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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너드 EngNerd Mar 22. 2021

영화에서 거인은 왜 느리게 움직일까? - 2편

거인의 걸음 속도

by 엥너드 EngNerd

#거인 #앤트맨 #스케일링 #상사법칙 #차원해석 #무차원수 #프루드수


이 글은 유튜버 '사물궁이 잡학지식'에게 제공한 원고를 다듬어 작성한 것입니다.

(거인이 되면 왜 느리게 움직일까? 편)






이전 편에서 18 m 크기의 자이언트 앤트맨과 같은 거인의 존재와 신체 변화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거인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자이언트 앤트맨은 앤트맨보다 더 빠릿빠릿할까요? 아니면 나무늘보마냥 느릿느릿할까요? 여기서는 가장 대표적인 동작인 걸음걸이에 초점을 두고 알아볼게요.






어떻게 구할까?


영화 속 자이언트 앤트맨과 같은 거인은 실제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1편 참고). 하지만 그럼에도, 거인의 걸음 속도를 예측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두 가지 방법이 떠오릅니다.   


1. 컴퓨터로 거인의 신체 정보를 입력하고 걷는 동작을 시뮬레이션하여 속도를 계산한다.

2. 현존하는 동물들로부터 신체 정보와 걸음 속도의 상관관계를 얻은 후, 거인의 걸음 속도를 유추한다.


신체 모델에 쓰인 근육의 일부 [Anderson & Pandy (2001)]

방법 1은 거인의 몸무게, 근육 세기, 뼈 크기, 몸동작의 가동 범위 등의 신체 정보를 가지고 걷는 동작을 구현했을 때 거인이 어떻게 움직일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알아보는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예측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걸음걸이는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메커니즘입니다. 일례로 Anderson & Pandy (2001)는 걸음걸이(gait)를 분석하기 위해 23개의 자유도(degree of freedom)를 가지고 54개의 근육으로 움직이는 신체를 모델링하였습니다. 단순히 다리만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여도 꽤 많은 움직임과 근육이 사용되고 있죠. 또한 상상에 기반하여 거인 다리 근육의 힘과 뼈 및 관절의 무게 등을 설정하다 보면 다소 인위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복잡한 메커니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방법 2입니다. 바로 상사(similarity)법칙과 무차원수(dimensionless number)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변수들 중에서 필요한 물리량만 쏙 뽑아서 그럴듯하게(?) 공학적 해석을 할 수 있는 방법이죠. 이 방법을 이용하면 직접 실험하기 어려운 거대한 비행기나 선박 또는 자동차의 성능도 아담한 실험실에서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볼게요.


- Anderson, F. C., & Pandy, M. G. (2001). Dynamic optimization of human walking. J. Biomech. Eng., 123(5), 381-390.






상사법칙 그리고 무차원수


상사법칙은 중등수학(또는 유클리드 기하학 Euclid's geometry)에서 이미 다룬 적 있습니다. 바로 닮은꼴입니다. 어떠한 형상(원형, prototype)이 있고 그 형상이 그대로 확대 또는 축소된 형상(모형, model)이 있을 때, 우리는 두 형상(원형과 모형)이 서로 닮았다고 부르죠. 이를 기하학적 상사(geometric similarity)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꼭 형상만 닮을까요? 질량이나 힘은 어떨까요? 가능합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닮은꼴을 배울 때 길이는 비율에 따라 변화하는 대신 '이것'은 같다고 했었죠? 네, '각도'입니다. 그럼 각도와 길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차원(dimension)'입니다 [1]. 미터[m]나 밀리미터[mm]와 같이 단위(unit)를 가진 길이와 다르게 각도는 단위가 없는 무차원수죠. 즉, 원형과 모형에서 각도라는 무차원수가 동일할 때 기하학적 상사를 만족한다는 개념을 확장해봅시다. 질량이나 힘 등의 물리량들도 무차원수로 치환했을 때 원형과 모형에서 그 값이 같다면 상사를 만족한다고 볼 수 있겠죠 [2].


이렇게 무차원수를 비교하였을 때 원형과 모형의 움직임이 서로 닮은꼴이라면 운동학적 상사(kinematic similarity), 거기에다 원형과 모형에 작용하는 힘까지 서로 닮은꼴이라면 역학적 상사(dynamic similarity)라고 부릅니다.


[1] 차원은 물리량을 나타내는 척도로서 질량(mass), 길이(length), 시간(time), 온도(temperature), 전류(electric current), 광량(amount of light), 물질양(amount of mass) 등이 있습니다.
[2] 어떤 무차원수가 중요할지는 차원해석(dimensional analysis)을 통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상사법칙은 물리학, 공학 등에서 비교적 최근에 정립된 방법입니다. 1914년에 물리학자 에드거 버킹엄(Edgar Buckingham)이 <Physical review>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차원이 있는 수들로부터 상사법칙에 필요한 무차원수 사이의 관계식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제시(최초는 아니지만)하였고, 이후 버킹엄의 파이 법칙(Buckingham's theorem 또는 Buckingham π theorem)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Buckingham, E. (1914). On physically similar systems; illustrations of the use of dimensional equations. Physical review, 4(4), 345.

- Sterrett, S. G. (2009). Similarity and dimensional analysis. In Philosophy of technology and engineering sciences (pp. 799-823). North-Holland.






거인 대신 공룡의 걸음 속도는?


자, 그럼 상사법칙과 무차원수를 거인의 걸음 속도에 적용해보려고 해요. 그런데 혹시 공룡은 얼마나 빠를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공룡도 거인만큼이나 거대하기 때문에 공룡의 걸음 속도를 안다면 거인의 걸음 속도를 예측하는데 꽤 도움이 되겠죠. 놀랍게도 이와 관련된 논문이 있습니다. 바로 1976년 <네이처(Nature)> 저널에 게재된 맥네일 알렉산더(R. McNeil Alexander)의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상사법칙과 무차원수를 이용해 공룡의 걸음 속도를 계산합니다.


알렉산더는 현존하는 동물들로부터 걸음 속도에 대한 법칙을 찾아 공룡에 대입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쥐, 말, 사람 등의 동물들의 걸음 속도, 보폭 길이, 몸 크기 등의 변수들로부터 역학적 상사를 만족하는 무차원수들의 관계식이 존재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프루드 수(Froude number; Fr)라는 무차원수였습니다. 프루드 수는 u^2/gl로 표현되며, 중력(gravity) 대비 관성(inertia)의 크기를 뜻합니다.

프루드 수 정의 (u: 속도, g: 중력 가속도, l: 특성 길이; 선박의 경우 선체 길이)
다리 길이와 보폭, 걸음 속도


이를 동물의 걸음에 적용한다면 특성 길이(l)를 다리 길이(h; 발바닥부터 엉덩이까지의 높이)로 하여 u^2/gh가 됩니다.


알렉산더는 역학적 상사에 따라 어떤 두 동물이 같은 프루드 수를 가진다면 상대보폭(λ/h; 다리 길이(h)에 대한 보폭(λ))도 유사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쥐, 말, 코끼리, 타조, 사람의 신체 및 걸음 정보로부터 프루드 수-상대보폭 그래프를 그린 후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프루드 수 - 상대보폭 그래프 [Alexander (1976)]
상대보폭과 프루드 수의 관계식


위 그래프는 로그 좌표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기울기가 일정(=0.3)한 직선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위 식을 걸음 속도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걸음 속도 식


즉, 보폭과 다리 길이를 안다면 그 동물의 걸음 속도를 예측할 수 있으며, 공룡 뼈 화석과 발자국 화석을 토대로 공룡의 걸음 속도도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영국 런던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부터 8마리의 공룡에 대한 정보를 얻어 위 식을 적용하였고, 공룡의 추정 걸음 속도가 약 1~3.6 m/s (3.6~13 km/h)이라고 밝혔습니다. 거대한 공룡임에도 걷는 속도는 예상외로 인간이 걷거나(평균 5 km/h) 달리는(평균 10 km/h) 속도와 비슷하죠.


공룡의 추정 걸음 속도 [Alexander (1976)]


- Alexander, R. M. (1976). Estimates of speeds of dinosaurs. Nature, 261(5556), 129-130.






왜 느리게 걸을까?


공룡은 인간보다 훨씬 몸집이 큰데 왜 걸음 속도는 비슷할까요? 걸음을 역학적으로 해석해보면, 골반을 축으로 다리가 회전하는 동시에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근육 등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스케일링에 따르면 몸집이 커질 경우, 다리 무게는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하는데 비해, 근력은 근육의 단면적에 비례하므로 길이의 제곱 밖에 증가하지 못합니다.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져 커지기 전과 같은 속도로 다리를 회전하기 어려워지죠. 게다가 무거워진 몸집 때문에 걸을 때 다리에 가해지는 하중이 커짐에 따라 걸을 때 자세의 안정성 및 다리의 지탱 능력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거대한 몸집의 공룡은 느리게 걸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코끼리가 느리게 걷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몸집이 거대한 거인도 인간과 동일한 속도로 움직인다면 우리 눈에는 거인이 마치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 EngN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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