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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10. 2021

<내 사랑>

how I ever thoughtyou weren't perfect.


로맨스보다 눈이 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모드 루이스의 삶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누구와 어디서 심지어 몇 시쯤 볼 건지도 미리 정해놓고 보는 편이다. 개봉작이야 개봉 후에 언제 내려갈지 모르니 맞춰서 보기 어렵지만 넷플릭스나 왓챠에 있는 영화들은 보려고 했으나 시기를 놓쳐 보지 못한 작품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아껴둔 작품들을 오랫동안 묵혀놓고 하나씩 꺼내 보곤 한다. 영화 <내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개봉작이지만 당시 홍보의 부족이었는지 영화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고, 넷플릭스에 올라오고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발견한 후에도 꽤 오래 아껴두고 보게 되었는데... 사실 제목과 예고편만 보고는 '평범한 서양식 멜로'겠거니 생각했다. 그냥 서양 감성에 알맞은 적당히 분위기 예쁘고 뻔한 내용의 그런 영화 말이다. 그럼에도 보았던 이유는 포스터에서만 봐도 그렇듯, 꽤나 달달한 분위기가 사람을 사로잡기에는 딱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용한 새벽에 영화를 틀어서 봤는데 생각보다 꽤 묵직한 이야기여서 한동안 기분이 이상했다.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알려는 주고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우선  <노트북>, <이프 온리> 같은 달달한 서양식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게 좋다. 영화 자체가 로맨스라는 장르보다는 '모드 루이스'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룬 전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스터의 색감이나 제목에 이끌려 영화를 골랐겠지만 아쉽게도 따뜻하고 정분 넘치는 로맨스 영화는 분명 아니다. 사실 영화의 원제는 <Maudie>이다. 바로 영화 주인공인 모드 루이스(샐리 호킨스 분)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 사랑> 같은 제목은 완전히 오역인 셈이다. 영화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한 사람들은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달달한 로맨스 한 편 같은 게 아니라 캐나다의 실존 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에 가까운 내용이다. 물론, 그의 남편 에버렛 루이스(에단 호크 분)가 주연 인물로 함께 등장해 이런저런 케미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영화 내내 주요 초점은 모드 루이스에게만 맞춰져 있다. 사실 비중으로만 따지자면 후반부를 제외하곤 에버렛 루이스의 역할도 그리 많지 않다. 영화 내 전개를 위한 장치로 사용되긴 하지만, 완전한 주연이라고 보긴 조금 어렵다. 때문에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라고 보기 완전히 어렵다.




영화 상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주인공 그 자체의 모습이다. 어딘가 불편한 걸음으로, 불편한 몸짓을 보이는 그녀 모드 루이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루게릭 병 때문에 관절염을 심하게 앓아 부모에게 버림받았지만, 순박하고 자유로운 그림으로 캐나다의 가장 유명한 민속 예술가가 된 인물이다. 실존인물이고, 영화 내에 나왔던 그림도 모두 그녀의 그림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런 전기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실존 인물 당사자가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감탄스럽다는 점이다. 영화 속 모드 루이스의 인생은 굉장히 단편적이지만 백 스토리 활용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왔는지 잘 드러낸다. 가족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녀의 유년기를 보지 않아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할 수 있게 만들듯이 말이다. 




영화의 내용을 압도할 만큼 아름다운 것은 바로 영화의 배경과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영상미다.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영화의 전체적인 풍경은 내용 자체를 미화할 만큼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에이슬링 월쉬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영화 전반적인 시간이 되어주는 감성적인 사계절을 영상에 담아냈고, 캐나다 자연 풍경 그대로를 스크린에 옮겨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영상미라고 생각하는데 <내 사랑>은 영화 속 아름다운 여백을 통해 끊임없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같은 미사여구 보단 '순간을 아름답게 만드는'에 가까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저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 사랑>은 마냥 아름답고 낭만적이게 포장된 영화는 아닌 듯하다. 마음 깊숙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불편함도 있고, 폭력의 행위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감성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보이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전개 때문이다. 물론 후반부에는 괜한 감동 신파 요소가 삽입되어 꽤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둘만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는 전개 자체의 큰 갈등이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표현된 사건들도 생각보다 부드럽게 흘려보낸다. 눈물을 쏟고, 분노하지 않고 흐르듯이 엔딩으로 인도한다. 그런 소소함에서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마음속 깊숙이 밀려들어온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이유를 좀 더 디테일하게 짚어보자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사건의 발달들이 대부분 굉장히 폭력적이고 차갑다는 점이었다. 모드의 생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그녀를 좀 더 초라하게 만들어야 했었지만, 영화 초반부에 보이는 남편의 폭력적인 태도와 언행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극 후반에 자신의 아이를 보러 가는 모드의 모습은 뭐랄까, 불편한 신파의 그림이랄까. 충분히 낭만적인 그림으로도 극의 감정을 이끌어 올릴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불편한 것도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라면 높이 평가하고 싶다. 사랑이 아닌 필요에서 시작된 둘의 사랑은 분명 거칠다. 분명, 기존 로맨스 영화가 보여주는 마음의 감정이랑은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진심을 통해 불완전함을 증명해나가는 과정에서 둘의 사랑은 순수하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싫은 티를 내는 사람들처럼, 불편하다는 사실을 통해 사랑을 입증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사랑의 표현 방법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건 부정하고 싶다. 관객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는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시에, 이러한 근본의 부재는 다른 누군가의 부재로 채워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았다. 상처를 가졌기에 불완전한 주인공 둘 은 완전한 부재를 통해 서로의 진심을 증명한다. 몸이 불편하지만 감정표현에 익숙했던 그녀와, 성한 몸을 가졌지만 감정표현이 서툴렀던 그의 모습이 교차되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누구나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건 영화 속 주인공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 자체일 수도 있고, 불완전한 내면일 수도 있다. 혐오와 배제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불편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애틋해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부재를 가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가치 있다. 




'I was loved, Ev', 사랑은 때론 현재에 진행되지 않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아름답게 조명받기도 한다. 그걸 지금 당장 깨우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깨닫는 순간이 오면 그것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드가 떠나간 뒤에도 에버렛의 삶은 여전히 이어진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그녀의 그림을 한 데 모으는 에버렛의 모습은 뭐랄까 씁쓸하면서도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없지만, 그녀가 그려놓은 예쁜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감히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전개가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무채색으로 지어졌던 집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던 것처럼. 꽃과 나비, 아름다운 그림으로로 에버렛의 삶을 가득 채워주었던 모드. 죽음이 갈라놓는 이별 앞에 선 순간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낭만적인 사랑인가. 




<내 사랑> 무엇보다 제목이 아쉬웠고,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남게 만들지만 먹먹한 감정이 불편함을 감추는 묘한 영화였다. 사실, 처음 보고 난 뒤에는 리뷰를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큼 아름답고 좋은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를 쓴 건, 실존했던 인물 모드 루이스 그녀의 삶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 속 흑백으로 비치는 그녀의 삶을 건너서 본다는 게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메인 클라이맥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의 스토리와 전개를 벗어나더라도 영상미와 색으로 표현된 그녀의 선한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단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다. 기존 로맨스 영화가 보여주던 진부한 사랑의 표현 방식에 지쳤다면, 흑백 세상 속 여러 가지 색으로 채워나가는 이들의 사랑을 보는 걸 추천해주고 싶다. 




사진 출처 : <Maudie>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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