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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원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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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y 03. 2021

서른에 찾아온 비염

영춘 일기 4

        “에, 에취!”

        아침부터 꽉 막힌 코는 오전이 되어선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크게 터지는 날은 병원에서 얻어온 약도 소용이 없다. 수 없이 풀고, 닦아내길 반복한 코는 발갛게 헐어 버린 지 오래다. 보기에 좋지 않은 걸 알지만, 혼자 있는데 뭐 어떠랴 싶어 휴지 한 장을 뜯어 돌돌 말아 두 콧구멍에 쑤셔 넣는다. 이렇게 양 손이 자유로운 것도 순간이다. 몇 분 뒤에는 휴지를 타고 말간 콧물이 뚝뚝 흐른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거둬 휴지를 다시 뜯으며, 한 숨이 푹 나온다. 올해 서른이 된 나는 비염을 얻었다.




        영춘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사실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었다. 부득부득 나를 말릴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털이 많아 고생스러울 것이다, 동물한테 정 주면 나중에 뒷감당 못한다 등등. 당신들이 사랑하는 인간 딸을 위해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입양하기로 결정한 이상 돌이킬 순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말한 털과 뒷감당에 대해선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먼저, 나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없었다. 털이 수북한 어느 동물들과 얼굴을 비비고 애정표현을 듬뿍 나눠도 코가 맹맹해지는 일 따윈 없었다. 옷과 음식에 들어가는 털이야, 뭐. 그렇게 위생에 예민한 편이 아니니 감당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든 동물을 먼저 떠나보낸 뒤의 뒷감당은 사실 걱정이 됐다. 아끼던 개를 몇 번인가 먼저 보낸 아빠의 얼굴은 눈물 흘리지 않음에도 심장을 무엇엔가 쓱 그인 듯 상처 받은 듯했기에. 그 후에도 아빠는 떠도는 고양이나 개에게 밥을 줬다. 이미 사랑 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도 사랑하고 싶었다. 뒷감당이 두려워 물러서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삶이 살고 싶었다.


        영상통화로 영춘이를 부모님에게 보여주면서 내심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반응이었다. 영춘이 가져올 내 생활의 불편을 우려하면서도 영춘의 사랑스러움에 깜빡 넘어가신 듯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결심했었다. 혹여 영춘을 가족으로 들임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모조리 끌어안아 헤쳐 나가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염 인간이 되었다. 비단 전염병으로 인한 마스크가 아니더라도, 뻥 뚫린 코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한지는 3개월 정도 되었다. 2월의 어느 날, 자고 일어나 여느 때처럼 영춘의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갑자기 코에 무언가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곧 콧물과 기침이 우렁차게 토해졌다. 에취, 에취, 콜록! 에취취! 잘 놀던 영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며 곁에 와 쳐다봤다. 언니, 갑자기 왜 그래? 그 귀여운 모습에 몸서리를 치는 대신, 쏟아지는 콧물을 막기 위해 세면대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 날 모래먼지에 단단히 사례가 들렸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 날 이후로 가득 찬 콧물은 내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병원에선 알레르기성 비염이라 진단했다. ‘원래 고양이 알레르기가 없었는데...’ 우물쭈물하는 나의 말에 의사 선생님은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라는 듯 자연스레 말씀하셨다. ‘고양이랑 같이 살면 없던 비염도 다 생기더라고요. 그렇게들 많이 오세요.’ 아, 그렇군요. 4일 치 약을 타서 돌아왔다. 약의 기운을 빌려 며칠 안정되자 그 후의 날들도 평화로웠다. 코가 막혀도 처음처럼 숨도 못 쉴 정도는 아니었고, 콧물이 뚝뚝 흐르지도 않았다.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 싶던 어느 날, 영춘의 털갈이기 시작됐다.

어느덧 늠름하게 자라 털공을 생산한 영춘

        영춘이가 뒷발로 몸 여기저기를 긁는 행동이 이상하게 잦아졌다. 목에 걸린 인식표 때문인가 싶어 하루 정도 벗겨줬는데도 여전했다. 그리고, 긁을 때마다 털이 흩날리는 게 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초보 집사는 목욕을 하면 털이 더 폴폴 날리는 것도 모른 체 영춘이 몸이 상당히 가려운가 보다 싶어 영춘 냥생 첫 번 째 목욕을 하필 털갈이 시작 즈음에 했다. 결과는 대폭발이었다. 집안 여기저기에 털 뭉치가 굴러다니는 것은 예사고 아침마다 이마를 비비며 인사를 건네는 영춘이의 루틴으로 온 얼굴과 콧구멍에 털을 쑤셔 넣듯 살아야 하는 나는 지나는 걸음마다 콧물 자국을 남길 정도가 됐다. 침구와 거실 러그를 알레르기 케어 소재로 싹 바꾸고, 시도 때도 없이 환기하고,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돌리고, 가습기를 아쉽지 않게 틀어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왼쪽부터) 알레르기 케어 새 침구가 맘에드는 영춘과 공기청정기를 뒤로하고 편안한 영춘, 그리고... 이후에 벌어질 사태도 모르고 그저 대견스럽던 냥생 첫 목욕을 마친 영춘

        하도 많이 코를 풀고 기침을 해 열이 오를 정도였다. 어느 아침엔 영춘이 가슴을 타고 올라와 머리를 비비려는 자세를 취하자 나도 모르게 이불속으로 숨었다. 영춘이 행동이 멈췄다. 빼꼼히 이불을 내려 가만히 있는 작은 온기를 찾는데, 세상에. 영춘이가 동그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나 피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영춘이는 두 번 머리 인사를 권하지 않고 폴짝 뛰어 침대를 내려갔다. 영춘이가 설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겠지 싶으면서도 미안했다. 영춘이의 털갈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끌어안고 헤쳐 나가겠다는 다짐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저 예쁜 애가 인사하려는데 외면하다니. 갑자기 눈물이 날 정도로 미안해져선 캣타워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던 영춘을 끌어안고 한참을 비볐다. 영춘이는 영 짜증스러운 듯했지만 할퀴지는 않았으므로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여겼다.




        매년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 유독 눈에 많이 띄던 키워드를 내가 검색하고 있다. ‘비염에 좋은 음식’, ‘비염에 좋은 차’, ‘비염이 심할 땐 어떻게’ 기타 등등. 사실 어떻게 해도 조금 더 살만하다 정도지 완벽히 비염이 나을 순 없다고 한다. 이렇게 영춘과 비염은 함께 나에게로 왔다. 사랑하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내겐 뻥 뚫린 콧구멍과 그 사이로 흡입하던 맑은 공기 정도 되겠다. 그러나 그게 대수랴. 이미 산소처럼 내 삶에 녹아든 영춘이를 위해서라면 코 하나쯤 없는 셈 치고 살겠다. 내년 털갈이 시즌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여 나와 영춘 모두 더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눈을 뜨면 마주하는 사랑스러운 털 뭉치

        새벽빛을 등지고 이마를 맞대 오는 작은 털 뭉치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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