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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Oct 25. 2021

결국, 퇴사.

12.



결국, 퇴사하기로 했다. 눈이 내릴 즈음 입사했는데, 눈을 보지도 못한 채 회사를 떠나기로 말이다.


11개월, 긴 시간도 짧은 시간도 아닌 몇 달이 지났다. 계절은 봄과 여름, 짧은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떠나는 순간에,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동물병원 프로듀서'라는 이름에 맞는 마지막 페이지를 조용히 쓰고 싶었다.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이라기보다 불안에 떠는 내일이 맞는 표현이겠지만, 나는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병원에 일하면서 쓴 글의 마지막은 5월이었다. 적응기간이 지나고, 사무실을 이사하면서 점점 더 직장인 같은 면모로 변해가면서 글을 쓰는 행위에 큰 매너리즘을 느꼈다. 쓰는 것으로 무엇이 달라지고, 기록하는 것으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빠서 라는 핑계가 어울리지만, 사실은 직장인이라는 틀 안에 갇혀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오는 심각한 수준의 지루함과 무료함에 가까웠다.


퇴사를 결정하는 데까지 한 달 정도 고민했다. 진심으로 내가 퇴사하는 게 맞는지, 첫 직장의 시작을 이렇게 매듭지어도 맞는 건지, 이렇게 도망쳐서 결국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같은 불안한 고민들에 매일 밤 시달렸다. 덕분에 위염이 도져서 며칠간은 병원에 꾸준히 다녀야 했고, 생활 패턴이 엉망으로 돌아가며 평생 얻어보지 못한 장염에 시달리기도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개인적인 일로 병원에 다니는 횟수가 늘어가던 날. 집에 도착해 조용히 거울을 마주하고 물었다.


'이게 정말 사람 사는 게 맞니?' 간결하고도 무거운 질문에 남아있던 불씨가 꺼지고 말았다. 언젠가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자신했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두려운 만큼 간절했고, 간절한 만큼 두려웠다. 그래서 한 달의 고민의 끝을 결국 매듭지었다. 불완전하더라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이다.




무턱대고 한 결심은 아니었다. 한 달간 꽤나 지루한 면담을 해야 했고, 대표님과의 끝없는 줄다리기에서 노력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그러지 못했다. 회사에 출근하고 나면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이 온몸을 휘감았고, 무난하기만 했던 회사생활에 경고성 적신호가 여러 번 켜졌다. 이런 적신호에도 나는 자각하지 못했다. 내 몸과 마음 하나 건지지 못해 아등바등 대는데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하고, 갑작스러운 면담에서 갑작스럽게 퇴사를 통보받았다. 우습지만, 권고사직 아닌 권고사직이었다. 일을 하겠다는 의사는 내비쳤지만, 일을 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계속 일을 할 것인지 재차 묻는 원장님의 이야기에 나는 말을 잃었다. '더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퇴사는 그렇게 결정되고 말았다.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앞으로의 나날이 두려웠던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이렇게? 다 끝난다고?' 마음속에 끊임없는 질문이 불안에 덮여 한참을 휘몰아쳤다. 모두 태연한 표정을 짓고 일상에서 업무를 보는데, 나만 그렇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순식간에 밀려오는 이질감에 손 쓸 새도 없이 공황이 밀려왔다. 억지로 참아내고 마우스를 잡는 순간 깨달았다. 그냥 때가 오고 말았다는 걸, 이 순간까지 오기 위해서 내가 그토록 애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음 한 편에 있던 응어리가 의자 아래까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퇴사가 결정되고, 퇴근하는 길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사하기로 했다고 시원하게 말해버릴 작정이었지만 잘 지내냐는 물음에 별 말 않고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뱉었다. 아버지는 그거면 됐다고 평소처럼 이야기했다. 걱정을 덧대고 싶지 않아, 책임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배게를 끌어안고 끙끙대며 울었다. 그건 두려움이었으며, 동시에 결정에 대한 회한이었다. '나 이제 어떡해야 하냐고' 벽에 대고 앓는 소리를 내었지만, 어느 하나 답변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참으로 처절한 울음이었지만, 시원한 음성이었다.




난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했고, 평범한 프로듀서였으며, 평범하게 열정 많은 청년이었다. 때문에 퇴사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적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일을 했는지, 남기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든 쓰고 싶었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매일을 분주하게 다닌 것도,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순간도, 불씨가 타오르는 순간부터 꺼지는 순간까지 남겨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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