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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r 09. 2021

<소울>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당신의 인생의 불꽃을 기억하기 위해 픽사가 준비한 선물


직장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이전처럼 영화를 볼 수가 없어졌다. 퇴근 후의 일상이 아주 짧기 때문에, 그 안에 온 마음을 다해 영화를 보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혹여, 주말에 여유가 생긴다고 해도 다른 일을 하기 바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한동안 영화관 가기를 굉장히 어려워했었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마음에 드는 영화가 개봉하지 않은 것도 큰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서 오랜만에 영화관에 들렀다. 픽사/디즈니의 작품 <코코>, <인사이드 아웃>을 너무 재밌게 봤기 때문에 이 영화도 놓칠 수가 없었다. <소울> 제목만으로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영화, 디즈니와 픽사가 다시 한번 내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소울>은 그저 그런 감동적인 영화라기보다, 스크린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오프닝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나와 같은 또래의 친구들 중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당장 영화관에 가라고 티켓을 쥐어주고 싶다.




'뻔하겠지', 다른 영화에 이런 말을 한다면 악평에 가깝지만 디즈니와 픽사 특유의 매력은 그런 뻔한 맛에서 나오니까 좋은 평가라고 해야 할까. <소울>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픽사의 영화감독 '피트 닥터'의 애니메이션답게 말이다. 앞서 언급했던, 픽사의 작품 <인사이드 아웃>에서 감정을 의인화시켜 다룬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봤었던 나로서, <소울> 또한 그런 작품 중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소울>은 삶과 죽음에 관한 좀 더 철학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듯했다. 이전에 사후세계를 다루었던 <코코>가 아이들 어른들 모두 편하게 보는 작품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좀 더 어른들에게 가까이 닿아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온 뒤 소감은 '이거 진짜 애들 영화가 아니다'라는 생각.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이번만큼 이야기가 다르게 느껴질 작품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높은 평점을 주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한 전유물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어른들에게 어필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픽사의 끊임없는 상상력은 현대 시대와 맞물려 알맞게 작용한다.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고통의 시기에 <소울>이라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무서울 정도로 직접적이다.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소재를 이토록 매끄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놀랍다. 참고로, 이 영화에도 픽사 특유의 이스터 에그가 참 많으니 찾아보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큰 재미겠다. <소울>이 이번 픽사의 작품 중 23번째라는 데서 주인공의 이름 22가 유래했다는 것이 재미있듯이 말이다.




기존에 픽사가 보여주던 색깔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주인공부터 굉장히 사실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시끄러운 뉴욕에 뮤지션, 기존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사실적인 인물 묘사가 주는 몰입도가 굉장히 컸다. 주인공 조 가드너와 22가 주는 대비감도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었던 것 같다. 삶의 목적과 목표를 뚜렷이 가지고 꿈이 운명이라 믿고 살아가는 조와 이름만 대면 모두 알 수 있는 멘토들도 포기하고 비관론자가 되어버린 22. 극적인 긴장감과 연출을 위해 설정된 스토리겠지만, 이 둘이 보여주는 모습은 현대사회 인물들과 똑 닮아있지 않은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엔가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말이다. 영화의 메인 포인트가 되는 사후세계 또한 마찬가지로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전 작품(코코)의 죽음이라는 공간을 환상에 빗대어 표현했었다면, 이번 죽음의 공간은 단순히 '머나먼 저세상'으로 단정 지어버렸으니까 말이다. 무엇이 남지도 않은 채, 그저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가는 무의 공간, 죽음 이 얼마나 사실적인가.




영화 메시지에 대한 접근을 다루기 전에,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았을 때 매력적인 부분이 참 많은 영화였다. 현실세계와 사후/사전 세계가 가진 색의 대비 점도 큰 매력 중 하나였다. <소울>에서 보여주는 뉴욕 거리의 삶은 좀 더 무채색에 가까운 색들이 많이 쓰였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현란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히 밤의 풍경과 거리의 색깔은 사후 세계 속 생의 탄생을 보여주는 '태어나기 전의 세상'과 지나칠 정도로 대비된다. 푸른색과 파스텔 톤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색깔만으로 탄생을 축복한다. 살아있기 전, 살아있음을 위해 준비하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완벽한 색으로 이루어냈다. 색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 음악들은 쉬지 않고 흐르는데, 재즈와 피아노 음악들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맞부딪힌다. 장면과 음악이 애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모든 시간 순서에 맞게 모든 것이 흘러간다. 주인공을 따라 재즈 음악이 흐르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면 마치 공연장에 도착한 것처럼 조명이 기다리고 있다. 실사로 촬영한 영화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생동감 넘치는 연출이라니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영화인 것 같다. 애초에 소재 자체가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영화 속에는 22와 같은 회의론자도 있고, 어처구니없는 삶의 끝 허무한 죽음도 있으며, 목표와 꿈을 위한 개개인의 가치 선택에 대한 고민도 잘 그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 <소울>은 이런 것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부드럽게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를 통해 가볍게 풀어낸다. 그렇다고, '욜로'처럼 무책임한 삶을 추천하지도 않는다. 도르테아의 물고기 이야기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쩐지 우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찾고 있지만 여긴 그냥 물이라면서 바다인지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물고기. 이처럼 영화는 주야장천 의미 없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설명하기보다, 대화 속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관객을 그 안으로 불러들인다. 깨닫기를 요구하기보다 마음에 와 닿도록 차근히 데려다주는 픽사의 친절함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에 정리하긴 어렵지만 '불꽃'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다. 영화에서 수없이 이야기하던 그 불꽃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정한 목적과 목표를 두고 살아간다. 때론, 어떠한 성과 자체가 되기도 하고, 입시가 되기도 하고, 입사가 되기도 한다. 목적과 목표 앞에서 우리는 수 없이 무너지고 이뤄내기를 반복한다. 무너지는 순간은 가슴 아프지만, 이뤄내는 순간의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목표를 이뤄내고 난 뒤에 당신 인생이 정말 꿈꾸던 것처럼 완전히 180도 바뀌어버렸는가? 개인적으로는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처럼 완벽한 인생과 가까이 닿지는 못했으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 속 그 순간 자체를 기억하기보다, 그 순간의 감정들을 좀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아마 영화에서 그토록 이야기하고 싶었던 '불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울>은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삶 속 순간의 행복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 영화를 전체적으로 두고 이 메시지를 읽어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만약 오늘 죽는다면 무의미한 인생일까 봐' 스크린이 꺼진 뒤에도 이 대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어쨌든, 영화를 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내일을 살아야 할 것이고 지극히 평범한 현실 속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영화에서 말했던 것처럼 '오늘부턴 룰루랄라!' 하며 매 순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답은 '아니오'에 가까운 것 같다. 내일 당장 죽게 될 확률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행복을 추구하고 살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은 무의미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꿈'과 '목적'을 잃었다고 해서 인생 자체가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불꽃'은 22가 쥐어줬던 일상의 모든 물건처럼 한 순간순간 존재한다. 아침 지하철에 복잡한 인파, 지하철은 나섰을 때 차가운 공기, 회사에서 먹는 점심의 맛, 퇴근 후에 보게 되는 밤 풍경까지 무엇 하나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것들은 그냥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가만 보면 그냥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말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네 삶은 그 순간만으로 중요하고 소중하다. <소울>은 이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 게 아닐까.




영화 후반부 이십 분은 종일 울기만 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의 처지가 내 삶 같아서? 애니메이션이 주는 환상적인 감동에 젖어서? 극적인 클라이맥스에 감정이 터져서? 사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하나로 정의하긴 어려울 것 같다. <소울>이 주는 메시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영화는 사후세계와 사전 세계를 동시에 다루면서 사람들의 의지를 돋운다. 마음의 불꽃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행복에 관한 단편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면서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간단한 문장을 내뱉는다. 그것도 담담하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남겼고, 어떤 평론가는 픽사의 작품 중 가장 앞 순서에 이 영화를 넣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두세 번 정도는 혼자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마법 같은 감정은 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스러운'' 삶을 살고 싶으니까 말이다. 내 인생의 여정표를 세워두고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당신, 지금 재즈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가?




사진 출처 : <Soul> In St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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