하는 열이 그만큼 많다는 것인데, 이 중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열은 표면적에 비례합니다. 즉, 거인의 경우 표면적은 100배 증가한 반면 신체 내 열은 178배 증가하였으므로,  몸 안에 열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열을 방출하기 위해서는 코끼리처럼 피부가 쭈글쭈글하거나, 귀가 커지거나, 개처럼 헐떡거리거나, 혹은 땀을 많이 흘려야 할겁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목소리 또한 변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는 성대 사이로 배출되는 공기에 의해 발생하는데, 성대의 열린 부위, 성대의 두께 등에 따라서 목소리의 주파수가 달라집니다. 보통 남자의 목소리(보통 80~180Hz)가 어린이와 여자의 목소리(보통 165~255Hz)보다 낮은 이유는 성대의 열린 부위가 넓어서 공기의 흐름이 느리기 때문이죠. 거인이 된다면 성대가 더 넓어지므로 더욱 저음의 목소리를 가질텐데, 만일 목소리의 주파수가 20Hz보다 낮아지면 사람이 거의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편-거인의 걸음 속도-에서 계속됩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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