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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Nov 19. 2021

타인의 행복이 나를 옥죄면


    요즘은 인스타그램을 거의 안 한다. 내가 하는 유일한 SNS가 인스타그램이기에 결국 SNS를 거의 안 한다고 볼 수 있겠다. ‘거의’라는 것은 어쨌든 하긴 한다는 말인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SNS에 들어가 지인들의 게시물을 훑는 일은 지난 몇 년간 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최근 ‘루틴’이라는 단어가 꾸준하고 건강한 삶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안구 건조증 덕에 잘 떠지지도 않는 뻑뻑하고 부은 눈으로 멍하니 SNS 눈팅을 하는 행위를 루틴이라고 칭하자니 살짝 부끄럽다. 하지만, 나는 과감하게 그 행위를 루틴에서 잘라냈다.


그건 정말 맥락 없는 찰나의 결심이었다. 몇 개월 전부터 잡은 약속은 종종 파투 나기 마련이지만 평일 저녁에 급 결성된 번개 모임은 기름칠한 것처럼 성사되는 것과 비슷할까? 찰나의 결심은 근 3개월 정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그날은 유독 마음이 답답하고 몸은 늘어졌다. 계속되는 재택근무에 좀이 쑤셔 어딜 나가고 싶었지만 외출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기력한 매일의 반복이 켜켜이 쌓여 나는 마치 먹구름 속에 갇혀 꼼짝도 못 하는 신세 같았다.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 속 내 모습은 딱 반대였다. 건강하게 운동하고, 맛있는 걸 먹고, 예쁘게 꾸민 공간에서 여유롭게 재택근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약간의 오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 지금 우울해요. 그렇지만 그대들은 다 행복해 보이네요. 나도 질 수 없어!’ 뭐, 이런.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우울할 건 없었다. 내겐 집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취미와 사고뭉치 고양이, 그리고 둘이서 노는 게 제일 즐거운 단짝 친구도 있었으니까. 나는 이상하게도 ‘남들이 더’ 행복해 보여서 조바심이 났나 보다. 그래, 참 못난 마음이다. 




    오기로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이 나버려 에이, 하고 인스타그램을 꺼버렸다. 더 했다간 20대 초반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울 것만 같았다. ‘더 행복하려 노력하지 않고 뭐해!’ 이런 말로 스스로 상처 주는 일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덜’ 행복하길 바라는 건 전혀 아니다. 그저,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소외되는 기분이 싫었다. 같이 즐겁고 행복하고 싶건만 나는 그러지 못하는 게 초조한 거다. 타인의 행복이 나를 옥죄는 기분이 든다는 사실이 실망스럽고 동시에 죄스러웠다. 그래서 안 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처음엔 오른 엄지가 보랏빛 오로라 색상의 아이콘을 습관처럼 건드렸다. 그래서 아예 휴대폰 홈 화면에서도 제거했다. 차마 계정을 삭제하지 못한 것은 고양이 영춘의 성장과 나의 러닝 기록은 꾸준히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시물을 올릴 때만 후다닥 접속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눈에서 멀어지게 하니, 하루에 열 번은 들어가던 게 다섯 번, 세 번, 최근엔 아예 안 들어가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의 소식이 뜸했다. 안부가 궁금한 친구들에겐 직접 연락을 넣었다. 톡으로 근황을 묻기도 하고, 목소리가 그리운 이들에겐 종종 전화도 걸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일을 하느라 살이 쏙 빠진 친구의 건강을 걱정하고, 최근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한 친구를 응원하고, 동네 친구와는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들의 무사와 평안, 행복한 일상이 진심으로 기뻤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랐다. 그 행복에 쫓기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더 이상 못나지 않은 감정이 차오른 걸 깨닫고, 그제야 나도 행복했다. 누구와 비교해 덜, 혹은 더 행복하지 않고 그냥 행복한 순수한 마음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살다 보면 또다시 누군가와 행복의 크기를 빗대며 조바심이 나는 순간이 오겠지. 그럴 때마다 나는 불행할 거다. 못난 마음에 스스로 실망하고 여전히 성숙하지 못했음에 회초리질 하겠지. 그럴 때면 이 글을 꺼내서 읽어봐야지. 작심삼일도 백번 하면 거진 일 년이다. 서른의 나는 이십 대의 나보다 좀 더 나아져 이 글로 모난 마음을 반성했으니, 아마 마흔의 나는 지금보다는 났겠지. 그렇게 차츰차츰 완연한 원형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지. 구김 없이 타인의 행복에 손뼉 치고, 내 자리에 굳건히 서서 온전히 내 몫의 행복을 누리고 만족하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야지.



# Cover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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